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헤라소재) https://arca.live/b/writingnovel/103541169



 밤에 게워내는 꽃



 1


 저 멀리 고층빌딩 위편에 붉은색 소녀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래에는 휴대폰 카메라를 든 사람들. 모두들 단발의 마법소녀ㅡ카린을 찍으면서 응원하고 있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그야 <마법소녀>에게는 바늘에 묶인 실처럼 승리가 따라오는 법이었으니까.


 ㅡ콰앙!!!


 붉은빛이 한 번 더 번쩍이더니 양서류 모양의 괴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빌딩에서 떨어진 괴인의 몸은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까만 재로 변해 흩어졌다. 저 멀리 마법소녀의 붉빛과 대조되어서 어울렸다.

 마법소녀는 그 사이로 내려와 세워진 자동차 위에 사뿐하게 착지했다.

 사람들은 늦은 밤에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소란스러운 갈채 속에서 마법소녀는 가볍게 발을 구르고서 유튜브 쇼츠에 어울리는 승리포즈를 취해보였다.


 ㅡ찰칵 찰칵


 수많은 액정화면에 귀여운 얼굴이 고스란히 담기지만 누구도 카린의 정체는 알아볼 수 없다. 그런 <마법>이니까.

 그러니 사람들은 숨가쁜 카린의 뺨이 굳어있는 것도 붉은색 눈동자는 어느샌가부터 초점이 풀려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마법소녀 카린은 그 속에서 웃고 있었다. 뺨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간신히, 가장무도회처럼 보이는 그 환호성 속에서 나만이 그 모습을 똑바로 지켜보고 있었다. 웃고있는 카린이 눈짓으로 내 모습을 찾고 있는 게 보였다.



 "그웨에엑."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전투를 마친 카린은 아직도 속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씩 그녀의 등을 쳐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럴 때 쓸데없이 말을 걸거나 사람의 피부가 닿으면 발작이 더 심해지곤 했다.


 마법소녀 카린ㅡ 지금은 게임에서 '무스카린'이라는 닉네임을 자주 쓰던 여자일 뿐인 소녀는 허리를 웅크린 채 속에 있는 걸 게워냈다. 왜소한 어깨. 인식저해 마법이 없었어도 지금의 카린이 마법소녀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카린은 그 후로 한참을 더 속을 게워냈다. 그리고 굳어있어서 결국 입을 열고 물어봤다.


 "...좀 괜찮냐."


 "입, 닥쳐. 씨발." 카린은 훌쩍이면서 끊어지듯 말했다. "이 기분을, 뭘 아냐고."


 그야 마법소녀의 고충 같은 건 모른다.

 다만 나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월에 들어섰는데도 새벽 공원은 아직 춥고, 구토 같은 건 멈추려면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카린은 자주 불행에 취하는 사람이니까.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얘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괴인을 해칠 때 그 역겨운 느낌을 아냐고. 그것도... 사람이었을텐데. 정작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래."


 내 대답을 들은 카린은 고개를 들고서 음울한 미소를 지었다.


 "...여자를 때리는 건 좋아하는 주제에... 뭔가를 죽이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카린의 몸을 때렸던 건, 그녀가 때려달라고 사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뭐라고 하겠는가.


 "그래. 모르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대체 언제ㅡ 우, 윽."


 말이 끊어지고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더 이상 게워낼 것이 없어 침방울만 늘어지고 있었다.

 카린은 한참을 더 그러고 난 후에야 비틀거리면서 수풀을 빠져나왔다. 


 "...끝났으면 가자."


 "ㅡ."


 카린은 퀭하고 공허한 눈을 들어 나를 노려봤다. 그러더니 혼자 비틀거리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그대로 실신해버린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카린의 몸을 등에 업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 이라고 불러주기에도 안타까운 나와 카린의 월세방은 언덕 위쪽에 있었다. 값싼 집세만큼 도심과 떨어진 조용한 곳이지만 여기에서 돌아가려면 번화가를 지나가야한다.


