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무도회장. 천장에는 셀 수 없는 아름다운 샹들리에와 리본들이 자신의 자태를 반짝반짝 뽐내고 있으며, 기다란 리본들은 끝없이 늘어져 있어 이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에는 금색 실과 은색 섬유가 함유되어 있어 부드럽게 밟혀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을 만큼의 느낌을 줄 것만 같다. 이윽고 이 회장의 불이 켜지자, 하나 둘 씩 차례로 들어오는 화려한 풍채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각자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하얀색이 바탕인 지극히 평범한 가면부터 오색 깃털로 화려하게 치장한 귀족들이 쓸 만한 가면들까지. 다만 중요하게 볼 것은, 이 무도회장에 온 사람들의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입가를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무도회장에 어느 정도 들어오기 시작하자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는 곡이 이 장소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 둘 씩 문가에서 중앙으로 나아오더니 각자 곡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회장 곳곳에 있는 크고 기다란 테이블들을 나는 눈가로 빠르게 훑어보았다. 여러 가지 고기와 사치스러운 식재료들로 이루어진 만찬의 식탁, 그리고 이런 음식에 빠져선 안 될 붉게 번쩍이는 매혹적인 포도주 또한 구비되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음식이 있는 쪽으로 가서 각자 한 덩이씩의 고기를 취하여 술과 함께 먹는 것을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말들은 점점 많아지며, 시끌벅적한 토론회를 연상하게 하는 파티는 종을 울린다.

 

-1-

 

쨍. 잔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며 서로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상황도 보인다. 서로 손을 맞잡으며 남성과 여성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무언가 쪽지 같은 것 또한 교환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연회의 목적은 다름이 아닌 정보와 지식의 취득. 이곳에 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얻어가기를 원한다. 자신에게 필요도 없는 쓸데없는 지식들을 얼떨결에 얻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자신이 진심으로 올바른 정보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관련 서적을 직접 찾아보거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함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왜 이런 연회에 참석하면서까지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며 쓸데없는 것들을 굳이 얻어 가는지를 나는 처음엔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이 연회에 몇 번 정도를 반복해서 참석하고 나자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몹시 간단했다.

 

‘재미있으니까’

 

그렇다. 이유는 정말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재미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이 가라앉은 먼지와 책 냄새가 나는 서고에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지루하고 무미건조하게 ‘종이 같은 것’들을 넘기며 보내려 하겠는가. 그런 시시한 것들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교적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사치스러운 곳에서 재미있는 담소와 술을 나누며 즐겁게 춤을 추자. 즐거움과 향락 속에서 얻어가는 것들이 이 회장 밖에서 얻을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인 것이겠지.

 

