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매도하는 이유는 급진 좌파들이 선동을 통해 자기들의 세력을 더 많이 불릴 수 있고, 우파들이 고립될 수 있기 때문임. 

하지만 이건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들이나 이해하는 소리임. 정치에 무지한 이들은 좌파, 우파란 단어만 나와도 피로함을 느낌. 
그래서 그들의 시각에 맞춰 설명해보고자 함.

좌파, 우파라는 정치 용어를 빼고 말함. 그래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 없을 거임. 사회주의가 왜 이리 퍼지게 됐는지에 대해 서술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볼 필요가 있음.

과거의 시스템에서 지식은 극소수의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었음. 지배층은 지식을 독점하기 위해 엄격한 신분제로 하위 계층이 지식을 얻는 것을 막아놨음. 그렇기에 무지한 이들이 동서고금 막론하고 넘쳐났음. 그리고 머리에 든 게 없기 때문에, 하위 계층은 지식을 아는 자들은 그저 자기네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존재라고 여겨왔음. 하위층은 무지했기에, 지배층으로부터 자기네들을 지킬 방도라곤 덩어리지어 뭉쳐 다니는 것뿐이었음.

그렇기에 어떤 무식한 이 하나가 현혹되면, 그가 속한 덩어리는 전부 현혹됐음. 이게 과거 사회주의가 판을 치며 그 세를 불릴 수 있었던 이유라고 봄.


하지만, 신분제가 없어진 현재는 과거와 상황이 다름. 

현재는 과거와 달리 지배층만이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님. 그럼에도 사회주의가 판을 칠 수 있는 건,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버렸기 때문이라고 봄. 왜냐면, 과거엔 지식을 탐구할 기술이 현재에 비하면 빈약했다고 봄. 그래서 새로운 지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새 지식이 나와도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잘 되어 있는 편이 아니기에, 전파되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음. 그래서 지식이 증가하는 속도를 사람이 쫓아갈 수 있었고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걸 막을 수 있었음.

교통과 통신이 과거에 비해 눈이 부시게 발달해버린 지금, 지식이 늘어나는 속도를 사람이 쫓아가지를 못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사람들이 생김.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가 생겨났고 퍼지게 됐다고 봄. 왜냐면, 지식을 공유하던 이들은 과거엔 지배계층이었음. 그래서 지식을 가지는 제한이 풀려 버렸을 때, 과거 지식을 갖지 못한 이들은 생각했을 거임. 내가 저 지식을 완전히 얻게 되면, 나 또한 지배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게 됨. 도태된 이들 말고, 지식이 늘어나는 속도를 잘 따라가는 이들의 존재임. 도태된 이들이 제아무리 자기네들이 지배층이라고 소리쳐도, 도태되지 않고 잘 쫓아가던 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거짓말이 됨. 그래서 착안한 게, 도태된 이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식을 섞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거임.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이상 도태된 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창조한 자들이 되는 거임. 그리고 도태된 이들이 부족한 지식을 엮어 만든 새로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회주의임.

하지만, 여기서 부족한 게 있음. 양질의 지식이 창궐하는 요즘 시대에 부족한 지식으로 엮어져 만들어진 사회주의는 불완전한 것이기에 퍼질 수가 없음. 그럼에도 퍼지는 이유가 설명이 안 되는 거임. 그래서 하나의 가설을 세웠는데, 바로 남들의 시선이라는 거임. 도태된 이들은 잘 쫓아가는 이들에게 은연 중에 피해 의식을 가짐. 그래서 그들로부터 무시받는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사회주의란 옷을 입고 마치 자신들이 새로운 정보의 선구자인양 행세하게 된다는 거임. 설령 그 옷이 군데군데 구멍이 뚤려있을지라도 말임. 하지만 구멍들이 신경을 쓰고 봐야 보이는 정도라는 거임.


요즘 시대 와서 사회주의가 퍼지게 된 이유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선구자가 되고 싶은 욕구가 만난 거라고 봄. 

잘 쫓아가는 이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뒤쳐진 이들이 있음. 이들 중 쫓아가기만 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있을 거임.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가는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며, 동시에 자신들도 선구자가 되고 싶어함. 

여기서 도태된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불완전한 지식, 사회주의를 그들에게 보이는 거임. 물론, 그것이 불완전한 지식이 아닌 완전 다른 방향의 새로운 지식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말임.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이들은 설령 그들이 도태된 이들보다 앞서있음에도 불구하고, 도태된 이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에 관심을 보임. 처음엔 새로운 형태의 지식에 혹함.
​그러다가 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또 험난한 여정을 떠날 자신이 없어 주저함. 하지만, 도태된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사회주의가 최고의 지식이 되기 위해서, 이 지식은 힘들여 쫓아갈 필요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얻을 수 있다고 말함. 그 소리에, 상대적으로 뒤쳐졌으나 도태된 이들보다 앞서 있는 이들은 자신도 그들과 함께 선구자가 되고 싶어, 원래 가야 할 길을 뒤로 하고 돌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음. 이게 사회주의가 현재 퍼지는 이유라고 봄.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이들은 사회주의가 새로운 진리인양, 이것들을 탐구하고 또 탐구함. 그러면서 원래 가야 했던 길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이런저런 세련되어 보이는 이름을 가져다가 붙이는 거임. 그게 현재 알려진 신좌파의 형태라고 봄. 


하지만, 현대 기준으로도 사회주의는 불완전한 지식임. 

왜냐면, 현대의 거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한 번쯤은 꺼내고 신봉하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보면, 그들이 말하는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선 탄탄해야 하는데, 경제는 경쟁으로 큼. 모두가 공평하게 얻는 사회주의와는 상반된 것임. 그럼에도 신좌파에서 경제를 어떻게든 사회주의에 섞어보려고 함. 

정상적인 사고를 지녔다면, 경제를 사회주의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가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것인지 깨닫고 버림. 그럼에도 사회주의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하위층이었던 그들이 지배층이 되고 싶기 때문임. 그래서 좌파의 근간은 계급 투쟁인 것이라고 봄. 


하지만 사회가 깨어나면서 사회주의를 버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 그것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를 죽이는 반공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매도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