 이제 새벽 네 시가 넘었는데도 거리에 사람들은 넘쳐나게 많았다. 마법소녀 카린이 다녀갔기 때문이었을까. 특히 젊은 남자들이 많다. 

 어쩌다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나도 속이 울렁거렸다. 가벼운 공황발작 증세였다. 오랜 반응을 무시하면서 보도블럭을 걸어나갔다. 카린에게 쏠리는 시선을 최대한 무시하고 무심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심장이 이유없이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겁먹은 표정을 짓지 않으려 속으로 되뇌었다.

 '나도 쓰레기야.' 업고 있는 카린의 자세를 고쳐잡으면서 말했다. '나도 너희만큼 쓰레기야. 내가 이 여자를 얼마나 해쳤는지 알아?'

 그러면 계속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언덕을 오를 때 쯤에는 내 몸도 괴인과 싸운 카린만큼이나 식은땀에 젖어있었다.


 처음부터 방으로 돌아와서 변신을 풀면 좋을텐데. 카린은 전투가 끝나면 허겁지겁 인적이 없는 공원으로 도망치기 바쁘다. 그리고 토악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벌써 세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새로운 일상이라면 일상이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조금은 떨림이 가라앉았고 어떻게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궜다.


 담배냄새. 조금 향긋한 악취가 남아있는 안쪽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내가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기절해 있는 카린의 몸을 욕실에 놓고 옷을 벗긴 후에 몸을 씻긴다. 벌거벗은 몸에 물을 뿌려도 카린은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마치 죽어버린 사람처럼.


 하지만 나는 카린이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오직 죽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2


 무거운 눈을 뜨자 창밖에서 창백한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새까만 방, 유일하게 있는 좁은 창문 바깥의 하늘빛만 새파랬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 눈을 옮기자 그 아래 카린이 등을 기댄 채 침대 위에 앉아있다. 여전히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


 카린은 내가 일어났다는 걸 알아채고는 머리를 자기 어깨에 기대고 멍하니 내려다봤다. 왼팔에 주사기를 꽂은 채였다. 거기 담긴 투명한 액체는 식염수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진짜 병 걸린다." 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라고."


 "아프면, 병원비 들잖아."


 카린은 어둠 속에서 조그맣게 숨을 삼키고는 말했다.


 "...아프면, 이제 그냥 죽을건데."


 "......"


 손잡이를 누르자 주사기 속의 내용물이 천천히 줄어든다. 그러고서 다시 당기면 핏물이 뽑혀 나왔다. 사실 어두워서 그 색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냥 알고 있었다. 저건 그냥 카린의 오랜 버릇 같은 거였다. 그러나 몸에 좋을 리는 없다. 패혈증의 위험도 있었다.

 나는 피를 뽑은 주사기를 그대로 식염수가 담긴 병에 가져다 대는 걸 보고서 일어나 주사기를 빼앗았다. 카린은 저항했다. 하지만 주사기를 부러뜨려 휴지통에 버리자 힘없이 툭, 벽으로 등을 떨굴 뿐이었다.


 "...나쁜새끼."


 "그래."


 시간을 확인하고 일을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타임이 금방이었다.
 카린은 벗은 몸 그대로 내가 머리를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병신." 카린이 다시 말했다. "그거 일한다고 얼마나 처 번다고."


 "...뭐라도 해야지."


 "그 나이에 편의점 알바를 해서 미래가 있어?"


 그야 없다.

 카린은 등을 떼고 내 쪽을 쳐다봤다.


 그 사이 햇살의 방향이 바뀌어서 방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카린의 부드러운 몸의 굴곡이 그늘져 보였다.

 떨리듯이 비웃듯이 카린이 말했다.


 "...그냥 나가지 말고 오늘로 그만 둬. 섹스나 하자. 너 좋아하잖아, 어린 여자."


 카린이 오므리고 있던 무릎을 앞으로 뻗었다. 가랑이 사이에 그늘이져 도리어 선명해졌다.

