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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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인비디아


정령군주가 황금빛 눈을 빛내며 사뿐히 대지 위에 착지하더니 레드암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레드암스 역시 고개를 숙여 그에게 예를 표했다. 정령군주는 낮고 굵으면서도 신비로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대들의 부름을 받고 내가 왔노라.”


“루푸스시여, 우리의 부름에 응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용이 부활했고, 그 놈이 수많은 괴물들과 함께 우리들의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정령군주, 루푸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인비디아’를 바라보더니 다시 레드암스를 바라본 다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울부짖었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온 황무지에 울려퍼지자 이윽고 어디선가 수없이 많은 야수의 정령들이 나타나 괴물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오크들 역시 그 모습에 감화된 듯 다시 생생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루푸스는 고고하게 전장 사이를 지나 ‘인비디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결국 돌아왔군, ‘인비디아’.”


“정령군주들은 600년 전에 봉인됐다고 들었는데… 그 고고한 정령군주께서 고작 필멸자들의 개가 되어 겨우겨우 이 세상에 남아 있다니… 우습기 그지없구나.”


“닥쳐라! 나는 약한자들의 편을 들었을 뿐이다!”


“약한자들의 편이라니? 약한건 네놈이 아니더냐!”


“이 이상은 못 들어주겠군, 죽어라!”


루푸스와 ‘인비디아’는 그렇게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인은 지나가던 괴물 한 마리를 베어버린 다음 잔에게 다가갔다.


“잔, 부탁이 있어. 날 좀 따라와.”


잔은 바닥에서 얼음 창을 찔러 괴물들을 죽인 다음 답했다.


“알았어.”


“마누엘 씨, 절 좀 따라와 주세요.”


“그러지!”


셋은 ‘인비디아’와 루푸스의 혈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인비디아’와 날개는 없어도 공중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루푸스의 싸움은 서로서로 부딪힐 때마다 충격파가 지상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아인이 말했다.


“루푸스를 돕자, 놈이 가까워지면 공격하는 거야.”


‘인비디아’가 지상 가까이 내려올 때까지, 셋은 달려드는 괴물들을 힘겹게 쓰러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인비디아가 루푸스의 공격을 피해 지상 가까이 내려왔다.


“지금이야!”


마누엘의 총탄이, 잔의 각종 마법이 ‘인비디아’를 공격했다. 몇몇 공격들이 ‘인비디아’의 하늘색 가죽에 피해를 입히자 ‘인비디아’의 집중이 흐트러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루푸스가 달려들어 ‘인비디아’에게 상처를 입혔다.


“끄으으으윽! 이… 이 새끼들이!!”


루푸스가 말했다.


“인비디아, 네놈은 패배했다. 보아라! 네놈이 데려온 군대는 이제 더 이상 없구나!”


‘인비디아’가 루푸스와 싸우는 동안, 루푸스가 만들어낸 야수의 정령들이 오크 군대와 함께 괴물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상태였다. 오크들은 승리에 기뻐하며 환호하더니 이내 인비디아를 둘러싸고 무기를 겨누었다.


“여기서 죽어라, 인비디아!”


그때, 아인은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다. 이것은 이전에 ‘아바라치아’나 ‘이라’를 상대할 때 느꼈던 것과 똑 같은 불길함이었다.


“위험해! 모두 피해요!!”


그러나 아인 일행과 달리 대부분의 오크들은 아인의 외침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인비디아’의 몸이 하늘빛으로 빛나더니 이내 온 몸에서 냉기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냉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오크들은 순식간에 얼음 조각상이 되어 버렸고,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리던 이들 역시 모두 얼어붙어 버렸다. 레드암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후퇴하라!”)


오크들이 다급히 후퇴하자 ‘인비디아’가 소리쳤다.


“이제 끝이다! 지옥에서 온 냉기의 힘을 보아라!!”


“그렇게 둘 것 같나!!”


루푸스가 온 힘을 다해 ‘인비디아’에게 달려들었으나, 그것마저 ‘인비디아’의 입에서 용오름처럼 뿜어져 나온 얼음 기둥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 루푸스마저 땅을 구르다 ‘인비디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옥의 얼어붙은 망령들이여, 여기 지옥의 한기가 있도다. 쓰러진 자들의 육신을 취하고 다시 일어나라!!”


‘인비디아’에게서 냉기가 퍼져나가더니, 곧이어 얼어붙은 괴물과 오크들의 시체가 스스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모든 시체들이 다시 일어나게 되자 그 즉시 살아있는 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오크들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으나, 괴물들은 둘째치고 방금 전까지 함께 싸웠던 동료들을 죽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형제들이여! 진정 동료를 위한다면 여기서 편하게 보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명예로운 최후를 선사해주어라!!”)


레드암스가 힘껏 소리치고 나서야 하나 둘 얼음괴물이 된 동료들을 다시 대지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상의 모두가 ‘인비디아’에게 신경 쓸 수 없게 되자 ‘인비디아’는 부상을 입은 루푸스에게 다가갔다.


“역시 네놈은 약해. 필멸자들의 편에 서 있던 결과가 그거냐?”


