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말메종 전투는 전차와 보병의 합동 공격이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가지는지 보여준 최초의 사례였고, 그후 지금까지도 전차는 보병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정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 수단에 있어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2차대전 때부터 APC라는 수단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APC 역시 한계가 많았고, 특히 냉전이 도래하며 소련 육군은 새로운 차량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BTR-50 APC는 서방의 M113이나 FV432와 비교해서 크게 뒤처지거나 하진 않는 준수한 물건이었지만


전차포와 각종 대전차병기가 난무하고 포탄이 비오듯 쏟아질 격렬한 전투에서 쓰이기엔 여러모로 불안했고, 속도와 항속력도 전차와 함께 다니기엔 모자랐다. 


특히 전투력 부족이 심각하다고 지목되었는데, APC들이 "전장의 택시" 로 지칭된 데는 사실 직접 병력을 태우고 전투에 참가하기 부족한 성능으로 인해, 막상 전장에 도착하면 보병을 내려줘야 하는 현실이 깔려 있었다. 


더구나 중성자가 난무할 냉전기의 전장에서 보병들이 하차해 싸우는 것은 아무리 사람이 밭에서 나는 소련이라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독이 힌트를 던져 주었다. 1958년 개발이 끝난 HS.30 "Lang" 장갑차는 20mm 기관포를 장착해 적 경장갑 차량이나 기관총 진지 등을 제압할 수 있었고 45도 두께의 30mm 장갑을 둘러 20mm 기관포를 막아낼 수 있었다.


소련 육군은 HS.30과 같이 보다 강력한 무장을 장착함과 동시에, HS.30에는 없던 NBC 방호장치를 도입해 보병을 보호하고, 굳이 하차할 필요 없이 승차한 채로 안전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새로운 차량을 구상했다.


온갖 해괴한 설계안들이 튀어나와 경쟁을 벌였고


그렇게 개발된 BMP-1은 1967년 혁명기념일 퍼레이드에서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BMP라는 이름은 Боевая Машина Пехоты(바이바나 마쉬나 뼤하띄)라는 러시아어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그 뜻은 보병 전투 차량이다. 즉 BMP-1은 세계 최초의 보병전투차였다.


이전 장갑차와 BMP-1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장으로, 73mm SPG-9 무반동포라는 (장갑차 기준) 거포를 탑재했으며


9M14 말류트카 대전차미사일을 장비해 적 전차나 장거리 목표와도 교전할 수 있었다.


보병을 하차시키지 않는다는 "승차전투" 를 위해 차체에 총안구를 뚫었고


보병들은 하차하지 않고도 소지한 보병화기를 사방으로 사격하며 교전할 수 있었다.


소련군의 요구를 수용하여 수상도하능력 또한 부여되었고 


300마력 엔진을 장착해 야지에서 최대 45km/h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었고 항속거리도 5-600km에 달해 전차와 충분히 함께 작전할 수 있었다.


이후 1980년 1인승 포탑 대신 2인승 포탑에 400m만 넘어가면 탄착군이 시베리아 벌판 사이즈로 늘어나던 무반동포 대신 30mm  2A42 기관포와 9M113 콩쿠르스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한 BMP-2가 채택되었고


1987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차체에 100mm 저압포와 30mm 기관포를 탑재한 BMP-3이 배치된다.


BMP 시리즈는 1967년 공개된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동구권 국가들의 주력 자리를 꿰차고 있는 수작이지만 한계점 역시 너무나도 명확하다.


방어력 면이 특히 심각한데, 정면 장갑은 40mm를 넘지 않으며 측면은 고작 14mm에 불과해 .50구경 기관총조차 방어를 장담할 수 없었다. 지뢰에도 취약해 APC마냥 보병들이 차체 위에 타고다니는 경우도 흔했다. 

이러한 방어력 미달은 BMP-3까지 개선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수상도하능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는데, 서유럽 진격 시 많은 하천을 만날 소련 육군이 수상도하능력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서유럽에 하천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솔직히 말해서 저정도로 장갑을 포기할 만큼 수상도하능력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서방의 마르더나 브래들리, 워리어 같은 IFV는 수상주행능력 따위는 깔끔히 포기하고 충분한 방어력을 갖춰 BMP 시리즈와의 교전에서 분명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서방의 20~30mm 기관포는 2km 거리에서도 높은 명중률로 BMP를 충분히 무력화시킬수 있었던 반면, BMP-1은 400m 이내로 접근해야 명중을 기대할 수 있었고 BMP-2의 30mm 기관포는 등장한지 오래지 않아 서방 IFV들이 이를 인식하고 30mm를 정면 표준 방어력으로 설정해 버렸다.


또한, 비좁은 전투실은 장기간 승차 시 보병들에게 피로감을 주어 전투력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BMP-1과 2는 전투실 중간에 연료탱크를 배치해 관통되는 즉시 보병들을 노릇하게 구워버릴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고


BMP-3은 엔진을 뒤로 빼버려 승하차 과정을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BMP 시리즈는 IFV지만 APC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나치게 방어력이 약해 중기관총급 이상의 화기에 대항해서는 별 방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 원인이 된 수상도하능력 또한 대부분의 APC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다.


물론 화력이 강하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전차가 없어도 아쉽게나마 비슷한 화력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기동력도 평타는 치기 때문에 IFV가 갖춰야 할 요건들은 가지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말했듯 방어력이 심각하기에, 승차전투를 한다고 해도 별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하차전투를 한다면 과장좀 섞어 강한 APC라고 해도 될 것이다. 서방 IFV는 승차"전투"를 하지 않는다 쳐도 계속 태우고 다니면서 최소한 기관총과 파편으로부터는 보병들을 지켜줄 수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걸프전쟁에서 M2 브래들리는 중기관총 또는 기관포에 격파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러나 BMP는 주간에도 브래들리에게 수도없이 많은 수가 격파당했다.


1980년대부터는 슬슬 승차전투의 효용성 자체에도 의문이 제기되어 폐지되어 갔기에 BMP 시리즈의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BMP는 서방 IFV에 비해 총안구가 많았다).


특히 점점 대전차 병기의 파괴력과 정확도가 올라가는 만큼 BMP는 도저히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많이 파괴된 차량이 T-72와 BMP이다. 대량으로 투입된 탓도 있지만, 방어력에 투자가 거의 안되있는데 생존을 바랄 수 있을까.


BMP는 IFV라는 새 장르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여러 국가 기계화보병들의 준마로서 복무하고 있다. BMP 시리즈가 수작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계 IFV의 대세는 이제 KF41 링스나 AS21 레드백 같은 대형 중장갑 차량으로 넘어갔고, 조국 러시아도 그러한 컨셉을 어느정도 받아들인 T-15 아르마타와 쿠르가네츠-25라는 후계자를 개발했다(배치되었는지는 논외로 하자). 


BMP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훌륭한 장갑차였지만, 이제 BMP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뒤로 물러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