처음 이 연회에 참석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도 ‘그들’과 동류처럼 행동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면으로만 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 취하리만큼 취한 것을 알면서도 술에 중독된 사람마냥 계속 마시고 빙글빙글 돌아댔다. 비교적 초라한 가면을 쓴 작자들하곤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려하고, 황금으로 만들어진 깃을 꽂은 이들만을 쫓아다니며 친해지려고 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들과 같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매 번 연회에 참석할 때마다 더 가면을 심미적으로 아름답고 예쁘게 치장하려 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소위 ‘명문’, ‘유명’ 이라고 부르는 연회의 상류층들은 점점 이 곳에 어울리며 풍치 있게 바뀌어가는 나를 보며 달콤한 칭찬과 감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수준이 되자, 그들은 나를 자신들만의 모임에 끼워주겠다며 이끌었다. 점점 그들은 내 마음 속에 있던 가면을 쓴 자, 즉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한 의심’ 을 떨쳐버리게 만들었고,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의 생각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게끔 내 사상을 바꾸어 나갔다. 머지않아 나는 ‘그들’과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들’ 보다 화려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말을 어눌하게 하거나 부족한 티를 내는 자들을 볼 때마다 이유모를 혐오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말 어리석은 자의 미련한 생각이었었지만, 나는 우리들 외에 다른 사람들을 하층민으로 여겼었다. 점점 다른 사람을 훈계하려 들며 비방하기 쉽게 입은 변해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비난이나 비방이 오지 않도록, 올 수가 없도록 내 자신을 거짓말과 허세로 가면과 더불어 더 화려하게 꾸며댔다. 우리들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불상사가 없게끔 나는 상류층들에게 감언과 아부를 쓰는 데에 익숙해졌다. 그들이 좋아하도록 유머러스한 농담과 쓸데없는 설화에 거짓을 더해 섞어가며 말을 던졌다. 그들은 꺄르르 웃었고, 나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아, 이것이 바로 이곳의 재미였구나. 바깥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신분이 상승된 기분. 자존감이 높아진 기분을 이 무도회장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기를 몇 달, 몇 년을 반복했었던 어느 하루. 그날따라 미친 듯이 술을 들이켰던 나는 멈출 수 없는 취기와 구토감에 이 연회장에서 평소보다 몇 시간 정도 빠르게 나왔었다.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은 차가운 저녁 밤. 정문에 이어진 계단을 타고 내려와,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나무가 심어진 풀숲에서 뱃속에 들어있던 술들을 모두 구역질과 함께 바깥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속을 뒤집고 나니 어느 정도 몸은 편해졌지만, 가면의 안속으로까지 시큼한 냄새가 퍼져 들어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가면을 무도회 바깥에서야 벗어낼 수 있었다. 여기라면 아무도 내 정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정문을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조명이 가미된 정문은 마치 고급 카지노장의 입구를 연상케 했다. 나는 한 숨을 쉬었다.

 

“...오늘 재수 없네. 내일 다시 돌아오든가 해야지.”

 

입가를 닦고 나서 일어섰다. 내일은 조금 더 주량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때였다. 정문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근처에 있었던 나무에 몸을 숨긴 후 조금씩 눈을 올려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나와 같은 상류층.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로 지냈다고 생각했었던,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나보다도 훌륭한 가면을 쓴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저 사람과 더욱 깊은 관계를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조금 더 알고 싶다. 그의 가면 속에 가려져 있었던 얼굴도 한 번 쯤은 보고 싶었다고 생각했을텐데—

 

그 여성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면을 벗어냈다.

 

-2-

 

내가 생각하고 상상해온 모든 것이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동공은 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양 좌우로 빙글빙글 흔들리는데, 한 걸음 한 걸음을 밟아 앞으로 향할 때마다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속이 메스껍다. 금방이라도 이 망할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 억지로 토를 하려 했지만 이미 산물이 빠질 대로 다 빠져나온 위에선 허락해주지 않았다. 더 이상 걸어갈 힘마저 다 빠져버린 나는, 급히 대중교통을 통해 집으로 돌아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텅 빈 거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의 공기는 환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매우 차가웠다. 냉장고를 열어 무언가 마실 것이 있나 찾아본다. 여기도 저기도 술로 가득 찬 냉장고 안에서 마시다 남은 물이 담겨있는 페트병을 꺼내 꿀꺽꿀꺽 들이킨다. 냉기가 목을 타고 뱃속으로 전해지고 나자, 의식은 조금씩 돌아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강박적으로 씻어낸다. 여태껏 대충 물로만 씻었던 자신의 얼굴을 평소보다 더 세게 힘을 주어 박박 문지른다. 비누와 얼굴세정제를 사용해 다섯 번 정도를 헹구고 나서야 나 자신 스스로가 거울을 바라 볼 용기가 생겼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것은 20대의 얼굴이라고 생각될 수 없는, 더부룩한 수염을 깎지도 않아 한껏 더 볼품없어 보이는 추남의 안면이었다. 지금까지 내 얼굴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가면에만 신경을 쓰다 관리를 하지 못한 자신의 얼굴은 지금 나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드디어 진실을 마주 볼 용기는 생겼나 봐? 내가 하나 물어보지. 지금 이 상태로 정말 현실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성이 내게 속삭인다.

 

‘가면을 쓰게 되었을 때 아마 넌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생활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나 가면으로 사람을 비교하고 비방하며 흉보고 판단하던 너는, 가면을 벗었을 때는 뭐지?’

