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터넷 상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가리켜 민주화운동이라고 칭하면 최소한 중립이거나 진보적인 시각, 반대로 광주 사태로 칭한다면 왜곡이라는 인식, 또는 광주 사태라는 단어 자체가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의 언론 탄압으로 인한 왜곡된 용어라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이는 틀린 인식이다.

87년 6월 이후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재평가 되기 전까지, 광주 민주화운동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는 광주 사태였으며, 이는 신군부나 신군부의 어용언론 뿐만 아니라 민주 인사 측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단어였다.

관련 자료중 광주 사태라는 단어가 간접적으로나마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80년 5월 20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기자회견문[29]이다. 김영삼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파국적 사태" 또는 "유혈 사태" 등으로 처음으로 언급했으며, 이는 광주 사태라는 단어가 군부의 왜곡으로 만들어진 단어라는 근거로 제시되는 1980년 5월 21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담화문[30]보다 하루 이른 날짜다.

간접적으로 사태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광주사태라고 사건을 지칭하는 최초의 자료는 의외로 신군부측의 문서가 아니라 투사회보 제 6호[31]다. 투사회보는 신군부의 언론왜곡에 저항하는 저항언론이었으므로 신군부의 영향력 하에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광주사태라는 단어 자체가 신군부에 의해 왜곡된 단어였다는 추론은 마땅한 근거가 없다. 그 밖에도 최규하 각하께 드리는 호소문[32]을 발표한 "광주사태수습위원회"는 민주화 운동측 인물들로 이루어졌으며 윤공희 대주교 역시도 광주사태를 여러차례 사용하여 김대중정동년 등 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형을 언도받은 이들이나 내란죄로 구속된 민주화운동 참가자 구명운동을 펼친 바 있다.

다만, 이미 1990년대를 거쳐서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진 5.18 민주화운동을, 학술적 의도 혹은 당시의 단어 사용을 존중하려는 의도가 아닌데도[33] 굳이 현 시점에서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꺼내어 사용하는 것에는 폄하의 의도가 있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 최근에는 지만원윤서인 등의 보수인사가 특히나 광주 사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광주 폭동이나 광주 내란 등의 단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광주 사태라는 단어에는 문제가 없지만 지금 쓰면 아무튼 비하언어고 광주폭동드립이랑 또이또이한다는건 뭔 쌉소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