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마법사가 살았다


그 마음은 너무나도 검고 검어서, 오로지 불신만으로 가득찼다


그 검디검은 마음이 그 존재를 증명하는것처럼, 사람들은 그를 흑의 대현자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존재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노래할뿐이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자신만을 위한 노래는 끊겼다


"이것봐요 카슨.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나요? "


그녀를, 만났다. 모든세상으로부터 사랑받은 그녀를


***


"카슨씨! "


잔잔하게 흐르던 물결은, 고함으로 인해 파도처럼 넘쳐흘렀다. 그 어떤 이탈없이 곧게 나아가던 의식의 선은, 갑작스러운 벽이 나타나자 방향을 틀수밖에 없었다


현명한자는 흐름을 끊은자가 누군지 찾았다. 바로앞의 소년이 그를 부른것이였다. 이제보니 현명한자는 자신이 엄청난양의 책더미속에서 멍때리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현명한자는 마침내 모든것을 파악하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잠들었지? "


"잠들었다고요? "


소년은, 별의 마법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치못한 반응에 현명한 자 역시 의문에 빠졌다


"나 잠든거 아니였어? "


"잠자긴요. 오히려 눈뜬채로 책더미속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고요"


그는 물고기가 아니다. 눈뜬채로 잠잘수 있을리 없다. 대체 머릿속에 품은 생각이 얼마나 깊길레 마치 잠든것처럼 꼼짝도 안한걸까


"책좀 정리하세요. 할일있다고요"


현명한자는 주변을 둘러봤다. 방은 정리정돈이 되었다. 딱 하나 빼고


한가운데에 놓여진 석판. 그 위에는 천으로 싸맨 사람의 형상이 있었다. 촛불들은 별색 불꽃을 내면서 그 주위에 놓여져있었다


"장례식인가?. 누구야? "


"이름없는분. 그래서 제가 맡기로 했어요. 별들이라도 그를 기억해주겠죠"


별의 마법사는 석판위에 놓여진 촛불들을 하나씩 껐다. 하나를 끌때마다 한손으로는 그 촛불을, 다른한손으로는 기도를 하면서. 오로지 멀리선가 불어오는 바람으로만 불을 껐다


"리만. 백의종군당한 자, 칼을 부숴뜨린자, 잊혀져 더이상 담아지지 않는자"


하늘에는 별빛들이 작게 빛나기 시작했다


"리만. 싸움을 업으로 짊어진 병사, 조용히 곡식을 들뿐인 평민, 고독하게 죽은 수거자"


빛이 강해지자, 어둠역시 강해지니. 별들은 빛을 내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어둠으로 가득찼다


"리만. 아들과 딸의 아버지고, 아내의 남편이며, 마지막에 남은 효자요, 수많은 이들을 무명으로 구한자"


마침내 모든 불이 꺼졌을때, 별들은 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웠다


"리만. 한낮 인간. 그렇기에 통고하오니, 별이시여. 이자의 지옥을 보살펴주소서. 이자의 천국을 빗어주소서, 이자의 연옥을 헐어주소서. 한낮 인간의 업을 끊어주소서"


촛불은 모두 꺼졌지만, 별들은 그 어느때보다 밝았다. 별들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빛을 머금은 바람은 죽은자의 시신에 닿아, 잔잔한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한사람이, 먼지가 되어 별들로 돌아갔다


"애탄해주소서"


보라 천개의 별이 화답하니, 그 증인이 바로 하늘에 있도다. 무수히 많은 별들은 답하기라도 한듯 빛을 내뿜었다


그 바람은 더이상 불타지 않았다. 오로지 먼지를 별을 향해 태워줄뿐이였다


"잘하네"


현명한자는 갈채를 쏟아냈다. 물론 별의 마법사는 그 갈채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 진정한 죽음을 이루는 일을 한 그의 얼굴은 지쳐보였다


"지쳐보이네"


"심상속에서 천개의 별을 앞에 두고 눈뜨고있어봐요. 저 이제 잘거에요. 뒷처리는 카슨이 해주세요"


"야 잠깐-"


현명한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별의 마법사는 별빛사이로 사라졌다. 뒷처리?. 저 석판을 들여온 방법이라도 알려줬다면 참 좋을텐데


