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면 지름길 정도는 꿰고 있는 법이다.

 

나 또한 일생의 전부를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웬만한 지름길들은 전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의 약속 장소인 가게까지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이십 분. 지름길로는 십 분이 안 걸린다.

 

그렇기에 난 약속 시간 십 분 전에 집을 나섰고, 지름길을 따라 걸었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가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도착해도 일이 분이 남을 정도의 시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지름길이 공사로 인해 막힌 것이다. 

 

과도한 지식이 불러온 자만이었다.

 

만약 내가 이 지름길의 존재를 모른 채 이십 분 이상의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지금 필요한 것은 후회나 자조가 아닌 대책이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약속 장소에 안 늦을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일단 먼저 약속 상대에게 양해를 구해야겠지. 나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미안. 길이 공사 중이라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조금 늦을 수도 있어.’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는데 곧바로 문자 알림이 울렸다.

 

‘고개 들어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들으라니. 내가 보이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단 고개는 들었다.

 

고개를 들자 당연하게도 우선 공사 현장이 보였다. 포크레인과 트럭. 널브러진 자재들. 안전모를 쓴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부들. 그리고 가만히 서서 이쪽을 지켜보는... 뭐지?

 

공사 현장 맞은편에 누군가 있었다. 멀리 있어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인 듯했다.

 

다시 문자를 보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거기 있는 거 아니었어?’

 

오늘의 약속 장소는 내 집과 저 녀석의 집 중간에 있다. 상식적으로 쟤가 여기 있을 수는 없다.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의 고개가 내려가더니 이윽고 답장이 왔다.

 

‘문 닫았어.’

 

아무래도 지름길이 막힌 데다가 약속 장소인 가게 문까지 닫혔나 보다.

 

오늘은 운수가 없는 날인 모양이다. 이런 날은 집에서 편히 쉬는 게 상책인데.

 

‘그러니까 오늘은 너네 집에서 하자.’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이런 문자가 왔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해 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아. 그럼 이쪽으로 와. 기다리고 있을게.’

 

‘싫어. 네가 이쪽으로 와. 기다리고 있을게.’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내가 저쪽으로 갈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지?

 

‘우리 집으로 간다며. 그러면 이쪽으로 와야지.’

 

‘싫어. 그럼 적어도 중간에서 만나. 오른쪽으로 와.’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오른쪽이라 하면 어디를 말하는 거지? 내 기준인가? 아니면 자기 기준? 뭐 그건 당사자가 어디로 가는지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해 고개를 들었더니 건너편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이러면 영락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왼쪽 혹은 오른쪽. 어디일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역시 왼쪽이다. 저 녀석의 성격상 자기 기준으로 말했을 확률이 높다. 단순하니까.

 

결론을 내리고 왼쪽 길을 걸은 지 삼 분쯤 지났을 무렵. 아직 만나지 못했다.

 

시간상 절반은 왔을 텐데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까.

 

아니, 걸음이 느려 그런 걸 수도 있다. 일단 조금만 더 걸어볼까.

 

 

 

...어느새 아까 보고 있던 공사장 맞은편까지 왔다. 하지만 그 녀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아무래도 내가 잘 못 생각한 듯하다.

 

그때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문자였다. 내용은,

 

‘안녕.’ 

 

안녕이라고? 설마...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공사장 맞은편, 그러니까 아까 내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역시 있었다. 거기다가 반갑다는 듯이 손까지 흔들고 있다.

 

‘뭐 하자는 건데.’

 

퉁명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거기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좀 사다 줘. 너네 집까지 가는 길엔 편의점이 없고, 거기다가 나는 오늘 돈을 안 가져와서.’

 

그렇다는 건 애초부터 나한테 얻어먹겠다는 뜻이었겠지. 정말 악랄하기 짝이 없다.

 

짜증 나긴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김에 어쩔 수 없다.

 

‘알겠어. 근데 오른쪽이라면서 왜 네 기준 오른쪽이 아니었던 거야?’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네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일부러 반대로 말했지.’

 

‘ㅋㅋ 어때?’

 

맞은편에서 손으로 브이 모양을 하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살짝 웃고 있는 듯도 했다.

 

아무튼 오늘은 굉장히 운수가 나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