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인간의 손길이 닿은적 없었던

태고적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숲.

그 숲속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나무가 점점기울어 지더니 이내 굉음을 울리며 쓰러진다.


연합군은 숲을 베어내며 천막을 세워나간다.

쓰러진 나무들은 건물과 병기를 만들 재료로 쓰여질 것이다.

지평선을 자아낼 만치 천막들이 늘어선 가운데 팔람스 왕국 진영쪽에서 한 남성이 누군가를 찾아 헤매듯 서성이고 있다.

남성은 가벼움을 중시한 경무장과 자루부분에 공작새 문양이 새겨진 단검을 허리춤에 여럿 매달아 놓은것이 전형적인 산악레인저의 복장을 하고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남성의 뒷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슨씨!"


그소리에 반응하듯 남성은 반가움과 아쉬움이 뒤섞인 애매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꼬맹이"


"오랜만에 만나는것 치고는 반응이 별로네요"


"밀리아까지"


제이슨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만큼은 참전하질 않길 바랬건만...

마왕을 실제로 보았던 당사자로써 이번싸움에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올지 예상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리했다.

물론 그것은 두 사람도 잘 알고 있을 것이지만


"의외네요. 당신도 참가했을줄은 몰랐어요"


그리말하면서 의외라는 표정은 전혀 섞여있지 않는 얼굴의 밀리아.


"제이슨씨"  


코앞에 눈을 부름뜬 쟝의 얼굴이 보인다.

반년전만해도 자신의 가슴 언저리였던 녀석의 키가 어느세 턱밑.

녀석 자란건가.


"제이슨씨 정말 참전하실껀가요? 이번싸움은 많은 희생이 따를겁니다."


걱정이 담겨져있는 말

녀석이 자신을 보신만 탐하는 비겁자로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는걸 알고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남걱정이라니

이런녀석들은 왜 항상 자신보다 먼저 여신의 품으로 돌아가는것인가.

아무래도 자신의 할 일이 한가지 더 늘어난것 같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는 끝마쳤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리 짧은 만남이었다한들 동료였던 사람들을 잃었어. 동료의 은원은 반드시 갚는것. 그것이 산악레인저다."


"고집불통"


밀리아의 한숨가득한 목소리에 씨익 웃음을 짓는다.


"나도알아"


"쟝 신관님!"


멀리서 붉은옷의 청년이 쟝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다.

꽤 먼거리를 달려온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체력이 부족한 것인지 헉헉거리며 거친숨을 내뱉는 청년


"쟝 신관님 조사부대 회의에 자문역으로 참관해달라는 연락입니다."


청년이 건내준 문서를 잠시 읽어보던 쟝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제이슨씨 아무래도 먼저 가봐야할것 같습니다. 이따 저녁에 서로 시간이 되면 식사라도 하죠"


"좋지"


제이슨의 승락에 해맑은 얼굴로 답례한 쟝은 청년을 따라 천막들 사이로 사라졌다.


"저 붉은옷은 마법국 지논의 사람인가"


"아무래도 저쪽에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보니 마법사들과 학자들은 후방에서 환경조사역할 이더군요"


"머리좋은 양반들이니 뭔가 알아낼 수 있겠지"


밀리아는 허리에 매달아 놓았던 수통을 꺼내 목을 축인다.

수통너머로 풍기는 향기로 보아 진정효과가 있는 람열매 음료인듯 하다.


"그나저나 쟝이랑 어디까지 갔어?"


푸훅


자줏빛의 물안개를 뿜어내는 밀리아

그녀는 지저분해진 입주변을 무시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무무무,무슨, 무슨말소리죠?"


아니, 무표정이 아니라 당황해서 얼굴근육이 얼어붙은 것인가...

신선한 반응에 조금 더 놀려먹기로 한다.


"그를 좋아하잖아?"


대장간의 달궈진 쇠처럼 붉어진 그녀의 얼굴

더이상 수용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입으로 내뱉는다


"놀리지 말아욧"


"아니아니, 자연스런 남녀관계잖아? 놀리고 말고 할게 어디있겠어"


"하지만...하지만 그는 이제 고위 신관이고 저는 일개 기사..."


"멍청이"


그소리에 밀리아가 뽀루퉁하게 째려본다


"이럴때일수록 후회를 남기지 마"


"..."


그녀는 작게 끄덕인다.



그날 저녁

쟝의 처소로 밀리아가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동이 틀때까지 처소밖에서 두사람의 모습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군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태양은 구름속으로 파묻혀 흐릿한 날씨


각 국의병력들이 차례차례 차원의 문을 통과해 들어간다.


그 행렬속에는 갖 태어난 연인들이


떠나온 가족생각에 손에 쥔 창을 더욱 세게 부여잡는 이들이


공적을 올리기 위해 찬스를 노리는 이들이


자포자기하듯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이들이 있었다.


각기 다른마음이 하나의 목표로 뭉쳐 차원을 넘었다. 