 

양심은 나를 책망했다. 더 이상 화려하게 자신을 감추고 누구보다도 친한 사람이 많았다고 생각되었던 나는 없었다. 그래, 나는 봐 버린 거야. 저 가면 무도회의 본 모습을.

내가 어여쁜 여성이라고 생각했었던 자가 가면을 벗은 모습은 실로 나에게 충격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아양을 떨며 모두를 속였던 자는 족히 30대 중반은 돼 보이는 남자 아니 아저씨였다. 얼굴에선 개기름이 줄줄 흘러나오다 못해 혐오감을 주는 얼굴. 전혀 관리를 하려 하지도, 일상을 포기한 듯 그의 얼굴엔 지방이 철면피마냥 살로써 덮여있었다. 그러고선 담배를 피며 무언가를 중얼중얼 말하는 것을 안간 힘을 써서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오물에 막 뒹군 돼지새끼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도 얼마동안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자신의 정체를 숨겨놓고 그들에게 보여주었던 허세로 점철된 거짓된 삶. 사람들의 목에서 나오는 정보를 통해 유익을 얻고자 했었던 나는 지금 유익은커녕 다른 이들에게 거짓과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있는 손은 다시 꿈틀거리며 환상 속에서 화려했던 나날들, 연회에서 즐겼던 만찬과 마셨던 그 번쩍거리는 포도주를 향한 탐욕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자괴감과 죄악감에 젖어 머리채를 두 손으로 부여잡기를 몇 시간. 고통스럽게 신음과 탄식을 내가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문득 거실을 다시 바라보았는데, 긴 시간동안 닦아내지 못한 탁자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엎어져 있던 몸을 힘겹게 일으킨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 쪽으로 자신의 의식과 눈동자 또한 옮겨본다. 그리고 그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수많은 책과 필기구. 이는 몇 년 전 한 목표를 향해서만 달려갔던 지금보다 조금은 더 순진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갈망하던 자의 작업실이었다. 지금은 비록 하얗게 바랬지만 다시 닦아내면 분명히 사용할 수 있겠지. 내가 그렇게 바라던 그 많은 지식과 지혜들은 저런 연회에서 얻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 먼지로 덮여진 책을 한 손으로 살짝 잡아 훑어낸다.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한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변화를 향한 아주 조그마한 갈망의 새싹이 돋아난 것 같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3-

 

이 연회의 부정적인 끈을 끊어낼 마지막 날이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술에 젖어 정신을 잃지 않으리라 각오를 하고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항상 많은 사람의 부담감에 젖어 무거웠던 어깨는 이미 가벼워진지 오래다. 수염은 보기 좋게 깔끔하게 다듬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만족스러울 만큼 머리와 얼굴을 정돈했다. 부모님께 성인식 날 선물 받은 검은 양복을 빼 입고 여타 다른 때와 다르게 얼굴을 가릴 가면은 흰색의 평범한 모양새였다. 그래. 오늘 만큼은 모두에게 나의 얼굴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거다.

그리고 그들의 원래 모습도 진심으로 존중하며 바라봐 주고 싶다. 더 이상 가면무도회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그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나의 얼굴을 보여준다면 그에 동화된 어느 이가 나를 만나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당당하게, 하지만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시선으로 연회장을 들어갔다. 회장 곳곳에 있는 크고 기다란 테이블들을 나는 눈가로 빠르게 훑어보았다. 만찬이 오늘 따라 색다르게 보였다. 이젠 더 이상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도, 붉게 빛나던 포도주는 이미 자신의 눈에선 제 색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이 흘러간다.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먹고, 마시고, 보고, 놀며 이 연회의 모든 것을 음악의 선율에 맞춰 즐기고 있다. 달라진 것은 나 자신 뿐이었다. 그래, 분명히 ‘그들’ 상류층들은 보통 2층에서 놀았었지. 뽀득거리는 카펫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밟으며 위층으로 자신의 몸을 향했다.

