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산서성 옌먼관

서쪽으로 길게 뻗은 만리장성이 보이는 한 건물, 이곳에서 옌시산은 여유롭게 파이프에 담배를 넣고 피우고 있었다. 그는 일본군이 장자커우를 점령했고 다퉁을 위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타이위안에 있던 병력을 이곳으로 이동시켜 본부를 세웠다.

"린뱌오와 허룽은 언제 이곳에 도달한다던가?"

"2시간 전 쯤 판스현 인근을 지났다고 하니, 1시간 이내로 이곳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옌먼관 와보는건 매우 오랜만이구먼, 한 6년은 됐나?"

옌시산은 과거를 회상했다. 1931년 반장전쟁에서 패배한 후 그의 고향 산시로 돌아왔을 때, 무주공산이었던 산시는 황폐해져있었다. 산시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이 근처의 요리옥에서 식사를 했었는데, 그곳의 마파두부 맛은 일품이었다. 아쉽게도 그곳 주방장이 1935년에 죽어서 가게 문을 닫았지만, 옌시산에게는 여전히 추억으로 남아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옌시산에게 부관이 다가왔다.

"장군님, 린뱌오와 허룽의 팔로군이 도착했습니다."

"지금 바로 나가겠네."

본부 앞쪽의 공터에는 팔로군 2개사단가량의 병력이 집결해있었고, 그 선두에 린뱌오와 허룽이 있었다.

"팔로군 115사단장 린뱌오가 옌시산 장군님을 뵙습니다!"

"팔로군 120사단장 허룽이 장군님을 뵙습니다!"

두 장교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옌시산은 말했다.

"그대들이 허룽과 린뱌오시오? 이야기로만 듣다가 이렇게 직접 보니까 반갑구먼."

"저희도 장군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세 장군은 본부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사단은 평형관의 우리 군을 지원해주시오. 한시가 급하오."

"그 방안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저희 팔로군은 정면전투에 익숙지 않고 유격전을 장기로 삼고 있습니다. 저희 팔로군이 독자적으로 평형관으로 들어오는 일본군들을 상대로 유격전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평형관은 우리 군이 최대한 막아볼테니 뒤쪽의 일본군을 최대한 괴롭혀주시리라 믿소."

"그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회의를 끝내고 군영으로 돌아온 허룽과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지시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그 지시에 따랐다.

"우리 부대를 평형관 인근 넓은 지역에 흩뿌려 일본군이 어디로 들어오는지 감시하게. 일본군 부대가 그쪽으로 지나가면 확실히 도망칠 자신이 있을 때만 공격하고, 최대한 빨리 백병전을 벌이거나 하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리고... 그때 1000명을 뽑아 옌시산군을 공격하기로 한 건 어떻게 됐나?"

"이미 특공대 1000명은 뽑아놨고, 명령만 기다립니다."

"한창 전투가 진행중일 때는 공격하지 말고 일본군의 공격에 옌시산군이 패하여 와해되는 도중일 때나 일본군이 후퇴해 소강상태일 때를 골라 공격하게."

"명 받들겠습니다!"

부관이 나간 후, 린뱌오는 옌시산의 얼굴을 생각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반동놈의 새끼...'



8월 23일 평형관 인근

"이치! 이치! 이치 니!"

"무적의 황군 5사단이여~ 오늘도 승리하여 조국과 천황폐하의 이름을 빛내세~"

일본군 5사단 9여단이 산골짜기를 따라 군가를 부르며 행군하고 있었다. 전쟁 초반의 연승으로 인한 높은 사기에다 중국군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은 부대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한가지 문제는, 참모본부(대본영은 1937년 11월 쯤에 설치되었고 이때는 아직 참모본부였다)는 5사단에게 산시성을 공격하란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것.

본래 5사단은 바오딩 방면을 공격하는 6사단을 지원하기로 했었지만, 5사단장 이타가키는 전공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참모본부를 제끼고 독단적으로 산시를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고, 참모본부 그가 괘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으로 오히려 지원부대를 조금 보내주었다. 물론 이타가키가 실패하면 곧장 해임시킬 생각이었고.

어쨋든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병사들은 흥겹게 군가를 부르며 앞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그 시각, 인근의 산 위에서는


"동지, 공격이 준비되었습니다."

"좋아, 일본군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게. 모든 화력을 저 앞의 부대에게 집중시켜!"

"발사!!!!!!"

-투콰콰쾅!

갑작스럽게 쏟아진 포화에 삽시간에 수십명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일본군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포격이 성공했음을 확인한 팔로군은 우왕좌왕하는 일본군에게 결정타를 먹이기로 결심했다.