------



소인들이 도망간지 한시간정도 흘렀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다가 평상시와 다를바 없이 소파에 누워 TV를 본다.


"흐아암 역시 오전에는 볼만한게 없어"


몰려오는 졸음에 또다시 한시간의 취침.

그리고 정체모를 작은 소음에 눈이 떠진다.

소음의 정체를 쫓아 거실로 고개를 돌리니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구멍에서 개미때같이 몰려나온 소인들

그 광경에 갑작스레 치솟는 텐션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이야 친구들 잔뜩데려왔네?"


계속해서 몰려나오는 녀석들은 거실바닥을 점점 잠식해갔다.


"야 이제 그만좀 나와"


인사이드킥을 차 날리듯 발 옆부분으로 녀석들을 구멍쪽으로 쓸어넣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호삼아 소인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밭처럼 네모반듯하게 진형을 갖춰 달려드는 녀석들.

브이자형 쐐기형태로 달려드는 녀석들.

하지만 이녀석들은 달려드는 것 외에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아니, 무언가 하고있는듯 하지만 간지러움은 커녕 별 다른 느낌조차 없다.


"어지간히 해"


살포시 발을들어 네모난 진형을 두개를 밟는다.

발사이즈에 딱 맞는 진형크기

덕분에 밟힌녀석들의 잔여물이 발바닥을 더럽힌다.


"아 기분드러"


끈적하게 늘러붙는 붉어진 바닥과 발바닥


"아 그래. 니들 잠깐만 기다려"


남자는 그러더니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후 남자가 발에 착용한것은 실내용 슬리퍼.

실외용처럼 신발 바닥에 홈이 파여져 있는것이 아닌 요철없이 매끈한 바닥의 슬리퍼였다.

작용한 오른발을 다시 들었다 내려찍는다.

운이없는 소인들이 신발과 바닥 사이에 끼어 으깨어져 간다.

발을들어 확인해 보면 더러워져있는 바닥이 소인들의 최후를 알려준다.


"재미는 있는데 금방더러워지네"


이번엔 안방으로들어가 무언가를 꺼내온다.

스위치를 올리자 팬이 돌아가는 소음과 함께 입구에서 힘차게 공기를 빨아들인다.

남자는 청소기로 소인들의 1/3을 빨아올렸다.

금세 빵빵해진 먼지주머니속은 빨려들어갔지만 운좋게 살아남은 소인들위로 다른놈들이 켜켜히 쌓여 아래깔린 녀석들을 압사시켜갔다.

남자는 이번에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왔다.

나머지 1/2정도를 쓸어담자 살기위에 쓰레받기에서 뛰어내리는 녀석, 빗자루의 빗살 하나하나에 달라붙어 발버둥 치는 녀석들로 아비규환이다.


"아 이건 별로네"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타는 쓰레기봉투 안에 넣고 서로 부딪쳐 달라붙어있는 소인들을 탈탈 털어낸다.

쓰레받기는 얼추 다 털어냈으나 빗자루에는 아직 달라붙어있는 소인들이 남아있었다.


"아으 질긴놈들"


빗자루를 들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의 물을 튼다.

그다음 빗자루에 물을 뿌리며 바닥에 문질러댄다.

물에 쓸려나가는 녀석, 바닥에 비벼진 충격으로 어딘가 부러지거나 끊어진 채 쓸려나가는 녀석

다양한 모습으로 물에 쓸려나가던 녀석들은 남자의 체모가 쌓여있는 하수구의 필터에 걸러져 쌓여갔다.


"이러다간 막히겠네"


남자는 막힌찌꺼기를 담아내기위해 작은비닐봉지를 가지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사이 병력의 상당수을 잃어버린 소인들은 남은병력을 긁어모아 재정비한다.

그리고 극소수의 소인부대들이 남자가 안보는 사이 방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었으며

쓰레받기에서 떨어진 쓰레기봉투안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봉투의 바닥을 찢어 탈출했다.


욕실 쓰레기를 처리한 남자는 병력이 몰려있는 거실로 돌아왔다.

그후 그대로 엎드려 소인들의 모습을 차근차근 관찰한다.

남자의 눈을 노리고 날아오는 그들의 화살은 남자의 안경에 가로막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채 볼품없이 추락했다.

무슨생각인지 남자를 향에 달려나오는 소인한명.

칼을빼어들고 뛰쳐나오는 모습이 용감보단 이성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달려오는 소인에게 남자는 손가락을 튕겨 딱밤을 날렸다.

너무 강하게 날려진탓인지 소인의 머리는 분리되어 따로 떨어져나가버렸고 몸뚱아리만 빙그르르 날려가 소인들이 밀집되어있는 곳에 떨어져 다른소인들을 넘어뜨렸다.


"오 알까기!"


다른소인 하나를 잡아와 또한번 손가락을 튕겨 딱밤을 날려보았다.

이번소인은 머리가 무사히 달린채 날아갔다.

빙글빙글 돌다가 다른소인에 쾅.


"캬하하하핫"


부딪힌 충격으로 한 소인이 튕겨져 나왔다.

