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준비를 마쳤다. 느긋한 마음으로 길드에서 받은 종이 쪽지을 꺼냈다. 용병 길드에서 받은 임무명령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헬리온 도성에서 악명이 높은 도적 3명의 목을 가져올 것.

도적의 인상착의는 아래와 같음"

임무명령서의 아래에는 도적 3명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에게 맡겨진 용병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내가 용에게 복수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사실 괴물은 죽이더라도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 꿈속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사람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용병 길드에 다시 가서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를 죽이는 명령을 달라고 할까? 지금 단계에서 내가 용병 길드를 찾은 것은 전투기술을 익히면서 살아갈 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늑대가죽으로 약간의 돈을 벌 수 있다면, 더구나 늑대 고기와 같은 전투를 통해서 얻은 


내가 꿈속의 세계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그 목표라는 것이 결국은 어머니를 죽이고 마을을 초토화시킨 용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를 복수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짐작하건데, 내 심리적으로 만족하는 수준에서 복수를 한다면 이 세계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용을 죽여야 만족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이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하지만 내 능력으로 용을 죽이려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용을 죽었다면 북유럽의 신화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인간이 죽일 수 있는 용이라는 것은 아마도 엄청나게 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내가 맞닥들여야 하는 용의 크기도 모르고, 그 용을 죽일 수 있는 방법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용을 영영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꿈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하자. 이 세상에서 나는 나이를 먹는다. 지금은 막 18세가 되었으니까 계속 경험과 경륜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영원히 사는 존재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영원히 살 수 있는지 아닌지를 설마 끝없어 보이는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할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알 수 없지만, 중세 시대에 관한 정보를 넣었다면 이 시대의 최대 수명에 도달하기 전에 죽게 되는 것이 자명할 것이다.  늙어서든 병들어서든, 다른 어떤 사고가 발생해서든 영원히 살지 못하고 결국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설마 이 꿈 프로그램을 만든 작자가 그런 정보를 넣어놓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생자필멸의 법칙 말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일 테니까 말이다. 


과연 내가 이 세계에서 늙든 병들든 어떤 이유로든 죽게 된다면 과연 나는 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일까? 옛날 개꿈을 꿀 때에는 아주 위기 일발의 순간에 꿈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하곤 했으니까. 죽게 된다면 엄청난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도 깨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꾸고 있는 것은 단순한 꿈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꿈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 현실의 몸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용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을 쌓으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것보다 더 짧은 시간에 용을 무찌를 능력을 가질 자신이 전혀 없었다. 끝내 용을 죽일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어 늙어서 죽게 된다면 이 세계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열악한 삶을 과연 30년 이상 버틸 자신이 있을까? 


늙어서 죽어 꿈에서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별다른 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 미칠 것 같은 삶이 될 것이다. 어차피 이 꿈속에서 죽더라도 내 현실의 몸이 죽지 않는다면 뭔가 모험을 감행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 이 땅에서 아무 무지막지한 모험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싸워서 죽게 된다면 혹시 꿈이 빨리 깨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죽어서까지 꿈속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꿈속에서 죽는다고 현실에서도 죽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추론하고는 있지만 아직 확신이 없다. 이럴 것이었다면 꿈속 나라로 들어오기 전에 꿈조작업자에게 잘 알아보는 건데 말이다.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꿈을 내 마음대로 깨어날 수 없는데. 


이것이 확실하지 않다면 꿈속이라지만 함부로 죽음이라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과거에 내가 꿈을 꾸었더라도 실제로 죽음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대부분은 죽기 바로 직전에 깨어났을 뿐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바로 깨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무의식의 작용"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꿈조작업자의 음파신호 때문에 무의식이라는 것이 꿈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무의식을 억제함으로써 마음대로 원하는 꿈을 꿀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이렇게 어패가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