***


소리가 들린다. 백색으로 빛나는 소리는 잔잔하게 귀에 맴돌았다


소리의 근원은 땅이였다. 흙, 검은색 흙속에서 수많은것들이 흘러나왔다


별의 마법사가 밟고있는 이 땅은 참으로 이질적인 곳이였다. 허나 특정할수 없었다. 이곳에서 흘러나오는것들은 뒤섞여있으니까


하나하나 분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게 섞였다. 얼마나 많은 색들을 섞었길레, 이렇게나 검디검은 땅으로 변한것일까


"발 딛지 마라. 깊게 축성된 유기물이다"


별의 마법사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았다. 순백의 두루마기과 갓을 쓰고있는 이였다. 등에는 두자루의 검을 차고있었고, 소매에는 푸른색 꽃이 엮여있었다


별의 마법사는 그가 누군지 알았다. 처음만났을때 그가 내민 날카로운 청화를 기억한다. 그 청화가 심어져있던 더러움많은 흑토를 기억한다.


균형의 대현자. 그는 그렇게 불렸다


"여기서 사라져간 이들이 누군지 하나하나 기억할수있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죽음만이 이루어졌다. 허나 그 죽음들은 결코 헛된것이 아니지. 이 땅아래에는 수많은이들의 유해가 묻혀져있다. 유골조차 가루로 바스러지는 이 땅에서, 살아있는채 생명임을 증명하는건 없지"


"..그렇게 말하셔도 말이죠. 그런 흙에다가 농사짓는 스텔라가 할말은 아닌거같은데요? "


어느세 균형의 수호자는 낫을 들고 땅을 경작하고 있었다. 순백의 두루마기와 손은 흙으로 더럽혀졌다


"하늘아래 세상이 이리도 좁은데, 땅 하나하나 낭비하면 안되겠지. 이 드넓은 흑토위에 적어도 한뼘정도는 사용해봐도 되지 않겠나? "


그러면서 수호자는 씨앗을 땅에 심었다. 곡식의 것은 아니요, 나무의 씨앗이였다.


"이 땅에 대한 위정자들의 소유를 금지시킨 당신이 그말을 해도 말이죠.. "


"난 반신이잖아. "


"반신도 위정자 아니에요? "


"당연히 아니지"


"길가메쉬가 들으면 울겠네"


짧은 대화속에서, 어느세 씨앗은 수색 뿌리를 내리고, 광색 가지를 뻗으며, 푸른색 꽃을 피어냈다. 이윽고 그 꽃중 하나가 과실을 맻으니, 색은 금색이였다


"농담일세. 애초에 내가 왜 이 땅을 소유하겠나. 농경은 백성들의 업이요, 통치는 군자의 업일지니. 반신의 업은 그저 지켜보는것뿐인데. 단지 이런 비옥한 땅위에 하나쯤은 뭐가 자라있으면 좋을까 싶어서 말일세"


"그래서 심은게 공리의 나무인가요?. 맛도없는 과일만 자라잖아요"


수호자는 웃으면서 꽃에 맻은 자손을 뜯었다.


"맛으로 먹는건 아니지. 하나 먹겠나? "


"됐어요. 전 반신되고싶진 않습니다"


이에 수호자는 웃으면서 과일을 한입 베어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그 가치가 사라지는건 아니다


"애초에, 이 땅 아래에 가라앉은것들이 뭔질 생각하면, 뭐가 자라든간에 꺼림칙하잖아요. 입에 담을순 없죠"


"음?. 이상하군. 모든 땅이 그렇지 않나?. 세대와 세대가 바뀌면서 가라앉은것의 양은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다만"


"여긴 인위적이잖아요. 보세요 이 땅의 색을!. 가라앉은것들이 사라지지 않은채 영원히 유지되고있잖아요. 뿌리사이사이에 신경세포처럼 뻗은 유해들은 계속 이땅에 비활성 생명력을 불어넣겠죠. 생명력만 충만할뿐, 어떤 생명도 자라지 않는 땅에서 자란것이 꺼림칙하지 않을수 없잖-"