그상태 그대로 딱밤을 날리려던 남자는 잠시 멈칫했다.


"여자네?"


자세히 보니 기사갑옷을 입은 여자소인이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올려다 보고있었다.

밀려오는 흡족감이 남자를 멈춰세운다.


"여자애는 상냥하게 대해야지"


손을뻗어가는 도중 여자소인 앞으로 다른소인이 달려나와 남자의 손을 막으려는듯이 온몸을 활짝펼친다.


"오...?"


자세히보니 아까전 바지에 오줌을 지리던 그녀석이랑 닮은것 같기도 하다.


"뭐야 너네둘이 그런사이야? 풉"


비웃듯 입술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웃음


"그럼 너네둘이 막 밤마다 해대겠네?"


남자의 표정은 급속도로 식어간다.

그와중에 막아선 소인은 뒤의 여자소인에게 뭐라 중얼거리는거 같다.

유언같은건가. 

쟤는 고개만 절레절레 거리네.

어찌되었든.


"아 재미없어 둘다 죽어"


발을 들어올린다.

발 뒷꿈치에 힘을 주어 내려밟는다.

연필심이 부러지는듯한 감촉이 온다.

그것을

바닥에 문질러 으꺤다.

발바닥에 묻은 오물을 떼어내듯 넓게 펴발라 비빈다.

발바닥을 들어올리니 그곳에는 소인이었던 흔적만이 바닥에 들러붙어있었다.

그 옆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입만 뻥긋거리고 있는 여자소인

분명 같이 밟을 속셈이였는데...

여자소인 옆에 다른 남자소인이 그녀의 팔을 끌어당긴듯한 자세로 넘어져있었다.

건방지게 구해준건가?


"야이씨 방해하지마!"


신고있던 슬리퍼를 손에들고 바퀴벌레를 때려잡듯 내리친다.

하지만 몸이 날쌘 남자소인은 그녀를 안아들고 슬리퍼를 비켜내며 내려칠때 생겨난 풍압으로 멀리 날라가 버렸다.


"아놔 너네 삼각관계냐?"


밀려드는 짜증에 남자소인이 날려진 쪽으로 슬리퍼를 냅다 던져버린다.

하지만 목표인 남자소인은 구멍쪽으로 재빨리 달아난 뒤.

애꿎은 다른소인들만 날아온 슬리퍼에 얻어맞아 명을 달리했다.


"너 이새끼 어디 두고보자"


남자는 선반위에서 제트킬라를 꺼내온다.

구멍주변에서 밍기적 거리는 놈들에게 사정없이 뿌려준다.

몇몇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갔지만 그러지 못한 놈들의 최후는 편하질 못했다.

흡입한 제트킬라는 폐를 망가뜨려 물속에 빠진듯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독성은 빠르게 다른 장기로도 침입.

망가져가는 장기에서 나오는 위험신호는 신경을 타고 몸의 주인에게로 전달된다.

그들의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며 고통속에 죽어가는 모습에도 화가풀리지 않은 남자는 또다시 구멍에 제트킬라를 박아넣고 쏘아제낀다.

그러기를 몇분간.

내부가 텅텅 비어버린 제트킬라를 뽑으며 남자는 나직이 다짐했다.


"다음번엔 다죽는다 나도 제대로 준비할꺼다"




---------




이세계에서 30여분간의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대륙은 연합군이 출격한지 45일을 지나 46일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차원문에서 튕겨지듯 튀어나온 두사람.

지칠대로 지쳐버린 두사람이었지만 남자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정신이 나간듯 연신 '아-' 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여자를 일으켜세운 남자는 그녀의 뺨을 때리며 소리친다.


"정신차려 밀리아! 이 여자야!!"


그녀의 초점은 고정되지 못한 채 연신 이리저리 움직이며 남자의 시선을 피한다.


"아-! 아--! 아---!!"


"밀리아! 뱉어내! 차라리 뱉어내!! 울란말야!!! 안그러면 네가 망가져버린다고!!"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그녀석을 지키지못한 내가 증오스럽다!! 동료들을 지켜내지 못했어!! 그런데 너마저 잃으면 나는...!! 제발! 녀석의 몫까지 제대로 살아달란 말이다!!"


제이슨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결국 밀리아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힌다. 오열한다.


"방금전까지 함께했는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구토하는 그녀

그렇게 끊임없이 슬픔을 토해낼수록 그녀의 표정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겠어"


희번뜩이는 그녀의 눈


"그래"



"반드시..."


분노를 씹듯 꽉 깨문 입술사이로 피가 흐르고


"그렇게 해"



"그녀석의 심장을 꺼내 씹어주겠어"


스스로 주박을 씌우듯 다짐한다.


"내가 도와주마"



그는 그녀를 부축하며 스크롤를 찢는다.


"귀환"



밝은빛이 사그라듬과함께 그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반나절 후.


차원문을 통해 흘러나온 죽음의안개는 아물어가던 대륙의 절반을 다시금 초토화 시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