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관련자 서훈 취소로 훈장을 빼앗겼던 전직 군무원이 정부를 상대로 법정공방을 벌여 '영광스런 과거'를 되찾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5.18 당시 육군전투병과교육사령부 군무원으로 일하다가 시민군 손에 넘어간 전남도청 지하실에 잠입, 폭약제거 작업을 한 공로로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던 배승일(裵承逸.53.충북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 씨는 최근 빼앗겼던 '명예'를 되찾은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정부의 서훈 취소에 맞서 제기한 서훈취소 철회 청구소송에서 승소해 빼앗긴 훈장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1980년 당시 광주시내 모 탄약창에 근무하던 배 씨는 계엄군의 도청 탈환작전 직전인 5월 24일 "전남도청 지하실에 설치된 엄청난 양의 폭약을 제거해 달라"는 시민군 속 온건파 학생들의 요청을 받고 죽음을 무릅쓴 채 현장에 들어가 2000여 개의 다이너마이트와 450여 발의 수류탄 뇌관을 제거한 공을 세워 그해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1977년 전북 이리역 폭발사고 때 폭발물 처리를 맡아 처참했던 현장을 목격한 그는 "지하실에 가득 쌓인 폭발물을 본 순간 자칫 광주 시가지 전체가 불바다로 변할 수 있다"는 아찔한 위기감에 밤을 새 작업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3월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 참가자 등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며 배 씨에게 수여된 훈장도 함께 박탈했다.
  
  '진압작전이 반란죄로 규정됐기 때문에 훈장을 환수한다'는 통보서를 받은 배 씨는 곧바로 "나는 계엄군이 아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10개월이 넘는 법정다툼을 벌였다.
  
  빛바랜 훈장이야 반납하면 그만이지만 광주시민을 구했다는 자부심까지 함께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언어와 시각 중증장애를 앓는 배 씨는 그 뒤 불편한 몸을 이끌고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기념재단 등을 쫓아다니며 서훈 취소의 부당성을 알리는 탄원서에 서명을 받고 자신은 진압작전 공로자가 아님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지난해 말 서울행정법원은 "폭약 신관을 제거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방지한 배 씨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고 할 수 없어 서훈취소는 부당하다"고 판결, 명예를 되돌려줬다.
  
  성치 않은 몸에도 영동읍내 한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일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배 씨는 "훈장을 빼앗긴 뒤 무자비한 진압작전 공로자라는 오명을 남기게 돼 가슴 아팠다"며 "뒤늦게나마 광주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한 '유공자'로서 명예를 되찾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