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이반과 류다가 와서 형우와 같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이름만 보아도 알겠지만, 이 둘은 외국인노동자들이다. 중앙아시아 쪽 무슨무슨스탄 나라에서 온. 전에 들은 이야기론, 이 쪽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의 피가 섞인 사람들, 그러니까 고려인 2,3세가 한국비자가 잘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조선족 다음으로 쉽게 보이는 거고. 이반과 류다는 12층부터 9층까지, 윗층으로 A팀,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 부부인 사샤와 까쨔가 8층부터 5층까지 B팀, 그리고 나와 형우가 나머지 아랫층 및 모지란 곳 땜빵 겸 해서 C팀이다. 그러다 보니 계단에서는 가끔 휴식시간이 겹치면 이렇게 만날 때가 있다. 
 그런데, 얘네들이 지금 이렇게 쉴 때가 아닐텐데? 분명히 아까 손님이 컴플레인 넣었던 사항이 있으면 그 방이나 다른 방 청소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왜 지금 여기 있는거?

 

 "바빠."

 

 내가 속으로만 생각한 질문을 안다는 듯이, 이반이 담배연기를 창 밖으로 길게 내뿜고서는 너스레를 떤다. 형우는 그 말에 미소로만 대답을 하였다. 입으로만 활짝 웃으면서, 눈은 전혀 웃지 않은 채로, 벌려 웃는 입술 안으로는 이빨이 꽉 다물어져 있다. 그리고 그 다문 이빨 사이로 담배를 끼워넣고서는 이반에게 물었다.

 

 "이반, 아까 프론트에서 1201호 청소하라고 하지 않았어?"

 

 "8층, 방금 끝났다. 청소, 힘들다. 쉬어야 돼."

 

 이반은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하였다. 그리고 형우가 간신히 입꼬리에 걸어 놓았던 미소는, 슬며시 미끄러져 턱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나만 살짝 들릴 정도로, 미세한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려 온다. 까드득.
 형우는 반쯤 태운 담배를 재털이에 지져 끄고서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형우와 이반에게 달려 있는 무전기에서 호출이 들어왔다.

 

 'A팀, A팀, 지금 바로 12층, 12층이요, 12층.'

 

 "한국 사람들, 너무 바쁘다. 쉬어야 된다."

 

 이반은 프론트에서 독촉하는 무전이 날아오자, 표정을 잔뜩 찌뿌리면서 우리에게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즉시 외면해 버렸고, 형우는 아까 지었던 그 표정 그대로 이반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반은 머쓱해 졌는지, 창고 안에서 앉아 쉬고 있던 류다를 데리고서는 윗층 카트로 향했다.
 이반이 가고 나자, 형우는 욕지거리를 섞어 가며 불만을 토해 냈다.

 

 "아니, 저 새끼들은 도대체 일을 하겠다는 거야 안 하겠다는 거야? 지금 지네 청소 안 한 객실이 몇 갠데 여기서 쉴 생각만 해? 민재야, 봐봐. 지금 저렇게 되면 나중에 우리가 가서 해야 된다고. 이제 봐라. 분명히 우리가 이제 10 층이나 11층 가야 된다."

 

 "너가 방금 문자 보낸거지? 재혁이한테."

 

 형우는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서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이거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만 세 대째네. 그런데, 이 마음은 이해가 간다. 이 곳에서 일하다 보면, 지배인하고 형우가 숨쉬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저 두 사람은 사람만 쉽게 구해졌더라면 이미 예전에 잘려 나갔을 거라고. 

 물론 한국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 좀 빡빡하고, 거기에 이 모텔일이라는 게 사람을 좀 갉아먹는 부분이 있다. 평일에야 그렇다 치는데, 주말에는 적어도 한 방이 대실이 두 번은 돌아간다. 그러면 우리같은 50방 모텔이면 숙박할 방까지 치우게 되면 150방을 청소를 해야 되는데, 이걸 이반과 류다, 그리고 또 다른 외국인 직원인 사샤와 까쨔, 그리고 나와 프론트 직원 한 명, 2명씩 3개조와 주말에만 오는 침대 정리 전문 알바, 소위 말하는 베팅아저씨까지 일곱 명이서 모든 걸 끝내야 된다는 말이다. 쉬는 시간도 없이 방만 치우다 보면, 그냥 하루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훅 지나가 버린다. 가끔씩 청소시간이 오버되는 것은 기본. 어느 대한민국 기업이나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이 모자란다고 백날 뽑아달라고 해도 윗사람들은 듣지를 않는다. 결국 일거리는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이 짊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런 저소득 고농도 업무를 기피하다 보니, 모텔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중앙아시아 인들이나 조선족들이 많다고 한다. 

