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2월 얄타회담 때 영미가 소련에게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달라고 요청했음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소련은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를 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 했고, '여차저차해서 한반도에 친소정권이 들어서면 좋긴 하겠다.'하는 정도였음

얄타회담 때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처음 논의됐는데, 구체적으로 38선 이북은 소련이, 38선 이남은 미국이 신탁통치를 한다는 내용이 아니고, 만약 전쟁이 종결되면 일단 누구의 주도 하에건 신탁통치를 하자고 약속을 걸어둔거다

게다가 소련 참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만주국을 해방시키고 북한이 아니고 만주를 미-소 간 완충지대로 두려고 했었음

45년 7월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패전이 완전히 확실시 되었는데, 이때부터 미, 소, 영 정상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시에 미국은 한반도를 분할해서 통치하게 될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음
그래서 일단 임시적으로 대충 '헐 선'이라는 가상의 선을 38선 근처에 대충 그어놓고 대강 38선 이남은 무조건 미국이 먹는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 당시만 하더라도 몇년간 신탁통치 후에 미국과 소련이 물러나면서 통일국가로 독립시킬 계획을 가졌던듯 함
이 때까지도 만주를 완충지대로 남기려는 계획은 남아있었음

그런데 문제는 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바로 그 날 소련이 참전했고, 생각치도 못하게 함경도로 너무 빨리 들어왔지

미국은 깜짝 놀란 나머지 최대의 실수를 하게 되는데, 38도선으로 갈라서 통치하자고 소련에 통보한거임

소련도 너무 빠르게 함경도로 들어왔는지라 한반도 통치안은 계획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음
소련은 39도선이 가장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이 덜컥 38도선을 제안하니까 잠깐 어벙벙해졌다가 이게 웬 떡이냐 이러고 낼름 알겠다고 답장 넣음

이렇게 미소공동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때까지도 통일국가로 독립시킬 계획은 있었지만 문제는 두 나라가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었다는 거

미국은 그 통일국가가 친미정권이어야 했고, 소련은 친소정권이 들어서길 바랐음
결국 미국의 생각을 알아챈 소련은 한반도 이남은 먹기 힘들겠다고 판단하고 재빨리 38선 이북만이라도 친소정권을 세우려고 계획했고, 사실상의 정권 수립은 북한이 더 먼저 했지
다만, 북한은 그 때까지도 남쪽 공산화에 대한 미련을 못 놓고 4.3사건을 일으켰음
그러니까 정부 수립은 거의 다 해놓고, 남측이 공산화가 완료되면 자신들 주도로 통일국가를 수립하겠다는 생각.

북한의 정부수립이 눈 앞으로 다가오자 남측의 민족주의자들은 이러다 눈 깜짝할 새에 공산화되겠다 생각하고 재빨리 대한민국 정부를 구성하기 시작했고 5.10 총선거 이후 거의 3개월만에 정부수립을 해버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이지.

북한은 남측이 선수치자 원래 준비했대로 바로 정부수립을 했는데 그게 남한이 정부수립하고 거의 3주 후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