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국군에 끼친 영향[편집]

대한민국 국군의 심각한 병영부조리와 가혹행위의 원인이 된다. 당장 대한민국 국군에 잔존하는 부조리의 상당수가 일본군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경우 일본군의 잔재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징병제와 30여년간 지속된 군사독재의 영향으로 군대에서 끝나지 않고 민간에서까지 일상화 되어 버렸다.

국군도 1980년대까지는 가혹 행위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가혹 행위로 야기된 자살도 언론 검열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덮어졌다. 당시에는 가혹 행위가 군인 정신을 만든다는 생각이 만연했으며 지금처럼 가혹 행위가 지탄받게 된 것은 다소 최근의 일이다. 국군의 창설기에 구 일본군 식으로 양성된 한국인 장교가 대량으로 들어오기도 했으니 20세기 후반까지 군대에서는 이러한 구타와 가혹행위가 줄을 이었다. 530GP 사건 외에도 대표적으로 2014년 발생한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과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 있다. 그러나 잔재를 없애려는 노력은 수십년이 지나도 겨우 언어순화 운동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국방부에서 "구보"를 "뜀걸음"으로 바꾼 것은 해방 후 67년이 지난 2012년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하다못해 일본군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한국군(특히 육군과 해병대)조차도 구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만큼은 최소한 인식하고 있다.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한 줄이려고 노력중이다.
주로 옛날 군대,[2] 조직폭력배학교운동부 등에서 교사나 고참 또는 선배가 학생들, 신참이나 후배를 교육하거나 군기를 잡을 때 자주 쓰인다. 일반인이라면 엉덩이를 때리더라도 10대만 맞으면 다리가 풀리고 30대 정도 맞으면 데꿀멍하게 된다. 나무 배트보다 알루미늄 배트 쪽이 훨씬 아프다. 대신 나무배트는 무거워서 멍이 깊게 들고 뼈가 상하기 쉽다. 가끔씩 물이 가득찬 드럼통에 나무배트를 물에 불려서 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구 일본 해군의 체벌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일본 해군의 대표적인 체벌은 주먹으로 턱을 수평으로 후려갈기는 '턱(アゴ)'과 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해군정신주입봉(軍人精神注入棒)'이 있었는데, 이중 해군정신주입봉의 약칭이 '밧따(バッター)'. 유래는 영국 해군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국 해군에서도 장교들과 부사관들과 군무원들이 크리켓 배트로 병사들을 구타하는 체벌 방법이 있었는데,[5] 이것이 영국 해군과 교류를 했던 일본 해군으로 넘어온 것. 일본 해군 출신의 소설가 아가와 히로유키의 체험담에 따르면 '나를 원망하지 말고 영국 해군을 원망해라!'라며 밧따를 때리던 인간도 있었다고(…). 한마디로 원래는 야구 배트가 아닌 크리켓 배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쪽본군과 친일파 쪽바리 앞잡이 개색히들 
물론 1순위는 북돼지 개색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