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3.15 폭동은 1960년 3월 15일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3.15 총선거에 대한 항의와 이승만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일어난 폭동이며, 4.19 폭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 요약

3월 15일, 마산시의 민주당 간부들은 폭도들과 가세하여 10시 30분에 선거 포기를 선언하며, 이내 폭동을 준비했다.

민주당 의원 정남규와 간부들이 앞장섰고, 저녁 7시 30분경 1만여명의 폭도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수만명이 추가로 합류했다.

경찰이 정남규 등 당 간부들을 연행하며 강경 대응하자 폭도들은 더욱 늘어났다.

폭도들은 경찰들에게 돌을 던지며 폭동을 계속했고 경찰은 이에 분노하여 총격을 가했다.

또한, 자유당 당사와 서울신문 지국, 국민회, 경찰서 등을 무력으로 부수고 경찰 1천여명을 부상당하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 폭동 주동 세력에 속하는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자 폭도들은 선동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시켜 나가며 4.19 폭동을 촉발시켰다.

국회조사단은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총격이 시위대의 살상이 아닌 해산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혀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도 마산 폭동이 공산당의 사주로 벌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부통령 이기붕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폭도들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을 따지는 기자들에게 "총은 빨갱이들을 쏘라고 준 것이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