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의 절대적 기준은 인구 밖에 없는 것일까. 저출산과 고령화로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다. 시·군의 인구가 줄면 총선거때마다 1개의 선거구를 만들기 위해 묶어야 할 지자체 수는 늘어난다. 3~4개 시·군이 통폐합 되다, 20대 국회에선 5개 시·군이 묶인 ‘공룡 선거구’까지 등장했다. 이러다 보니 농어촌 지역은 국회의원 수가 줄고, 농어민 대표성은 현저히 약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공룡 선거구 이대로 둘 것인가

인구 기준으로 선거구가 통폐합되면서 ‘공룡선거구’가 등장하고 있다. 선거구 면적대비 가장 작은 선거구와 가장 넓은 선거구간에 차이가 무려 1139배에 달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대 국회 선거구 획정 자료에 따르면, 강원도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구 면적은 5969.72㎢로 253개 선거구 가운데 가장 넓다. 반면 서울 마포갑은 5.24㎢로 가장 작다. 두 지역구의 면적 차이는 1139배에 달한다. 국회의원 1명을 뽑는 선거구의 면적 차이가 1000배를 넘었다면, 기형적인 선거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거구의 평균면적은 393.25㎢이다. 10개 지역구가 평균을 두배 넘었고, 12개 지역구는 3배를 초과했다. 4배 이상 초과한 선거구는 18개로 가장 많았다. 전남에선 나주·화순(1395.31㎢)과 광양·곡성·구례(1453.83㎢)가 평균 면적을 3배 초과했다. 고흥·보성·장흥·강진(2594.49㎢)과 해남·완도·진도(1867.93㎢), 담양·함평·영광·장성(1840.57㎢), 영암·무안·신안(1709.82㎢)은 4배를 넘어섰다.

평균 면적의 6.6배로 전남에서 가장 넓은 고흥·보성·장흥·강진은 49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서울 면적(605.25㎢)의 4.3배에 달한다. 이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 혼자서 서울의 4배가 넘는 면적을 맡고 있는 셈이다. 서울지역 국회의원 196명 몫의 면적이다.

해남·완도·진도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올라있는 ‘지역구 225석’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인구 하한선(15만3560명)에 미치지 못해 인접 시·군과 다시 통폐합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 면적의 3배가 넘는 지역을 국회의원 한 명(대안신당 윤영일 의원)이 맡고 있는 상황인데도, 행정구역이 더 커져 ‘공룡 선거구’가 나올수 있다는 얘기다.

●인구가 절대적 기준인가

지난 2016년 4·13 총선 직전 개정된 공직선거법 제25조 국회의원 지역구의 획정 조항을 보면, ‘국회의원 지역구는 시·도의 관할구역 안에서 인구·행정구역·지리적 여건·교통·생활문화권 등을 고려해 다음 각 호의 기준에 따라 획정한다’고 돼 있다. 객관적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항목은 추가되지 않았다. 인구가 유일한 획정의 근거이다.

하지만 지리적 행정적 특수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인구 수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정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토균형 발전과 정면 배치된다. 행정구역, 지리적 여건 등은 고려 대상으로 두고, 지금껏 선거구 획정은 인구 수를 제1 기준으로 삼아 일방적으로 획정해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인구수 하한 기준에 맞춰 인접한 시·군이 무차별적으로 하나의 선거구로 묶이고 있다. 서로 다른 생활권과 문화, 현안을 갖고 있음에도 인구라는 절대 기준으로 병합되고 있다. 국회의원 수도 4년마다 줄고 있다. 20대 국회에선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경기도는 8석이나 늘었지만, 인구가 감소한 경북은 2석, 전남, 전북, 강원도는 각각 1석이 줄었다.

●농어촌 대표성 지켜야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있어 인구 못지 않게 행정구역의 등가성도 중요하다. 농어촌은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구 외에 구체적인 획정 근거 조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병록 목포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순 인구수 기준으로 할 경우 5개 농산어촌 행정구역이 1개 선거구로 묶이는 선거구가 나올 수 있다”며 “역대 선거구 변천·생활 문화권을 고려해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권에선 농어촌지역 국회의원 지역구 특례 도입이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인구기준 하한에 미달하더라도 하나의 선거구로 획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다. 상한,하한 인구수에서 대통령이 정하는 일정 수준의 오차를 허용하고, 인구 기준 충족을 위해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분할, 다른 지역구에 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대안신당 윤영일(해남·완도·진도) 의원은 “농어촌 지역 선거구에 대한 일종의 특례를 둬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고 결과적으로 농어촌 대표성을 보장하는 방안”이라며 “자치구·시·군의 일부 분할 금지원칙의 예외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과 정책적으로 가능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농업인 단체에서는 1인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를 최대 4개 지역까지만 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법률안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임수 전남도 농업인단체연합회 대표는 “지방의 인구가 고령화되고 지역 간 인구 편차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존립 위기에 처한 농어촌 지역의 지역 대표성을 보완하는 취지에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