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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아


어디선가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들린다. 형석은 감았던 눈을 뜨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학교 관리원 아저씨가 나무들에게 물을 뿌려 주고 있었다. 너무나도 더운 교실에 시원하게 물줄기를 받고 있는 나무들을 보니 괜스레 시원해졌다.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한 여자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보는 교복에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형석의 학년은 전체 수가 100여명 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다 아는 얘들 뿐이었는데 지금 형석이 바라보고 있는 여잔 처음보는 교복과 얼굴에 자연스레 전학생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석이 오랫동안 창가 쪽을 보자 짝꿍이었던 민준이 물었다.


"너 뭐하냐? 쌤이 칠판만 보고 수업하셔서 다행이지. 아까부터 계속 그 쪽만 봐? 뭐 있냐?"

"아냐. 별 거 아냐."

"별 게 아니긴 뭐가 별 게 아니야. "


민준이  눈치를 보더니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창가 쪽을 힐끔 보았다. 하지만 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여자는 이미 학교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관리원 아저씨가 나무들에게 물을 뿌려주는 것을 보곤 투덜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야, 넌 저게 재밌다고 계쏙 넋이 나간 채 보고 있었던 거야?"

"아니. 전학생이 온 것 같아서."

"뭐? 이렇게 학생수도 없고 낡아빠진 학교에? 대체 왜? 걔 문제아아니야?"


형석은 그 여자의 생김새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하얀 피부에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포니테일로 가볍게 묶은 그 여자는 그리 문제아처럼 보이지 않았다.



"몰라."



형석은 그 여자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계속 그 여자 생각에 수업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잠깐 존 것은 눈이 피로해서 감은 것이지 선생님 말씀은 귀로 다 듣고 있었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를 본 순간 온 신경이 마치 그 여자에게 뻗어가서 수업에 집중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형석은 가볍게 목 스트레칭을 한 뒤 연필을 듣고 하품을 한 번 한 뒤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에 민준은 혀를 내두르며 건너편 옆에 있는 친구와 지우개를 던지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




"얘들아. 모두 앉아봐."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이 종례 시간에 떠들썩한 분위기를 낮추려고 책상을 두어번 출석부로 두드렸다.


아이들은 어서 선생님이 종례를 해주었으면 하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뜸을 들이시다가 말했다.


"전학생이 왔단다. 자, 들어오렴."


스르륵.


문이 열리고 쭈뻣쭈뻣 어색하게 걸어오는 한 소녀.


형석은 가방을 매고 시계를 보고 있었기에 전학생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앞쪽 문을 쳐다보았다.


"아니,쟤는..."


형석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민준이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뭐야, 너 쟤 알아?"


"아니. 1교시 때 내가 말했던 전학생. 바로 쟤야."


"진짜? 오오. 우리반이었군. 야,야. 근데 쟤 이쁘지 않냐?"


"이쁘다고?"


민준의 물음에 형석은 생각해보았다. 서로 잘 알지도 모르는 사이에서 외모평가 하기에는 좀 그러지만 객관적으로 전학생을 보았을 때 예쁘다는 느낌은 그리 들지 않았기에 형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으이구. 넌 대체 시력이 몇이냐? 저게 어떻게 안 이쁘다는 건데!"


"전학생 다 듣겠다. 창피하니깐 그 입 좀 닥쳐줄래?"


"아이고 서러워라~"


형석과 민준이 쑥떡쑥떡 대화하는 사이 선생님은 전학생에게 가볍게 이름을 말하라고 했다. 전학생은 순간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 이상 행동에 여자애들 몇몇이 수근거렸다.


전학생은 칠판으로 다가가 분필로 자신의 이름을 한자한자 적어나갔다.


[이혜진.]


그것이 전학생의 이름이었다.


형석은 자신이 자각하진 못했지만 몰래 전학생의 이름을 속으로 읊으며 외우려고 노력했다.




*




다음 날.



전학생이 왔다는 소식에 다른 반 아이들이 모두 다 형석의 반 앞에 와서 문에 머리를 들이밀며 전학생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전학생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야야 어딨어."

"아직 안 왔나 봐."

"어제 봤어?"

"전학생 핵 이쁘대."


형석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학생은 다른 사람 눈에겐 매우 예쁜 얼굴이었나 보다. 어제 전학생을 스치 듯 본 아이들 몇몇이 얘기 해 준 것을 몇몇 얘들이 더 과장되게 표현해서 지금 아이들 대부분은 전학생이 연예인 뺨 칠 정도로 엄청 예쁜 얼굴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이렇게 전학생 얼굴을 보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형석은 아침부터 많은 아이들 때문에 문이 막혀 들어오는 것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전학생 혜진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자 어이가 없었다.


10뷴 후. 소문의 전학생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학생이 온 것은 수업 2분전이여서 아이들이 많이 떠난 상태였다.


전학생이 어제 선생님이 배정해준 자리에 앉자 몇몇 여자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너 혜진이랬지?"

"너 완전 우리학교 인기녀 됐드라. 아침에 얘들이 몇십 명이 우리반에 줄을 서 있었는데. 어우,아주 그냥," 따봉을 보이며 웃는 여자아아이는 혜진에게 악의 없이 다가왔다.


하지만  혜진은 어색한 듯 웃어보였다. 그 반응에 아이들이 민망해졌는지 다른 얘기를 꺼냈다.


"저기 넌 좋아하는 게 뭐야?"

"너 피부 정말 하얗다!"

"곧 1교시 수업 시작인데 교과서는 있어? 없으면 내 꺼 빌려줄게."



혜진은 가방에서 공책과 펜을 꺼내더니 종이에 아이들에게 일일히 답해주었다.


[난 햄버거 좋아해.]

[피부 하얀 건 유전이야.]

[교과서는 어제 다 받았어. 신경써줘서 고마워.]



아이들은 종이에 답하는 혜진의 모습을 보곤 무언가 수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말을 못 하니?"


혜진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벌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정신을 차리고 종이에 쓱쓱 질문에 대한 답을 적었다.


[아니.]



"그럼 왜 말을 안 하는 건데?"





[난...]



'난' 이란 말 쓰고 그 뒷말을 쉽사리 쓰지 못하는 혜진을 여자애들은 한 걸음 물러갔다.


그러더니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얘,뭐니. 관종인가.'

'이런 관종은 첨인뎅.'

'우리 그냥 갈까? 곧 수업 시작인데.'

'그래도 뭐라 적는 지 보고 가자.'


결론을 내린 여자애들은 혜진의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곤 혜진은 쓱쓱 글자를 적었다.





[난 말할 수 없거든.]





형석은 관심없는 척 했지만 슬쩍슬쩍 혜진을 쳐다보며 아이들의 대화에도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혜진이 적은 종이의 뜻을 보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쟨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