그순간, 별의 마법사의 입속에 과일을 밀어넣은건 수호자였다. 그 꺼림칙함이 입속에 들어오자, 별의 마법사는 그 손을 뿌리치고는 입속에 들어온 과일을 뱉어냈다


"겉모습이 깨끗하다고 해서 안도 똑같이 깨끗하다는 보장은 없다네. 이곳도 마찬가지지. 이 땅은 멈춰있지만, 그렇기때문에 천년만년 그 모습은 변치 않을걸세. 그리고 언젠가 진정으로 이 공리의 나무의 것을 수확할 각오를 지닌 자가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이땅에 자유롭게 경작을 할걸세. "


"..그렇다고 그 꺼림칙한것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래. 손은 더럽혀지겠지. 허나 상관없다네. 더럽혀지든 말든, 그들은 계속 삶을 살아갈테니. 인간이 되든, 악마가 되든, 반신이 되든, 무엇이 되든간에 말이야"


수호자는 과일을 떨어뜨렸다. 흑토에 닿은 과일은 바스라졌다. 바스라지는순간 그 빛깔은 여전히 색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결국 검은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금색이 사라진건 아니였다. 흑색은 모든 색을 품을수 있으니. 그저 땅에서 난것이 땅으로 돌아갈뿐. 그저 영원히 돌아갈뿐이였다


하지만 언젠가 사람들이 진정으로 이 꺼림칙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면, 영원히 돌아간 이땅의 유해들은 다시 뿌리가 되어 온땅에 뻗으리라


진리는 뻗지 않을지라도, 공리로 숲을 이룰순 있을것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금?. 더 심을게 많이 남았는데"


"전 됐어요. 농경에는 문외한입니다"


"잠깐만"


수호자는 또다른 금색 과일을 따고는 별의 마법사에게 건냈다. 그 순간의 수호자의 얼굴은 씁쓸해보였다


"이걸, 그녀에게 건내주게. "


"장난하세요? "


별의 마법사는 쏟아질뻔한 분노를 삼켰다. 대신 그는 그 분노의 일부분을 떼어다가 질문에 담았다


"건내주든 말든 자네 마음일세. 하지만 알잖는가. 세상은 그녀를 인간으로 냅두지 않을거야. 차라리 그녀가 악마가 되기전에 이걸 먹이게. 반신이 된 그녀는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들수 있겠지"


별의 마법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과일을 든채 별들 사이로 사라질뿐이였다.


수호자는 씨앗을 꺼내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금일이 지나면,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볼수 있겠군"


***


"그래서... 이게 그거라고요? "


금광색 로브를 걸친 소녀가, 그릇위에 놓여진 과일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미물들은 그 힘에 감화되는 그녀의 이명은 명의 대현자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별의 마법사가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거절하려고 했는데, 혹시몰라서.. 진짜 혹시몰라서 가져왔어요. 어때요 판타지? "


"어떠냐고 말해도 말이죠... "


명의 대현자는 과일을 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배어먹었다


"판타지!. 그거- "


"그냥 사과일뿐인데요?. 진짜 이게 공의의 나무에서 자란거라고요? "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분명히 나무에서 자란걸 봤는데, 별의 마법사는 내심 과일의 힘이 통하지 않는건지 생각했다


"근데 전승대로 맛은 없네요. 그래도 진짜는 아닐거에요.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는걸요"


별의 마법사는 생각했다. 분명히 방금까진 힘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저 과일일뿐이였다. 그녀의 힘과 열매에 담겨있던 힘이 서로 부딪힌걸까?. 그건 호기심담긴 생각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본질이 바뀌지 않은것에 안심하였다. 만약에 그녀가 열매를 먹고 인간이 아니게 된다면, 스스로 매우 후회하게 될것이라고 별의 마법사는 생각하였다


"주세요. 제가 처분할게요"


"괜찮아요. 한번 입을 댔는데, 버리기에는 아깝잖아요"


"걱정마세요 판타지. 버리는게 아니에요"


그러면서 별의 마법사는 공간과 공간사이의 막을 열고는 그 막 너머로 열매를 던졌다


그 열매때문에 스텔라의 머리에 혹이 생긴건 한참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