 

 여기서 이제 고용인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조선족이나 중국 사람들을 뽑자니, 이쪽 사람들은 일은 확실하게 하는데 말이 많단다. 우리나라말을 잘 하니 임금 협상이나 노동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와서, 툭하면 안 하겠다고 하면서 파업 아닌 파업을 벌일 때가 왕왕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의 한국 사람 수준으로 월급을 요구하는 통에, 거의 왠만한 모텔들은 중국인들을 거의 고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중앙아시아쪽인데, 이 쪽 사람들은 월급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군 말없이 일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일단 이 쪽도 대부분이 고려인이기는 한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잔재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단다. 물론 가끔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찾기가 굉장히 힘들단다. 거의 8:2 수준으로. 그래서 조금만 열심히 하는 기색이 있으면 왠만하면 다른 곳에서 여기저기 스카웃해간다고 한다. 그 월급에 그런 사람이 드무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싼맛에 계속 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봐도 지금 이 호텔에서 일하는 이반과 류다는 상태가 좀 많이 심각하긴 하다. 엄청나게 급박히 방을 치워야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해 둬야 하는 사항이 세 가지가 있다. 침대보 정리, 쓰레기 청소, 욕실에 물기 제거. 그런데, 바쁘지도 않은 평일에 일을 할 때도 이 두 사람이 청소한 방에 들어가면 그렇게 쓰레기가 제 자리인 마냥 남아있다. 그리고, 당연히 침대보를 펼치거나 커튼을 정리하면 먼지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걸 정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건 형우나, 지배인한테 들은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이기 때문에 잘 안다. 원래 주말에 형우나 진환이, 둘 중 하나와 같이 올라가서 3번째 조로 투입된다.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에는 아래층을 맡고 있긴 하지만 도우미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무선을 듣고 즉각즉각 움직여서 그 층을 해결해 버린다. 그런데, 이반과 류다가 맡고 있는 12층에서 9층까지의 구역을 몇 번을 올라가는지 모른다. 좀 맡아놓고 쉬려 하면 불려 올라가고, 또 불려 올라가고. 

 

 사실 그냥 일만 못하는 거면 상관이 없다. 최대 문제는 이 인간들이 둘이 짠 듯이, 사람의 말을 알아 들을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히 한국에서 일한 것만 5년이 넘었으면, 한국말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 지 눈치는 분명히 생긴다. 그런데 앞에 불러다 놓고 이야기를 하면, 좋은 말도 끄덕끄덕, 나쁜 말도 끄덕끄덕 하면서 은근슬쩍 자신들이 못 알아 듣는다는 걸 계속 어필하더란다. 


 그리고 바쁠 때는 자기들이 담당한 층 외에도 청소를 해 줘야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것들은 아예 무전을 못 받는 척 하고서는 지네들 층만 가려고만 하더란다. 처음에야 진짜 못 알아듣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눈치 백단인 형우가 몇 번 보더니, 저것들 못 알아 듣는 척 하는 거라고 하면서 다음에 부를 때는 자기도 끼워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배인하고 같이 청소 문제로 올라가서 이야기를 하는데, 욕은 섞지 않은 대신에 눈 앞에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단어들을 선별하여 인격적인 모독을 해 대니, 대번에 인상이 험악해 지더란다. 한 마디로 다 알아듣는데 모른 척 한 거다. 


 그 때 부터였다. 지배인이 저 둘을 잘라버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하지만 지금까지 계획만 줄창 세워두고 있었을 뿐, 실행을 한 적은 없다. 아니, 실행을 할 수가 없었다. 자기들끼리 소문이 도는지,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가끔 면접을 보러 와도 그렇게 상태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 막말로 폐급 인재들만 줄을 섰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서 모텔에 생긴 일들에 대한 감상은 지금 형우가 내뱉고 있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물론 대한민국에서 지금 하는 일이 좋아서 붙들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 근데 사람이 봐 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래도 만수 형님이 일 시키는 사람인데, 일도 못하면서 윗사람을 저렇게 간보듯이 눈치 살살 긁으면 되겠어? 그냥, 저런 것들은 내 손에서 조져야 돼. 형님 나설 필요도 없이."

