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채널 (비)
아마도 내 정치 이념의 30퍼센트는 일제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치 독일이 40퍼센트일거다. 한국인이 왜 나치를 더 싫어하냐고 물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유년기를 영국에서 보내서 아주 극렬한 반나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 학교가 일제를 다루는 것은 영국 학교가 나치를 다루는 것보다 전혀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는게 내 관찰 결과다. 어쩌면 식민지와 피식민지 관계와 전쟁의 패자와 승자 관계에 기인할 지도 모르고, 한국 특유의 교육 방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역사’ 시간 때는 나치 독일이 어떻게 발흥하였는지, 파시즘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그때의 국제 정세는 어떠했는지를 배웠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꽤 깊게 가르쳐주셨다. 물론 밀리터리 지식을 공부한 결과 당시 배운 내용 중 틀린 것도 많다는 걸 알았지만 요점은 그것이 아니다. 그때 선생님은 영국 사회에서 나치에게 힘을 주었던 포퓰리즘과 배타주의, 권위주의적인 통제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그게 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조금 달랐다. 고등학교 때 ‘한국사’ 수업에서 나는 우리가 일본 제국의 일방적인 피해자임을 배웠고, 그때의 일본 정세, 어떻게 일제가 부흥하였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근대사의 원수에 대해 가르칠 것이 이것 밖에 없는가? 한국사 선생님도 내 질문을 모두 답하지는 못하셨기에, 나는 개인적인 조사를 통해 일제가 어떻게 부흥했는지에 대해 배웠다. 또 일제가 단순히 우리 민족만을 탄압한 것이 아니라, ‘내지인’들조차 그 수탈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게 역겨웠다. 제국주의는 제국이 식민지를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지도층과 그에 부역하는 식민지 지배층이 양국의 서민을 수탈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식민지 근대화와 식민지 수탈은 둘 중 하나가 그른게 아니다. 내가 보기엔 적어도 그 둘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일본 제국이 조선을 착취해 일본인에게 더 좋은 삶을 보장한게 아니라, 둘 다 착취했다는 것이, 어째서인지 전자보다 후자가 내게 더 화가 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기들 역시 착취한 일본제국을 좋다고 옹호하는 일본 극우들이 바보같았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징병되던 징용되던 국가에게 자유를 잃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외쳤다면 치안유지법으로 잡혀들어갈 것이다. 일본군에 들어간다면 말도안되는 부조리가 기다릴 것이고. 아무리 국력이 강하더라도, 그런게 옳을리는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징병되는 것은 마찬가지고,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그 강제동원을 저지하는 국제적인 근거인 ILO 29호는 비준하지도 않아서 신체적으로 부적격한 사람들을 징용한다.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정보를 통제하고 반정부 성향의 인물을 잡아들일 수 있다. 요새 많이 좋아졌다-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 내 부조리가 없어진것은 아니다. 적어도 육군은 그렇다. 

통일에 대한 입장도 비슷하다. 통일을 외치는 사람은 진보보수할 것 없이, 부국강병을 위해, 시장 확대를 위해, 토지와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통일이 남한에게 이득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정말 맞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지만, 정말 식민주의적인 주장 아닌가? 마치 독일이 레벤스라움을 주장했듯이, 우리는 거대한 민족 영토를 토대로 강대국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통일의 모델은 독일이 맞다. 다만 그건 베를린 장벽의 철거가 아닌, 안슐루스일 것이다. 적어도 좌파임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민족주의는 잠시 접어두고 현재 통일론에 대해 진중한 고민을 해봐야한다. 

이렇듯이 현재 21세기 지금에도 대한민국 사회에는 흡사 일본제국이나 그에 영향을 준 나치독일의 문화적 잔재가 곳곳이 숨어있다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우리는 친일파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이를 갈며 분해하지만, 옛 추축국의 사상을 재생산하는데는 꺼리낌이 없다. 일제가 우리에게 남긴 최악의 유산은 아직도 도사리는 친일파 토착왜구가 아니라 이러한 사상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사상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그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음은 친일파가 아닌 국민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주변국의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비웃지만, 우리 안의 권위주의, 민족주의에 한 번의 자성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면, 민주국가에서 자신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는 지 모르고 100년 전의 악당에게 모든 탓을 돌린다면, 아무리 강한 헌법정신과 민주주의로 무장해도 파시즘의 맹아가 꽃을 피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