"전군 돌격! 침략자 구이쯔놈들을 섬멸하자!"

"팔로군 만세! 공산당 만만세!"

골짜기에 매복해있던 팔로군이 일본군들에게 돌격했고, 방금전의 포격으로 혼비백산하던 일본군들은 그대로 털리기 시작했다.

"으악! 내 팔! 내 팔! 어무이~~~"

양쪽의 팔로군에게 팔을 잡힌 채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가 터져나가는 일본군이 있는가 하면, 포화를 피하기 위해 엎드렸다가 그대로 목에 칼이 박히는 일본군도 있었다.

이런 상태는 몇분 정도 지속되었고, 일본군 수십명이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차려! 공격해온 놈들의 화력은 보잘 것 없다! 전군 착검!"

"짱1깨놈들아! 이것이 바로 수류탄이여~!"

그나마 19 여단장의 통제로 일본군은 점차 제정신을 되찾았고, 정신을 차린 일본군의 우세한 체격과 화력에 팔로군은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대대 후퇴! 전장을 탈출해 집결지까지 각자 이동하라!"

팔로군의 대대장은 후퇴를 명령했고, 이에 공격해온 팔로군들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대대장 동지! 대승입니다! 아군 사상자는 32명이고 일본군 사상자는 추정 약 100여명입니다!"

후퇴하면서 그 새 전과확인까지 마친 2소대장이 말했다.

그들의 앞에는 한창 일본군이 정신없을 때 노획한 군수물자들과 무기들이 꽤 쌓여있었다.

"좋아! 상부에 이 전투에 대해 보고하도록! 기한은 내일 6시까지다."

"충!"

다만 1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의 실제 사상자는 약 60명 정도라는 거?



9여단 외에 다른 일본군도 평형관을 향해 진군하는 동안 팔로군의 유격전에 시달려야했다. 산골짜기 어딘가에서 팔로군은 귀신 같이 튀어나와 일본군에게 포화를 퍼붓고 달아났으며, 군수물자들이 조금씩 털려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진군하던 일본군 15사단과 114사단, 15혼성여단 등등은 8월 25일 드디어 평형관 5km 앞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곳에는 중화민국군 17군이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행군하느라 지친 부대를 휴식시켜라. 내일 22시 정각에 17군의 우익방면을 집중포격, 그로 인해 생긴 구멍을 제 11보병연대와 제 21여단 소속 전차부대가 뚫고 중국군 대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나머지 사단들을 돌격시킨다. 이때 장중정의 직계부대가 존재하는 중군 부분을 제외하고 좌우익 부분으로 집중적으로 돌격, 중군과 장중정 직계부대인 21사단을 섬멸하도록."

대본영의 명령을 제끼는 등 또라이 짓을 일삼은 이타가키라도 지휘력 하나는 출중했다. 다른 장성, 특히 창저우로 간 렌야 같으면 무조건 반자이 돌격을 일삼아(이것만으로도 장제스 직계부대를 제외한 오합지졸 중국군에게는 꽤 효과가 있는게 함정) 쓸데없이 아군의 피해만 키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타가키는 렌야가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듣자 하니 창저우의 중국군 방어선도 못 뚫고 고전중이라는데, 참 꼬시다.


같은 시각, 옌시산 등 중화민국 장군들도 본부에서 한창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그 동안 팔로군의 유격전에 시달려온 바, 이타가키 그 자라면 바로 공격할리는 없을거요. 최소한 휴식은 주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경계 병력을 많이 배치하고 일본군이 야습을 가해온다면 바로 전 병력을 전투태세로 들어가게 하는 게 좋겠소. 또한, 우리가 최근 덕국으로부터 받은 대전차소총을 활용해 최대한 치하전차 부대를 저지하시오. 
보병부대가 들어온다면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익 방면으로 올 가능성이 크니 총통 각하 직계부대를 일본군이 눈치 못 채게 일부를 우익쪽에 배치하시오. 지금으로썬 그 부대가 대전차소총을 가진 몇 안되는 부대니."

"알겠습니다!"

같은 시각, 홍군의 본부에서도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일 전투 상황을 잘 보고 때를 맞춰 특공대로 국민군 부대를 후방에서 기습하시오. 장제스의 직계부대가 있는 방향은 포격만 하도록 하고 실제 총격은 오합지졸인 다른 부대가 있는 곳에만 하시오."

"알겠습니다 동지!"

3개의 군대가 각자 작전에 대해 준비하며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