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기어코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나는 재작년 느꼈던 설렘이 거짓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왜 하필 너였을까? 왜, 도대체

끊임없이 이 마음을 부정해왔지만, 역시 실패했다.

세상 모르고 웃으며 달려오는 너에게 이런 비극적이고 끔찍한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3년 동안.

마음을 접어보겠다고 다른 사람도 만나 보았지만

그 사람과 만나는 동안에도 너는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3년 간 매일 써온 일기장에는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과 너를 좋아하는 나에게 보내는 질타와 비난들로 가득 찼다.

가슴 속 응어리는 쌓여온 일기만큼 불어나 버려서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졌다.

나도 이제는 남들처럼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 나도, 나도 그런 게 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음껏 놀러 다니면서 서로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애정 어린 말들을 주고받으며

남들에게 축복 받는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너와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싶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걸 알아서,

그동안은 너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매일 독서실에서 나오는 너를 전화기도 없이 30분, 1시간이 넘어도 기다리고, 

내 생일도 챙기지 않으면서 너의 생일에는 돈 십 쓰는 거 아끼지 않았다.

그걸로 만족했었다.

하지만, 와중에 네가 '딸을 갖고 싶다' 라고 말할 때마다 서러움에 사무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나를 

더 이상은 내버려 두기가 힘들어서, 오늘 결심한 것이다. 이제는 말 하기로,

정해진 결말, 예측한 결말로 끝난 나의 첫사랑.

어디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것일까.


그는 이르게 눈 내리던 12월의 어느 날 돌연 그에게 어떤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동창회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가족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받지도 못했다. 

소식이 궁금해 옛 집 주소를 찾아갔지만 이미 빈 집이 된 지 오래 되어 보였다.

그의 가장 친했던 친구는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정색을 하며 "내가 어떻게 알아 혼자 사라진 애를"

하며 시종일관 짜증만 낼 뿐이었다. 그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 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나에게는 천천히 아주 느리게 흘렀다. 

들려오는 소식에 너는 벌써 결혼했다고.

예쁜 딸은 없지만 잘생긴 아들을 얻었다고.


잘 되었다. 네가 행복한 게 내가 행복한 것이고 너의 꿈을 이루는 게 내 꿈을 이루는 거였으니까,

너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이 한 평생을 후회하진 않지만, 조금 씁쓸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 마음 풀 곳이 없어 네가 그렇게 다녔던 교회에서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물었다.

왜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되었을까요

간절히 모으고 예수님께 물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요

성경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로 호소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이니 이제 그만두게 해주십쇼. 저도 이제 지쳤습니다. 제발...제발...

오! 하나님! 제발 저를 용서하십시오! 




다음날, 그는 쓸쓸히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가 사랑했던 그 사람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그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사람은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메시지를 듣고는 죽은 사람의 얼굴이 되어선

바닥을 쿵쿵 내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 사랑했던, 사랑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