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패망했는가

[1편-왜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는가]


1937년 중일전쟁에 이어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다. 진주만 공습은 현재까지도 최고의 전술적 작전으로 평가되며, 미 태평양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 버렸고 당대 해전의 주인공이던 전함을 모조리 수장시켰다. 실제로 미 태평양 함대는 1942년 후반까지 단 1척의 전함도 사용할 수 없었다. 


「일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는 미해군 소속 에리조나호」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에서 패했다. 왜 일본은 미 태평양 함대를 때려눕히고도 전쟁에서 패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이 왜 이 전쟁을 일으켰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개항을 그린 일본 풍속화」

미국과 일본은 사실 사이가 꽤 좋았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을 개항시킨 뒤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빠른 발전을 이룩했다. 일본 입장에선 '약간의 협박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 주도하에 개항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고, 미국 입장에선 동양의 섬나라 하나를 우리가 발전시켰다는 서로 나름의 만족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둘이 갑자기 전쟁이 터진건 아니고, 둘 사이엔 몇번의 굴곡이 있었다.

 


              「러일전쟁 당시 행군하는 일본군 병사」

러일전쟁 이후에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려 했다. 그러나 만주는 안그래도 열강들의 관심이 집중된 곳이었기에 제제가 있었고 이에대해 일본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서구사회가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서구 열강은 마음껏 식민지를 늘리는데 왜 자신들은 안되냐는 것. 이 논리는 반미감정 확산으로 이어졌다. 한때 맘껏 땅을 뺏고 인디언들을 죽이던 존재가 영토 확장을 방해한다며 말이다. 

이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야욕이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하자 미국은 경제제제를 걸기 시작한다. 미국의 제제는 일본에 심대하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일본의 무역, 특히 전략물자의 80%는 미국에서 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당시 중국전선은 늪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더이상 버틸수없는 중국이 알고보니 미얀마로 들어오는 미국 물자로 버티고 있었던 것. 이에 일본은 동남아를 석권해서 아시아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운다. 근데 미국에 어떻게 덤빌수 있을까. 그래서 일본이 진지하게 철수를 고려하던 찰나, 독일이 프랑스를 쓸어버린다. 이때 든 생각.


'가만, 독일이 영국까지 먹으면 동맹인 우리를 미국이 함부로 못대하겠군'

전황이 너무나도 독일에 유리했기에 영국도 조만간 항복할 것으로 보였고 이는 나름 가능한 생각이었다. 결국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와 함께 3국 동맹을 맺고 이후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사실상 4국동맹으로 생각했다. 그럼 미국은 쉽게 덤비지 못할 터였고 항복한 프랑스와 위태로운 영국의 동남아 식민지를 먹는다 한들 무슨 제제가 있겠는가. 덤으로 보급로 차단으로 중국도 딸려올 터였다.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소련과 일본」


이에 미국은 기존의 제제보다 더 강한 제제, 곧 철과 석유 수출 제제를 걸어 일본에 치명타를 날린다. 이 상황에 동남아에 금속, 석유, 고무 등 엄청난 자원지대가 있단걸 깨달은 일본은 빠르게 남방자원지대를 먹으면 미국과 교류를 끊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일본은 최후의 협상에 돌입한다.

일본:중국 빼는 대신 남방자원지대만 가져갈게.

미국:ㅗㅗ병력 다빼 중국도.

근데 일본은 중국에서 병력 빼란 말을 만주마저 포기하라고 해석해 버린다. 그리고 41년 4월 일소 중립조약으로 소련이 동맹이 됬다고 판단한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 미국은 모든 석유를 전면 차단해 버린다. 41년 9월, 총리까지 일본 육군 수장 도조 히데키로 바뀌며 일본은 마지막 남은 반전 세력이 사라진다.


     「제 40대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얼굴에 한대 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 (세트)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지. 내 주먹맛을 보기 전까지는 -일라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