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씨, 그거 알아? 사람은 마법사가 아니라도 인생에서 세번, 마법을 쓸 수 있다는거.”


 그녀는 마법사였다. 우리가 두번째 만났을 때 그 사실을 알려주었고, 네번째 만났을 때는 잊지 못할 기억을 안겨주었다.

 그녀를 다섯번째 만났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린 연인이 되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던 때는 기억이 희미하다. 나는 흘러간 시간에 깎여 몰랐던 그 때를 그녀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굉장히 귀여웠었는데……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을까? 후훗.”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길가던 봄날, 그녀와 나는 서로 마주쳤다고 한다

 그녀는 나에게 노란 민들레 한 송이를 선물해 주었고 나는 답례로 그녀의 뺨에 쪽 하고 입술 한 쌍을 맞추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까, 그녀 같은 사람에게 버드키스를 했던 기억이 잊혀질 리 없을텐데도

 이 말을 듣고서야 나는 간신히 한손에는 민들레 꽃을, 한손에는 어머니의 손을 쥐고 걸었던 어느 날을 기억했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그녀와의 만남은 4월의 어느 즈음이다

나는 그 때 얼마는 날아간 민들레 씨앗을 들고 민들레 홀씨들이 날리는 파아란 초원 위에 있었고

아무도 없던 그곳에서 날리던 씨앗들은 나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조금 황홀해진 나는 그 안에서 온전히 모습을 유지하던 그 민들레씨를 보자 왜인지 다른 씨앗들과 같이 만들어 주고 싶어 대를 꺾고 살살 불어가며 조금씩 홀씨를 만들어 날리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던 그곳에서 갑자기 한 여자가 !” 하고 나타나더니 내 손에서 그것을 빼앗고는 내가 하던 그 행위를! ! 후우!” 하면서 금세 끝장내 버렸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나는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는데, 그녀는 빙긋 웃더니 장난은 여기까지, 이제 그만 돌아갈 시간이에요.” 라고 말했다. 처음보는 여인이 내 소소한 유희를 방해한 것에 대해 화를 내야 할지 그렇지 않다면 슬프게도 남자의 본능에 충실해 매너를 지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에게 그때 어머니가 이런 풍경을 참 좋아하시던데, 다시 민들레가 활짝 피게 되면 같이 오는게 어떨까요?” 라고 말하곤, 날리는 씨앗들 속으로 웃으며 걸어들어갔다.


 나는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머니가 아시는 분인가?’ 라던가처음보는 사람에게 무슨 소리지?’ 라는 등 얼빠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멀어져 손을 뻗어 잡기도, 쫓아가기도 어정쩡할 만큼 멀어지자 당신은 누구신가요?” 라는 말 한마디를 겨우 뱉을 수 있었다. 그러자 잠시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이내 활짝 웃더니 이제는 말해 주게 되었네요, 저는 마법사랍니다!” 라고 말하고는 내가 이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민들레 홀씨에 가려 사라져버렸다


 나는 자칭 마법사가 있던 곳까지 달려가 보았지만 그녀의 머리칼조차 찾을 수 없었다. 초원 어디에서도

그래서 나는 이곳에 있는 민들레 씨앗들에게 부탁하길, 만일 그녀가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 아니라면, 그녀를 다시 보게 해 달라고 했다


 이 기억도 한낱 떠도는 머릿속의 파편이 되어갈 어느 유월 무렵,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 나는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 좌석에 앉아 집으로 가고 있었다


멍하니 내 앞의 창 한 조각을 바라보았는데 지하철이라는 놈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지상에 나와 있었던 탓인지 

이 놈의 유리는 노을빛을 받아 불그스름한 태양빛을 뿌옇게 내게 뿌려 눈을 부시게 했다.

 노곤해서일까, 노오랗고 바알간 그 빛에 취해서일까, 아니면 노을이 가고 황혼이 오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올 포근한 밤이 기다려져   마음이 설레여서일까. 몇 정거장 남지 않은 곳에서 잠시 눈을 감아 기분좋은 탈력감을 흠뻑 음미하고는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노란 이어폰을 작고 동그란 그 귀에 끼고는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안녕?”  


 그녀가 말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그 순간에는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의 그때처럼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수채화 풍경에 올려 보냈던 의식이 흘러 들어오지 못하고 유화가 된 그곳에 진득히 붙어버린 것 때문일 것이다

 잘 익은 치즈처럼 눌어붙은 정신을 진득하게 떼고 있었는데 다시 그녀가 말을 건넸다.


“6분 뒤에 내려야 하지 않을까?” 


두번째 마디의 말을 듣고서야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검어질 구름과 끈적하게 붙어있던 정신은 내게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보였고 그것을 그녀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흐음. 곤란하네.”


 그럼 일어나게 해 줄게.”


 , , 호오~”


내 눈에 신기하게도 주름 하나 없이(아직 흐린 시야 때문일 것이다) 반짝이던 그녀의 두 초승달이 위아래로 모아져 둥근 보름달이 되고는 내게 숨결을 불자, 곧 내 코 안부터 간지러워지며 곧 화한 청량감이 목구멍 안쪽을 지나 기도를 넘어 몸 곳곳에 흩어지고 3000m달리기를 한 것처럼 혈액들이 내 몸을 쿵쿵 울렸다. 몸이 울자 이제는 장미처럼 붉은 바다에서 놀던 집나간 그놈이 저를 부르는 것을 알고는 잽싸게 돌아왔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함께 있기에 신이 난 적혈구와 헤모글로빈들은 돌아온 녀석을 축하하기 위해 위로 달려나갔고, 내 부드러운 기억장치는 이 축제에 난장판이 되어 모든 것을 다시 정리해야만 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나는 정리치인데도 불구하고 이때만큼은 버려진 것 하나 없이 순서대로 정돈되어 희미하던 것도 오히려 또렷해졌다.


이제서야 나는 그녀와의 기억을 끌어올렸고 곤란해하던 그녀로부터 여기까지 10초가 흘렀었다. 마치 체력과 마력이 가득찬 게임 캐릭터같이 처음 겪어보는 완벽한 컨디션의 나였지만


아 낮에 조금씩 쓸려니 새벽 갬성이 안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