 

 "그거야 그런데, 지금 류다하고 이반 없으면 누가 일하냐. 대놓고 갈구고 있는 건 아는데, 적당히 해, 적당히."

 

 "지네가 적당해야 우리도 적당히 하든가 말든가 하지, 원."

 

 형우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 핀 담배꽁초 끝단을 손가락으로 툭툭 털어내어 불똥을 없애고서는, 지금까지 핀 담배꽁초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절묘한 그 타이밍에, 재혁이에게서 무전이 들어왔다.

 

 <C팀, C팀, 형우 형, 민재 형, 죄송한데 11층 한번만 부탁드릴게요>

 

 형우는 재혁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리춤에 있는 무전기를 뽑아들고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 이 새끼야, 간다고!"

 

 <아,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이 새끼야!"

 

 화내는 거 맞구만 뭘. 무선으로 듣기에는 영락 없이 그럴 것이다. 물론 아까 이반이 올 때 굳어있던 표정은 이미 다 풀려 있다. 옆에서 볼 때야 장난으로 그런 티가 풀풀 나기야 하는데, 재혁이는 어떻게 들었을 지 모르겠다. 형우는 '거 봐,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으로 카트를 향해 느지막히 걸어갈 뿐이었다.

 

 


<C팀, C팀 지금 식사하세요>

 

  폭풍같은 대실 정리 시간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이 돌아왔다. 휴식시간이래봤자 밥 먹는 시간이지만. 몸 쓰는 일 하는데 밥도 못 먹고 일하면 사람이 축난다는 것이 지배인의 지론이다. 그래서, 여기 쉬라톤 모텔에서는 아무리 손님이 들어차고 바쁜 와중에도 저녁 시간은 꼭꼭 챙겨 준다. 물론 모두 같이 갈 수는 없고, 교대로 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님들은 줄을 서고 있으니까.
 무전을 듣자 마자 형우와 나는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계단을 하나 올라 옥상으로 올라가면, 그 곳에 직원들의 숙소와 식당이 있다. 여기 계시는 식사전담 찬모님이 반찬과 밥을 미리 해 둔 것을, 직원들이 모두 와서 먹는 것이다. 다행히도, 식사는 맛있는 편이다. 아직까지 외국인 직원들도 쌀밥에 김치반찬인데도 별 불만이 없는 것을 보면.

 

 "이모 잘 먹었습니다."

 

 까무잡잡하고 키 작은 아저씨가 식당 안에 찬모 이모님께 인사를 하면서 문을 나서고 있다. 아마 방금 식사가 모두 끝난 모양이다. 나보다 앞장서서 가던 지라 그를 먼저 발견한 형우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오늘 반찬 뭐야?"

 

 "아, 오늘 고추장 불고기. 맛있다."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이 사람이, 중간 층 팀에서 일하고 있는 사샤이다. 이 쪽도 고려인 출신인데, 이반네하고는 나라가 다르단다. 전에 어디하고 어디라고 그랬는데 정확하게 알아듣지를 못해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근데 나라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한 것은, 이반하고는 너무나도 차이나는 사람됨 때문이다. 방금 들어서 알겠지만, 형우가 형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를 정도로 일도 열심히 하고, 한국말도 더 잘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좋다. 이반도 형우보다 나이가 많은데, 형우가 절대 형 취급을 안 해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비교가 된다. 나야 그냥 둘 다 형이라고 부르지만.
 사샤는 웃으면서 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미샤, 잘 있었어?"

 

 "네, 형. 까쨔는요?"

 

 "먼저 내려갔어. 담배 사러 갔다."

 

 미샤는 사샤하고 까쨔가 날 부르는 애칭이다. 처음에는 날 무슨 화장품 취급하나 했는데, 러시아말로 미하일이라는 이름의 줄임말이란다. 이름 앞 글자가 비슷해서 그렇게 부르고 싶다나, 뭐라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서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샤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려는 듯, 옥상 위 뚫린 공간에 걸터 앉아서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서는 담배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