 내 눈을 보며 모멸하듯이 비웃는다. 그렇지만 실제론 떨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젖어있지도 않을 것이다. 카린은 혼자 남아있는 걸 겁먹고 있을 뿐이었다.


 "...옷 입고 얌전히 문 잠그고 있어. 집주인 와도 문 열어주지 말고."


 "......"

 카린은 결국 그대로 이불을 둘러쓰고서 뒤돌아 드러누웠다.

 나는 더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문을 잠궈둔 채 일을 나섰다.



 *

 몇 년 전 이렇게 문밖으로 다시 나서는 데까지는 3년이 걸렸지만, 막상 시작한 편의점 일은 그리 힘들진 않았다. 나는 연기를 잘하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연기가 특기였다. 그러다가 딱 한 번 그 연기가 무너진 다음에는 다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 부서진 가면의 조각들을 잘 주워 얼굴에 붙여쓰면 멀쩡한 척 계산대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아직.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쓰레기야. 그래. 너만큼 쓰레기라고. 내 집에는 벌버것은 여고생이 있어. 정신병 걸리고 불행한 여자가 있다고. 나는 그 여자를 가둬놓고 몇 년이나 따먹었어.'


 물론 카린은 여고생도, 집 안에 갇혀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안에서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뇌이면 떨림은 가라앉는다. 식은땀도 줄어들고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손을 떨지 않고서 담뱃갑을 내밀 수 있다.


 "네. 마일드 세븐 한 갑이요."



 *


 늦은 시간 일을 끝마치고서 다시 서둘러 언덕을 올라갔다.

 원래는 오전부터 이 시간까지 편의점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카린이 마법소녀가 된 후로는 근무시간을 양보해야 했다. 휴무 때문이다. 괴인이 등장하는 건 보통 사람의 원념이 강해지는 월요일이나 목요일 즈음. 다소 비정기적인 휴무를 가지는대신 풀근무를 뛰는 날이 많아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는 것도 적응이 되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뭣보다 얼마되지 않아도 급여가 느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언젠가... 언젠가 카린이 마법소녀를 그만둘 수 있다면 이대로 근무를 늘린 채 이어나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쩐지 그런 날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걸을수록 멀어지는 도심쪽을 보면서 나는 마법소녀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아주 오래전에도 마법소녀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현실에 정말로 <마법소녀>가 나타나기 전.

 나도 아직 내 문제들을 외면할 수 있었던 어린시절에 나는 누군가와 화면 앞에 나란히 앉아 마법소녀가 활약하는 만화를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만화 속의 소녀는 나이에 맞는 아름다운 고민 속에서, 다시 아름답게 변신을 하고. 딱 이겨낼 수 있을만큼 주어지는 상냥한 위기에 맞서 적들과 싸워 이겼다.

 그 때의 나도 변신 마법소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자라도 그녀들을 동경하고 좋아할 수는 있었다. 순수하게 그녀들이 이기기를 응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선택받은 소녀 같은 건 질색이었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으니까. 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꿈들은 아파서 도리어 힘들어질 뿐이다.


 카린도 그랬을까.


 어릴 적에 카린도 그런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무척 무서워졌다.



 *


 방으로 돌아가자 카린이 몸을 웅크리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싫어!! 씨발, 꺼지라고!! 싫어!!!"


 처음에는 괴한이라도 침입한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불을 켜자 대신 줄무늬 고양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매끈한 짧은 털과 노란 눈을 가진 차분한 고양이.

 카린은 그 고양이에게 손이 닿는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엉망이었던 방은 더욱 엉망이 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그렇지만 바깥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마법>의 힘이었다. 실제로 고양이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 카린이 던지는 물건들을 빗겨 쳐내고 있었다.


 고양이는 귀여우면서도 이지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봤자 변하는 건 없어. 마법소녀 카린. 아니면 이걸로 포기할 거야?"


