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저희 각하께서는 광주민주화운동 때 희생된 시민들, 그리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명령에 의해 치안을 유지하러 갔다가 희생된 계엄군 모두 희생자라고 생각하세요.

광주 망월동에 사람을 보내 5·18 희생자 이름을 다 적어왔고, 육군본부에 가서 희생된 장병 이름도 모두 찾아와 영가천도 기도를 드렸어요.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도 아직 원한이 덜 풀린 거 같아요. 그때 기도드리던 사진이 여기 제 회고록 원고에 나와 있는데…

기자: 건네주신 자료에 기도 사진과 기사가 있는데, 회고록의 일부인 것 같네요. 최근 전 전 대통령 회고록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보도됐는데요. 회고록에 5·18 발포명령과 관련된 내용도 담겼습니까?

이순자: 한두번도 아니고… 엉터리 왜곡 보도가 많아. 회고록을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전두환: 내보낼 것도 없고, 5·18과 관련해서 건드리지도 않았어. 그건 누군가가 띄우는 거야.

이순자: 제 회고록은 거의 다 됐어요. 전 전 대통령이 86세인데, 이제는 두 노인네 건강 관리하면서 자손들한테 애 안 먹이고 살다 갈 일 생각할 나이인데, 이것으로 우리가 정치나 명예회복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명예에 대한 집착도 없고요. 한때를 책임졌던 사람으로서 저희 이름을 건 기록은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준비한 겁니다.

기자: 5·18이나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임과 관련한 내용도 있습니까?

이순자: 각하는 광주사태 나고 3개월 후에 대통령이 되셨다는 그 업보 때문에 ‘광주사태 학살자’라는 누명을 쓰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요즘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죠...

전두환: 사실 광주사태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이순자: 재판에서 ‘광주에서 발포 명령자는 없었다’고 분명하게 결과가 나와 그나마 학살자라는 누명은 벗었어요. 당시 보안사령관은 대통령께 정보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작전에는 참여할 수 없는데도, 광주사태의 직접 책임을 이 양반한테 씌우려고 재판을 만들었지만 그건 얹을 수가 없었어요. 이 양반은 2년 동안 고생했지만 그 덕분에 누명은 벗었습니다.

전두환: 나는 원래 정치인이 아니고 군인이란 말이야. 군인으로서 그때 나라가 어렵고, 내가 대통령이 안 될 수가 없어서 한 건데, 내가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오. 대통령 하고 싶으면 뭐 하러 군대 들어갔겠어요. 대통령 되려는 계획이 전혀 요만큼도 없었어. 그렇기 때문에 약속한 대로 하고 딱 한 번 대통령 단임하고 나왔잖아. 사람들은 내가 계획을 다 세워서 한 줄 아는데, 내가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나오지도 않았겠지.
기자: 12·12 때는 집권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말씀이시죠?
전두환: 아, 그리고. 정승화는 왜 잡아놨느냐. 우리가 볼 때, 젊은 장군들이 볼 때 정승화가 김재규를 앞세워 정권을 잡으려 했으니까. 김재규 머리로는 안돼. 큰일 나. 그래서 잡아넣었어.
이순자: 그래서, 10·26 일어난 뒤에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의 태도가 너무 거침없어서 ‘미국의 사주를 받아서 10·26 사건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많았어요.

(중략)

전두환: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광주사태 때 내가 보안사령관이었을걸? 보안사령관은 정보 수사 책임자요. 어떤 정치인, 어떤 대통령이 되려다 못 된 사람이 그런 모략을 그쪽으로 풀었는지 몰라도, 내가 광주사태를 일으킨 걸로, 주동한 걸로 나쁜 소리를 하는데 내가 이후 대통령이 됐으니 그러는 거지.

당시 최고책임자는 최규하 대통령이고, 1980년 8월 16일 광주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셨잖아요. 광주사태하고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어.

이순자: 최 대통령이 대통령 되려다가 국내가 너무 시끄러우니까 이 양반한테 자리를 내주고 갔는지도 모르죠. 그건 스토리가 좀 맞겠지만, 자꾸 ‘실력자’라는 건 좀 그렇습니다. 사형선고 받고 교도소에서 20년 살다가도 진범이 나타나 무죄로 나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 사람은 교도소에서도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요. 우리도 우리가 아는 진실이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는 거고요. 진실이 영원히 안 풀린다고 해도…. 우리가 정치적 사면이 급하다고 해서 거짓말한다면 그건 역사 앞에 죄를 또 짓는 거예요.”

전두환: 다 지나간 얘기인데…너무 무식해서 그런 거예요. 군대는 아무리 천하에 없는 놈이라 해도 사단장이 군단장을 능가해서 절대 못해요. 어느 나라든 보안사령관이라는 권한과 임무가 있는데.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꺾고, 청와대를 꺾고, 이렇게는 절대 못합니다.

(중략)

이순자: 그래도 아직 5·18 단체들이 오해를 하니까요. 각하께서 광주에 가서 돌을 맞아서 모든 게, 5·18 가족들과 오해가 말끔히 풀리고 정말 분이 다 풀린다면 뭘 못하겠어요. 지금까지도 이렇게 우리가 고생을 했는데. 그런데 5·18 당시에 각하가 셌으니깐 모두가 ‘5·18 책임자’라고 하는데, 이걸 ‘오케이’하는 건 별개 문제인 거 같아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건데

기자: 비록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해도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역사적 책임감으로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에 헌화하고 무릎 꿇은 것처럼 사과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전두환: 광주에 가서 내가 뭘하라고?

(중략)

기자: 남은 재산이 29만 1000원이라는데….
이순자: 그 얘기하면 속이 터집니다. 1997년 추징금 선고하면서 금융자산이 전부 압류됐는데, 백담사 갈 때 일부 현금은 있었어요. 압류 통장 중 휴면계좌에서 이자가 29만 원이 된 거예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고액 체납자는 재판정에 나가서 ‘나는 이것밖에 없다’며 선서하게 만들었어요. 당시 각하는 집도 있었고, 진돗개, 피아노, 응접세트 등 재산을 다 적었어요. 그때 우리 변호사가 잘못한 게 500만 원 미만은 신고를 안 해도 되는데, 그새 이자 29만 원을 적은 거죠. 우리는 선서만 하는 요식행위라고 해서 무방비로 나갔는데, 판사가 각하한테 ‘29만 원밖에 없는 사람이 골프를 어떻게 치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각하가 당황했죠. 언론에도 보도됐고. 우리가 조롱거리가 돼버렸어요.
전두환: 아주 나쁜 놈들이야.

이순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우리를 ‘종크’ 먹인 거지. 이렇게 추징금을 못 낼 줄 알았다면 교도소에서 평생 노역 하면 되는데, 나오라고 해놓고는 전직 대통령을 ‘×걸레’로 만드냔 말이에요

(중략)

이순자: 각하가 망월동 묘지에 가면, 그래서 오해를 풀고 진실이 밝혀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충립: 그럼 지금까지 대화를 종합해보면, 5·18 당시 중요직에 있었고 그 직후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가족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총체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유감 표명이네요.

전두환: 네. 좋네, 좋아.

 

요약:

1. 전두환과 5.18은 관련성이 1도 없었으나 5.18 발발후 3개월뒤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자라는 누명을 쓴 것뿐이다.

2. 전두환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였으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있다.

3. 12 12 사태는 반란이 아니며 대통령으로 계속 집권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4. 모든 것은 전두환을 음해하고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좌파들의 선동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