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그의 나이 6살이었을 때다. 그는 평양에서 나고 자랐다. 

당시의 평양은 ‘지옥도’가 다름없었다. 종전한지 13년째만 핵폭격을 맞아 복구되지 못한 그 틈을 타 공산비적들이 아직도 판을 치고 다녔다. 

김종의의 어머니 한숙자 여사는 4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기로 결심했다. 황해대학교로 간 아버지와 같이 살려고 했다. 


김종의 : 나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평양역사서 열차를 탈라고 섰는데 어린 제가 “오마니 우리 지금 어디가는 겁니까?” 라고 물었더니 어머님이 “아바이 계신 황해도에 가자”고 하셨어요. 나는 어린 마음에 들떠서 놀러 가는 줄 알고 신났어요. 친구들 전부 같이 매천시에 간대서 좋았지요. 그러나 그 뒤로는 다시는 평양 땅을 밟을 수 없었어요. 


김 군수는 당시 탄 특별피난열차의 표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김종의 : 화천역에 도착을 해서 이수읍으로 갔어요. 거기에 가면 황해대 가는 130번이었나 177번이었나 그거를 타요. 그리고 아버지 만나고 온 가족이 죽산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김 군수의 증언에 의하면 경로는 다음과 같았다. 

화천역에서 내리고 이수읍까지 도보로 이동해 177번 버스를 타고 송월면 황해대학교까지 간 것이다. 우리 제작진이 확인한 결과 177번이 맞았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