 카린은 몸을 웅크린 채 히스테리컬하게 비명을 질렀다. 움켜쥐고 있던 게임기를 세게 집어던졌지만 고양이의 코앞에서 정지하고는 아래로 떨어졌다.


 "왜, 왜!! 내가 죽여야 되는데!!!"


 흐느끼던 카린은 이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종일 먹은 것이 없었는지 투명한 침이 흐를 뿐이었다.


 고양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내 쪽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어째서 카린은 이렇게 나를 원망하는 거지? 인간 소녀들은 다들 수긍하기 어렵지만, 카린은 좀 더 심한 것 같아."


 "...평범한 거야."

 내가 말했다.


 "흐응."


 고양이는 관심없다는 듯 유머처럼 한 차례 야옹하고 울고는 유령처럼 사라져버렸다. 목소리만이 남아 귓가에 들려왔다.

 ㅡ아무튼 내일은 다시 마법소녀의 출전일이야. 저녁 아홉 시. 늦지 않도록 챙기도록 해.


 *


 "....씨발...."


 카린은 훌쩍이면서 더러워진 시트를 움켜쥐었다. 다행히 고양이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패닉 발작에 빠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대로 오물 속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가가 침대 시트를 집어들자 카린은 소동물처럼 원망하듯 내쪽을 노려봤다. 내내 혼자 있었을 텐데도 화장을 해두어서, 검은 마스카라와 립스틱이 번져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어나 봐."


 "싫어."


 "......"


 "내가 토한 건데 뭐가 어떻다고!!"


 훌쩍이면서 반항하는 걸 억지로 빼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카린은 매트리스 위에 주저앉은 채 원망하듯이 내쪽을 노려봤다.

 지쳐서, 한숨을 쉬고 돌아서자 소리를 질렀다.


 "야!! 가지 마!!"

 무시하고 돌아선다. 그러자 금세 울음이 섞여나왔다.


 "야!! 가지말라고!! 나 진짜 죽어버린다!!"


 나는 방음마법이 아직 작동하는 걸 확인하면서 문을 닫았다. 문 안쪽에서 거의 들리지 않게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밖에서 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은 제대로 근무하지 못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한 후에 담배를 꺼내물었다.

 타올라가는 연기. 나는 멀리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마법소녀에 대해 생각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카린이 <마법소녀>가 된 것도, 사실은 그녀가 살고 싶어했다는 것도.


 근원, 중개자, 마녀의 소재(素材)자. 뭐라 불러도 좋을 그 고양이는 굳이 나에게도 <현실의 마법소녀>의 조건을 설명해줬다.


 ㅡ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결한 여자. 그러나 막상 죽기 직전엔 필사적으로 살고 싶어했던 여자.

 한심한 소원을 통해 그 모순된 순간에 정지되어 있는 것이 이 현실의 마법소녀라는 존재다.


 죽고 싶어했으면서도 실은 죽고 싶지 않았던 여자.

 그리고 그녀는 근원의 부름에 답해 괴인들을 무찔러야 한다. <균형>이 다시 맞춰질 때까지. 해방되는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일지도, 15년 후일지도 모른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걸 견디지 못해 포기하고 죽어버리는 마법소녀들이 많았다며 고양이는 태연하게 얘기했었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 거야?"


 "너는 마법소녀 카린이 선택한 사람이니까."

 그 때 고양이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마법소녀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유일한 인간이라고. 그리고 그 때부터 카린은 내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이 되었다.

 


 문을 열고 돌아가자 얼굴로 날카로운 커터칼이 날아들었다.

 손잡이는 잠겨있던 모양이지만, 날이 스쳤는지 뺨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ㅡㅡ."


 카린은 씩씩거리면서, 울면서 내 쪽을 너려봤다. 하얀 팔뚝은 마구잡이로 그어서 엉망이었다.


 "나가면 죽어버린다고 했잖아!!!"

 흉하게 외쳤다. 두 눈은 이미 초점이 없는 채로 온 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걸어가서 카린의 뺨을 때렸다.


