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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전에는 일본이 한반도를 먹을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게 존나 얻어터졌지만 이순신 이후 이렇다할 명장이 안나오는 조선을 일본 입장에서는 비벼볼만했다고 판단했지.

 

근데 문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도쿠가와씨네 사람들이 전쟁을 증오하는 사람들이었던 거고 일본 백성들도 에도막부에서는 평화의 꿀맛을 보면서 꿀을 열심히 빨고 있던 상황이었지.

 

근데 거기에 불만을 품은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 다이묘였던 새끼들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메이지유신을 일으켰다. 주로 모리와 시마즈가 중심축이었다.

 

조선은 조선대로 임진왜란때 궁궐이 개박살나고 할 수 없이 왕의 친척네 집에 조정이 얹혀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친척이라는 인물이 바로 월산대군. 월산대군네 집이 궁궐이 되어버렸고 그 이름이 덕수궁이다.

 

안그래도 임진왜란으로 전국토의 66%나 작살났는데 여기에 실제로는 강씨 가문이고 정원군이 줏어온 자식인 강능양이가 왕이 되는 바람에 병자호란이 또 일어났다. 그나마 남은 땅도 또 황폐화 되었다.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순조 헌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두 번 쳐 뚜까맞은 전쟁 복구밖에 못하고 있었다. 왜놈과 호놈이 너무 많이 개작살을 내놓은 탓에 복구가 엄청 오래걸렸다. 몽골 나부랭이가 쳐들어온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게 몽골은 기병만 갖고 쑤셔발겼으나 왜놈과 호놈은 화약으로 조져놨다. 전쟁터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면 기병이 들쑤신거랑 포병이 들쑤신 거랑은 천지차이다. 실제로 삼국지에서는 손견, 조인, 감녕, 조운, 문앙, 악진, 여포, 손책, 태사자 등 무상을 찍는 장수들이 제법 나오지만 나폴레옹 시대에는 조아생 뮈라 하나밖에 안 나온다. 그게 대포의 위력이다. 게다가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도와줬다고 하는데 명나라는 몽골을 몰아내고 건국한 나라이다. 근데 그 명나라는 청나라한테 졌다. 그것도 산해관 하나 믿다가 단지 산해관이 뚫렸을 뿐인데 일방적으로 줘터졌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되면서 서양 문물을 마구 받아들이고 있는 와중에도 조선은 계속 몇백년째 전후복구만 하고 있었다. 그 정범이 바로 이하응의 경복궁 재건. 이때 국채로 발행한 당백전 때문에 조선의 경제는 나락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병력들에게 급여를 엉터리로 줘서 발생한 임오군란이 벌어진다.

 

누가 그러는데 국가규모상 중종때 이미 일본이 조선을 앞질렀다고 한다. 안 그래도 이런데 임진왜란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로 주변정리만 한 다음 바로 몸을 키우고 있던 일본과는 달리 조선은 병자호란을 한 번 더 얻어터졌다. 원나라가 천하를 제패했다고는 하나 1300년대의 군사력은 1600년대의 군사력의 발끝에도 못미친다. 원나라는 오직 기병이었고 1600년대에는 화약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

 

게다가 당시 조선은 워낙 군알못들이라 조선 남자들이 체력적으로 어지간한 왜나라 여자들만 못한 지경까지 가자 정조임금이 신하들을 잡아놓고 화살을 할당량 채울때까지 계속 쏘게 했다.

 

그러니 일본, 청나라, 러시아가 먼저 줍는 놈이 임자인 조선을 서로 먹으려고 쟁탈전을 벌이다가 일본이 다 이기는 바람에 일제강점기가 되고 말았다.

 

적어도 임진왜란만 안일어났더라면 망가진 땅 재건할 비용과 인력으로 군사력을 더 키웠을 것이고 그랬으면 스위스처럼 중립국 위치 정도는 고수했을 것이다. 덤으로 명나라가 도와줄 일도 없어서 명과 청의 전쟁은 그냥 구경하다가 이기는 편 우리편 하면 되는 거였다. 전주 이씨 가문의 줏어온 자식인 강능양이가 명나라만 도와줘야 한다고 떼쓴 게 결국 임진왜란때 만력제가 도와준 게 빌미였으니까. 청나라 홍타이치가 그걸 알았으니까 강능양을 잡아왔을 때 참하지 않고 자기 구두에 키스하는 걸로 퉁친것이다. 줏어온 자식인 강능양은 홍타이치의 구두에 키스하다가 이마를 찧어 피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