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무릎과 허리를 약간씩 구푸리면서 경계태세를 취했다. 

방문쪽으로 가서 살짝 문을 연 뒤 복도를 살펴보았다. 삐그덕거리는 복도에서 무심하게 찍찍이면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영락없는 고블린들이었다. 과거에 탄광에서 처치했던 난쟁이 고블린이 아니라 인간보다는 조금 작지만 평범한 크기의 고블린이었다. 고블린은 조금 작은 체구이지만 인간보다 훨씬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는 몬스터다. 고블린의 숫자를 세었다. 3마리(명?)였다. 


과거 내가 탄광에서 새끼고블린을 여러 마리를 죽였던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지금 전투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힌 상태이므로 내 실력이라면 고블린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즉시 고블린을 향해 날렸다. 맨 앞장을 섰던 고블린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인간이다. 찍찍."


내가 쥐고 있는 칼의 날카로움이 비하면 고블린이 아무리 날렵하다고 하더라도 내 적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고블린은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어 내 머리를 날려버릴 태세를 취했다. 어딜? 내 장검이 고블린의 목을 향해 더 빨리 움직였다. 놈의 목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몸이 날려간 몸둥이에서는 피의 분수가 솟구쳤다. 허우적이며 팔을 뻗쳐든 몸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복도 바닥이 쿵 쓰러졌다. 이깟 고블린쯤이야 수십 마리가 몰려오더라도 상관이 없겠군.


어안이 벙벙하던 뒤에 선 두 고블린, 상황 파악을 위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내 내 좌우에 서서 몽둥이를 휘두른다. 나는 횡으로 장검을 넓게 날렸다. 두 고블린은 몽둥이로 내 검을 쳐내려고 했지만, 일거에 두 놈의 배를 가를 수 있었다. 고블린의 배는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의 배처럼 싹뚝 잘려나갔다. 놈들은 별다른 방어도구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고블린은 집단으로 움직이는 놈들이다. 분명 이 마을의 길거리에는 수 십 마리의 고블린이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고블린도 뭔가 필요한 것들을 찾아 이곳에 왔음이 분명하다. 대장간이나 무기상점, 방어구상점 등을 찾아다니며 몇 마리씩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숨을 죽이고 고양이 걸음으로 여관의 밖을 나와 무기상점을 시작으로 여러 가게와 대장간을 돌았다. 곳곳마다 4-5마리씩 있었지만 나는 큰 무리를 하지 않고도 놈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고불린은 쾍쾍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근처에서 경계를 보고 있던 고블린 10마리가 함께 뛰어오기도 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문 옆에 서서 개별적으로 뛰어들어오는 몬스터들을 차례차례 베어나갈 수 있었다. 참 멍청한 놈들이었다. 고블린의 지능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마을을 정탐하고 있던 모든 고블린을 처리한 뒤에 여관으로 되돌아왔다. 놈들이 입고 있는 낡은 의복을 벗겨낸 뒤 팔다리를 잘라내고 뼈를 발라내서 살고기를 모았다.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니까. 지난 번에 잡았던 늑대고기 말린 것은 모두 동이 났다. 


내가 듣기로도 이 꿈속의 세계에서는 몬스터의 고기를 식용으로 활용하지는 않는 듯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굶으면 굶었지 더럽고도 흉악한 몬스터의 고기를 먹어 생명을 유지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몬스터가 크게 발악을 한 것은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용과 인간의 경계구역은 예전부터 확고하게 나뉘어 있었으나 인간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몬스터의 영역을 침범함에 따라 용과 그 졸개들인 몬스터는 보호본능이 발동하여 인간을 적대시하게 되었다. 용이 그 졸개를 보내어 인간의 마을을 적극적으로 침범하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부터의 일이었다. 더구나 그 후로 인간 마을에서는 큰 흉년이 없어 먹을 것이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상황인데다 몬스터의 고기를 먹으면 인간에게 어떠한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도 했다. 감히 몬스터의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다.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병들어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인간 마을에 가서 충분한 식량을 가져올 수도 없는데다, 용과 그 졸개에 대한 나의 전쟁은 몇 주일 안에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러니 몬스터와 싸워 그 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블린 고기의 일부는 햇볕에 말렸다. 마침 해가 뜨겁게 내려쬐었기 때문에 얇게 저민 고블린 고기는 대충 1주일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식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