루푸스는 ‘인비디아’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선택지를 주지, 네놈도 그분께 무릎을 꿇어라. 그리하면 저 하찮은 필멸자들보다 더욱 강대한 힘이 주어질 것이다.”


“거절한다! 그런 식으로 힘을 얻을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


“그렇다면 죽음을 선사하마.”


“어리석긴, 정령은 절대 죽지 않는다!”


‘인비디아’의 입에서 저 멀리 떨어진 아인이 한기를 느낄 만큼 차가운 냉기가 마치 그물처럼 루푸스에게 날아들었다. 난전 중 그것을 보고만 아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잔, 마리! 루푸스가!!”


두 사람도 따라 루푸스 쪽을 바라보곤 경악했다. 모든 것을 얼릴 듯 차디찬 냉기가 루푸스를 감싸자 루푸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그가 울부짖으면 짖을수록 ‘인비디아’는 광기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더 발버둥 쳐봐라! 죽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주마!!”


셋은 다급히 루푸스 쪽으로 움직였으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강해지는 한기에 결국 50여 미터를 남기고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아인이 소리쳤다.


“뭐라도 해야 해!”


잔이 소리쳤다.


“지난번과 똑같아! 얼음 마법도, 화염 마법도 통하지 않아!”


“그럼 더 세게 날리면 되잖아!”


마리가 뒤이어 치유의 빛을 루푸스에게 날렸으나, 그조차 날아가던 도중에 얼어버렸다.


“빛의 힘이 얼어버릴 줄이야…!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추위가 있어!”


그리고, 잔이 모든 힘을 다해 강력한 화염을 발사했다. 하지만, 그 회심의 화염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점점 작아지더니 종국에는 루푸스를 감싼 그물의 아주 일부를 녹일 뿐이었다. 그 순간, 루푸스가 소리쳤다.


“봉인의 극히 일부가 풀렸다. 강한자여! 그 잠재력에 눈을 뜨거라! 나의 힘… 나의 육신… 모든 것을 그대에게 남기노라!!”


그와 동시에 루푸스의 육신이 점점 형체를 잃어가더니 이내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푸른빛 구체가 되어 그물 안에서 빠져나와 점점 잔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그것이 이번에는 ‘인비디아’ 쪽으로 움직였다.


“그 놈의 힘… 네깟 필멸자 따위에게 넘길 것 같으냐!!”


“잔, 마법을 써! 저건 네 마력에 반응하고 있어!”


잔이 강한 마법을 쓰자 그것은 다시 잔에게 다가왔다. ‘인비디아’가 마법으로 다시 그것을 가져오려는 순간, 마리를 비롯한 오크 군대의 공격이 그를 덮쳤다.


(“절대 놈에게 루푸스 님의 힘을 넘기지 마라! 공격!”)


“잔! 빨리 그걸 잡아!!”


“안 돼! 그것은 내 거다!”


끝내 잔은 루푸스의 힘이 담긴 구체를 붙잡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빛이 잔을 감쌌다. 가까이 있던 아인 조차도 잔의 머리카락이 모조리 하늘로 솟구치는 것 이외에는 그녀를 볼 수조차 없었다. 빛이 가라앉았을 때, 모두가 그녀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푸른 빛의 신비로운 기운이 그녀를 감싸며 피어 오르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가 푸른 빛으로 변하고, 이내 그녀가 들고 있던 지팡이의 보석이 보랏빛이 되자 그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지팡이를 들고 ‘인비디아’를 겨눴다. 그리고, 보석 끝에서 원형의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곧이어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염이 전혀 약해지지 않고 ‘인비디아’를 덮쳤다. ‘인비디아’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 이 무슨?! 나의 냉기를 뚫고 들어오다니!”


잔이 아주 냉정하게, 하지만 모순적으로 감정을 모두 드러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나의 힘 만은 아니야. 루푸스의 힘이자, 아인과 마리의 신뢰, 오크들의 믿음… 네놈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겠지.”


“닥쳐라!! 한낱 필멸자 따위의 마법쯤! 겨우 그 정도로 강해졌다고 해서 이 ‘인비디아’를 막을 수는 없다!”


머리 끝까지 격노한 ‘인비디아’는 앞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잔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잔은 전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내가 널 상대한다고 한 적은 없어.”


그 순간, 불길을 뚫고 아인이 나타나 ‘인비디아’의 머리 위에 올라타서는 그대로 정수리를 찌른 다음 턱까지 길게 베어버렸다. 처음부터 잔은 ‘인비디아’의 시선을 가리기 위한 연막이었을 뿐, 진짜 ‘인비디아’를 쓰러뜨릴 자는 역시나 아인이었다. 인비디아는 상처에서 검은 피와 함께 뇌수를 흘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이럴 수가…!”


‘인비디아’의 육신이 대지를 뒤흔들며 추락했을 땐,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잔은 죽은 ‘인비디아’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쓰러진 그녀의 몸에서 푸른 늑대의 영혼이 빠져나오더니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돈 다음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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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군주 안죽었습니다. 그냥 정령계로 돌아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