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내게 붉은 꽃 한 송이가 끼워진 책갈피를 보여주며 말했다. 방금전까지 가지에 붙어있었다고 해도 믿을만큼 그 꽃은 아주 생그럽게 펼쳐저 있었다.


"사흘 전에 바람 좀 쐴 겸 산책하다 발견했어. 이 더운 날에 아랑곳 않고 활짝 핀 꽃이 대단해보이더라."


눈을 빛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친구의 태도는 나에게 하여금 어이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새벽 2시에급하게 전화를 한 것치곤 참으로 평범한 이유였다.


"겨우 꽃 한 송이 끼워진 책갈피 보여줄려고 이 시간에 부른건 아니지?"


"역시 넌 눈치가 빨라. 정확하게 맞췄어."


"전치 4주로 만들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겨라."


나는 한숨을 쉬며 골목길 사이로 걸어나갔다. 친구도 덩달아 산만한 걸음걸이로 내 옆을 따랐다.


대학교 졸업 이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참으로 반가운 존재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앙숙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날이 선 어투로 녀석에게 물어봤다.


"무슨 꽃이길래 내일 출근할 사람을 새벽 2시에 불러온거야?"


"내가 알았으면 전공을 식물학으로 했겠지. 그냥 산책하다가 나무에 화사하게 꽃이 폈길래. 그래서 하나 톡, 하고 떼어냈어."


'그럴줄 알았다 이 새끼야.'라는 생각을 간신히 삼키고 우리는 그 꽃을 본 산책로로 향했다. 그래도 꼴에 친구라고 녀석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었기에 그동안 못했던 대화를 털어놓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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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산책로는 깔끔하게 정리된, 푸릇푸릇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와 동시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참 이질적으로도 느껴졌다. 


"바로 저기, 저기에 꽃이 활짝 피었..."


산책로의 어느 한 곳을 가리키던 친구는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그 곳엔 꽃은 커녕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해? 어두워서 잘못 찾아온거 아니야?"


"아냐, 분명히 이곳이야. 내가 사흘 전 왔던 곳을 잊을리가 없어."


그럴만한게 친구녀석은 그 특출난 기억력으로 과탑을 먹은 놈이다. 애초에 십 년전도 아니고 사흘 전 본 감명깊은 장소를 착각하는것도 이상하긴했다.


살짝 고개 숙여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친구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에는 아까 본 책갈피가 쥐어져 있었고 끼어져 있던 꽃은 순간 우리를 비웃는거처럼 느껴졌다.






빨갛다.


손이 빨갛다.


무언가 묻은것은 아니다. 피는 더더욱 아니다. 그 빨간색은 인간의 피부색이 사실 붉었다고 해도 믿을만큼 소름끼치게 자연스러웠다.


손이 붉은색이라고? 원래 살구색 아닌가? 난 저 색을 어떻게 알아차린거지? 이 어둠속에서?


마구잡이로 휘몰아치는 의문을 뒤로하고 나는 책갈피를 손에서 떨쳐내게 한 후 친구 멱살을 잡고 주저없이 뛰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끌려간 친구에게 나는 닥치고 뛰라는 말을 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한참을 달려 불빛이 번쩍이는 시가지에 도착하였다. 설명을 요구하는 친구에게 나는 내가 본 것을 말하였고 친구는 곧 질겁한 얼굴로 손을 계속 문질렀다. 다행히 손은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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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나는 연차를 쓰기로 결심하면서 자연스레 컴퓨터 앞으로 향하였다. 본능이 억누르던 호기심이 

이제서야 자기일을 하는것이다. 


두루뭉실하게 빨간 꽃, 붉은 꽃, 나무에 피는 꽃 등을 검색하며 조사를 실시했고 얼마안가 우리가 본 꽃과 거의 동일한 모습의 꽃을 찾을 수 있었다.












동백꽃

겨울에 피는 특이한 꽃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