 

2층의 광경은 1층에서보다 더 사치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마치 이곳에 어울릴 ‘자격이 있는 자’ 만이 이곳에서 흥을 즐길 수 있다는 마냥. 여기저기에서 알고 지냈었던 익숙한 가면들이 눈에 띄기를 시작했다. 그들도 점점 나의 존재를 의식해가고 있다는 것을 한결 무거워진 상황과 따가운 시선을 통해 비교적 평소보다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보라색과 파랑색이 곁들어진 공작 모양의 가면을 쓴 자가 첫 번째로 나의 모습을 비웃기 시작했다.

 

“킥킥. 저 추한 모습 좀 보라지. 도대체 이런 곳에 저런 가면을 쓰고 오다니 제정신인거야?”

 

조소를 들은 다른 이들이 나를 보고 그의 말에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동조해가기 시작한다. 한 명의 시선이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고, 곧 2층의 있었던 대부분의 가면쟁이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쏠렸다. 수군수군. 개구리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귀를 파고든다. 이러한 반응은 내가 화려한 가면을 썼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부정적이고, 맹목적인 비난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분위기에 무심코 꿀꺽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라 하더라도, 오늘은 다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저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더 이상 나처럼 미련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오늘의 각오는 그 단단한 금강석보다도 더욱 강하게 마음먹고 왔으니까. 그래. 소신껏 나의 생각과 이 연회에서 느낀 경험들을 저들에게 이야기 하는 거야.

 

나는 첫 말의 입술을 떼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가면을 벗었다.

 

-4-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보다시피, 그 때 내 볼엔 벌써 손자국 모양의 피멍이 새겨져 있었다. 입술에서 터져버린 피의 맛은 평소보다 더 비릿했지만 달콤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구겨져버린 옷으로 밖에 내쫓긴 이 상황도 이젠 나에게 유쾌함을 상기시켜줬었는데, 이는 내가 하고픈 말은 다 하고서 연회장에서 퇴출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회장에서의 그들은 나의 말을 듣고서 격분하기 시작했다. 나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몇 친했던 사람들은 나의 달라진 행동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듯 뒤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가면을 벗자, 거칠어진 숨은 이제 화난 짐승같이 변해 잡아먹을 듯이 침을 튀겨가며 나를 깎아내리기를 개시했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 조소, 분개, 탄식이 휘몰아치며 어우러져 2층을 한결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나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느니, 외모가 저래서야 실패한 인생이라느니, 신랄하고도 맹목적인 비판은 끊이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함으로써 상기된 분위기를 마음껏 타 버린 장정 몇 명이 나에게로 달려와 얼굴에 손을 빠른 속도로 내리쳤다. 철썩 하는 소리 다음으로 날카로운 통증이 내 뺨과 입술에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내 입술에선 피가 터져 턱으로까지 흘러내리게 되었다. 이 연회의 관계자는 더 이상 이 참상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 양복을 입은 집행인들에게 신호를 준다. 그렇게 나는 두 팔이 굴욕스럽게 붙잡힌 채로 이 연회에서 내보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는— 지금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 연회보다는 지루한 작업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펜대를 굴려가며 종이에 썼다 구기는 과정을 반복하며, 때론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상황도 종종 오지만 적어도 저 시간을 경거망동히 허비하는 곳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분명히 저 가면무도회는 끌리는 맛이 있다. 자신의 얼굴과 정체를 가릴 수 있으며 그 곳에선 어떤 사람이 된 들 자신의 정체를 쉽게 알아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과 나누는 수다는 제법 위트있었고 흥미를 느낄만한 주제로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하지만 술을 마셨고 갖가지 산해진미의 음식들로 자신의 배도 채워봤지만, 집에 돌아올 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곳에 갈 이유가 없었음을 알았을 때에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재촉에 의해 오는 시간들이 다분했었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이 반 쯤 미친 것 같은 연회를 끊어내는 데에 비교적 성공했다고 느낀다. 아마 내 말을 들은 어느 사람들 중에서 감동을 받은 부류들과 언젠간 가면을 벗은 모습으로 서로 웃으며 대면할 수 있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적인 상상을 몽실몽실 나는 머리 속으로 피워낸다.

 

 

 

그리고, 그 뻔하디 뻔한 가면무도회는 찬란한 빛을 도시 속에서 뽐내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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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 번째 작품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