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얘기하나 해줄게.

요즘엔 병사들도 일과 끝나고 스마트폰 볼 수 있다며

그러니 현역 분대장들아 이 얘기 참고해라.


어떤 일이 있었냐면

내가 말년 휴가 나가기 딱 4일 전에

우리 생활관 막내가 걸레 빨다가 사라졌다.

그때는 당연히 내 알동기랑 내가 대대왕고였지

청소 시간에 나랑 걔랑 둘이서 여느 때처럼 테레비 보고 있었는데

일병왕고가 분대장이었던 내 맡후임한테

막내가 없어졌다고 그러는 거다.


일단 당직사관한테는 보고하지 말라고 하고 생활관 애들끼리만 찾아봤지.

근데 시발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야.

그래서 당직사관한테 보고했지.

그랬더니 당직사관이 대대장님한테는 보고하지 말라고 하고

중대 애들 다 풀어서 찾아봤는데, 없는 거야.

그래서 대대장님한테 보고했더니 일단 사단에는 보고하지 말라고 하고

대대 애들 다 풀어서 찾아봤는데, 없는 거야.

그래서 당직사령한테 보고했더니

일단 참모장님한테는 보고하지 말라고 하고

조금 더 찾아봤는데 없는 거야.


이젠 진짜 좆된 거지.

당직사령이 참모장님께 알렸고

조금 이따가 사단장님께.. 보고를 했지 시발

그때가 한 23시 넘었을 때였을 거다.

우리 사단이 동원사단이라

평시 주둔 병력이 약 2천 명가량이었는데

"XX아~! XX아!! XXX 어딨냐!"하면서

사단 전 병력이 그 한 놈 찾으려고 다 뛰쳐나왔다.


그때가 10월 말이라서 밤 되면 존나 추웠다.

근데 이 사실이 군단에 보고가 됐고

24시 경에 군단 헌병대대장이 우리 생활관에 왔다.

그 양반이 우리 생활관에 들어와서 문을 잠그고는

"이 개새끼들이 너넨 씨발 부대에서 뭔짓을 한 거야!" 이랬음ㄷㄷ


내가 이때 군단 수사관을 처음 봤는데

양복 입고 머리도 일반인처럼 기르고 다니더라.

이 양반이 도망간 막내 관물대를 엎더니만

제일 먼저 수양록부터 읽고

전투복 주머니 속까지 다 뒤졌다.


그리고 시발 나랑 내 알동기를 헌벙대 콘보이에 태워서

사단 헌병대 취조실로 압송했다.

구속 사유는 가혹행위 정황에 대한 최고참들의 관여.

갔더니만 깜깜한 방에 스탠드 하나 켜주고는

나랑 내 알동기 앉혀놓고 사건 진술서를 쓰게 했다.

당연히 밑에 애들 일을 대대왕고들이 신경이나 쓰냐?

아는 게 없으니 그냥 우리 생활관 평소 모습을 썼지.

그러고 기다리고 있는데,


03시 경에 막내 찾았다고 연락와서

나랑 알동기는 대대로 복귀했다.

가서 보니까 막내가 수송부 박스카 안에 문닫고 숨어있던 거였다.


그날 사건이 정리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발

수양록에 모든 게 다 나와있었다.

도망갔던 막내의 이등병 맡선임이 존나 괴롭혔던 거였다.

도망갔던 막내가 88년생이었고,

괴롭힌 이등병이 92인가 93인가 그랬다.


근데 한 2~3달 전인가?

밤에 그 도망갔던 막내가 나한테 고충이 있다는 거야.


<과거 회상>

"XXX 병장님, XX이병 때문에 힘듭니다."

이때 자초지종을 들었지.

분리수거하러 갈 때, 청소할 때 등

고참들 안 보인 데에서 교묘히 갈궜던 거지.

막내는 나이도 많아서 더 치욕스러웠던 거고.

나는 이걸 연등하고 있는 옆 분대 일꺾 후임한테 얘기했어.

괴롭힌다는 그 이등병이랑 걔랑 둘이 엄청 친했거든

그랬더니 그 일꺾 후임이 나더러,


"에이~ XXX병장님. XX 걔 그럴 놈 아닙니다."

"XXX병장님이 막내 편애하시는 겁니다."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런가?하고 넘어갔지.


이게 머리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거야.

어쨌든 나랑 알동기는 무시히 말년 휴가를 나갔다 왔는데

생활관이 바뀌어 있는 거야.

아니 대대 편제가 싹 다 바뀌어 있는 거야.

오 시발 이게 뭐냐했더니

참모장님 지시로 이리됐다고 ㄷㄷ


결국 괴롭혔던 이등병 그놈은 인천의 모 부대로 팔려갔고

도망갔던 이등병 그놈도 경기도 모 부대로 팔려갔다.


근데 있잖냐.

그때 간부들이 얼마나 씨발이었냐면,

군대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희생할 책임자가 필요한데,

그 책임을 죄없는 내 불쌍한 맡후임한테 다 뒤집어 씌운 거야.

물론 분대장 관리가 소홀한 것도 있었을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창 풀창은 아니지 않냐?

가해자가 버젓이 있는 판국에?

그리고 행보관이랑 걔 처부장이랑 주임원사는 다 버로우 탓다.


전역 날 그 맡후임이 내 옷가랑이 잡고 나 보는데

존나 불쌍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현역 분대장 애들아.

진짜 불미스러운 일이 귀에 들어오면

꼭 애들 뒷조사는 한 번씩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