 짜악, 하고 연극적인 소리와 함께 카린의 고개가 돌아갔다. …내 손도 조금 감정으로 떨리고 있었다. 카린이 멍하니 돌아보는 뺨을 다시 한 번 쳐 올렸다. 그러자, 뒤늦게 카린의 눈에도 불이 들어왔다. 두려움이 서투른 감정으로 바뀌어서 내게로 달려들었다.


 카린은 침대 아래로 덮쳐와 가녀린 팔로 내 목을 조르려 했다. 나는 버둥거리면서 그것을 막으려 하고 카린은 다리까지 감싼 채 나를 넘어트리려했다.

 카린의 팔목은 피로 미끌거려서 잘 잡히지 않는다. 결국 바닥에 넘어져 카린이 올라타자 상처가 벌어진 손목에서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카린은 흉하게 번진 두 눈을 치켜뜬 채로 내 목을 조르려고 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인 채로.


 나는 인상을 쓰며 말리려다가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카린의 몸이 너무 가볍고 또 연약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언제라도 카린의 목을 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내가 하룻밤 방으로 돌아오지 않는 걸로도 카린은 죽일 수 있었다.


 내가 양손을 놓아버리자 카린은 웃으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가늘고 섬세한 그 손가락으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스스로 시도해봤기 때문일까. 따뜻하게 떨리는 손은 의외로 정확하게 기도를 틀어막아서, 어쩌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지치기도 했고 또 울고 있는 카린의 표정을 보기 힘들어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금세 울먹이는 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 감지 마……."

 목을 조르고 있던 양 손이 부들거리더니 힘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너는……. 끝까지 나를 봐줘야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자 카린의 눈물이 우르르 떨어졌다. 결국 그녀는 훌쩍이더니 정수리를 내 가슴팍에 기댔다. …언제나와 같은 결말이었다.


 "으아아, 으으으…."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있었는 지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가슴팍을 적셔갔다.

 내내 혼자 있으면서,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건 지 새로 꾸며놓은 매끄러운 단발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씻고, 있다가 약 바르자."


 그대로 진정될 떄까지 안고 있다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3


 좁은 욕실인데도 구태여 함께 따라들어온 카린과 함께 몸을 씻었다. 방금 스스로 팔목에 낸 상처는 임시로 수건을 싸매어놓았다.


 "……."


 카린은 이제 아무런 말도 없이 어깨를 늘어트린 채 가만히 비틀거렸다. 그러면서도 내 앞을 떠나지는 않았다.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면서.


 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왼팔을 잘 받쳐들고서 카린의 몸을 씻겼다. 지나치게 하얀 피부 위에 피와 땀과 더러운 오물들을 씻어냈다.

 카린의 몸은 여자답게 부드러웠다. 말랐으면서도 형태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젖가슴과 허벅지를 차례로 문지른다. 어제는 제대로 씻지 못한 부분들을 비누로 꼼꼼히 문지르고 따뜻한 물줄기를 흘려줬다. 낡은 난방이라 늘 온도 조절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

 바닥에 빨간색과 흐릿한 검정색이 뒤섞인 물줄기가 흐르는 동안 카린은 가만히 서있었다. 그저 생리적으로 커져 있는 내 물건을 명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형처럼 얌전해진 카린의 머리를 마저 씻기고 나온 후에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말린 후에 옷을 입혀주려고 할 때 카린이 말했다.


 "…거기, 아파."


 "자업자득이야."


 카린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힘없이 나를 노려봤다. 내가 때린 뺨은 아직 붉었다. 카린은 시선을 마주하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쓰레기 같은 새끼."


 "그래." 내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카린은 쓸쓸한 목소리로 아이처럼 중얼거렸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든 내일은 어김없이 덮쳐올테니까.

 억지로 어떻게든 잠을 청하는 밤에, 카린은 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몸이 자해한 상처가 아물지 않았으니 자제하는 게 좋았겠지만, 나는 거기에 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니었다.

 눈동자가 어둡고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카린을 안는다.


 어째서 언제나 육신의 부드러움만은 선명한 건지. 카린은 내 몸을 끌어안고서 파고들어간다. 더, 밤으로 떨어져간다. 

나를 안은 채 고개를 숙이는 카린의 눈은 반짝이지 않았다. 조금도 반짝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얀 살갗은 뜨겁고 따뜻한 것들이 흘러내린다.


 카린은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참았다. 내 목을 그러쥐고서 입을 맞춘다. 그곳에는 열정뿐이다. 어디에서든 도피처를 찾아보려는 듯한 몸짓. 몸부림. 하지만 내 욕구도 결국 카린을 천천히 부숴트릴 뿐이다. 그런데도 카린이 쥘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이었다. 


 "아, 파. 아, 읏..."


 열기를 내쉬면서 숨을 죽이고 몇 번이나 호흡을 게워내고. 그러나 울음을 삼키면서 카린은 어설프게 내 타액을 마신다.


 이 모든 행위가 서로를 아래로 떨어트린다는 것을.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아마 서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몇 번이고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몇 번이나 서로에게 서로를 그렇게 토해내고 나면ㅡ

 ㅡ카린이 허리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질척이는 몸, 가는 곡선으로 떨어지는 것들.


 여자의 애처로운 분홍색 살점.

 이어진 채로 오직 살아있다는 것만을 증명하는 것들.


 다시 돌아온 새벽에 카린은 지쳐 쓰러진 채로 조용하게 말했다.


 "죽고 싶어. ...이제 싸우고 싶지 않아."


 "거짓말." 내가 말했다.


 그 말에 카린은 비로소 핑그르르 눈물을 매달았다.


 "...그래, 거짓말이다. 나쁜 놈... ...그렇지만 죽이고 싶지 않아. 그건 정말이야."


 "...."


 그러나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서,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카린은 그것을 하지 못해서 오직 스스로를 상처입히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결국에는 살고 싶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카린이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모르겠다.


 예쁘다는 것이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많은 여성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세상을 카린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상냥한 세상은 줄 수 없다. 나는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남자니까.


 그래도 나는 말했다.


 "..그래도 네가 정말로 죽고 싶어지면."


 마침내 마법소녀를 그만 두게 되면.

 아니면 결국 마법소녀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같이 죽어줄게."

 나는 말했다.


 카린은 그저 나를 바라보고, 그 눈은 예쁘지만 여전히 어떤 말로도 그 눈동자에 빛이 들어오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옆에 있어줄 수는 있다.

 그리고 카린이 실패한다면 함께 죽어줄 수도 있다. 목숨을 포기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쉬운 일이니까.

 그래서 그 검은 눈동자 곁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계속 살아지면 끝까지 견뎌 봐. 돈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벌어볼테니까."


 잠시 후에 카린은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떨궈내고서 중얼거렸다.


 "...병신새끼."



 *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기적 같은 건 없다. 카린이 자기 앞에 나타날 모든 괴인을 물리친대도 현실이 자라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카린은 마법소녀로 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직된 미소로 인사를 하고 공원으로 도망가 몇 번이고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네가 살아남은 방식이니까.

 한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도 다시 한 번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너의 옆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너에게는 만화 속의 마법소녀와는 다르게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갈 자리는 오직 이곳이었으니까.


 언제까지나 내가 네 옆에 있을 것이다.




 /밤중에 게워내는 꽃, 





 아무래도 마지막엔 이야기없이 감수성으로 후려쳐버린 것 같지만

 고쳐보려면 일주일은 묵혀둬야 할 것 같아서 이 글은 이 타이밍에 정리.


 (-소재 <마법소녀>는 3월 내내 마법소녀 소설을 고쳐썼더니 자연스레 끼어들게 되었슴,,,

 -사실 쓰고 보니 남자는 공황장애만 좀 있지 멘헤라는 아닌 거 같읍미다)


 아무쪼록 재밌게 봤다면 좋겠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