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 2차) 6-2. 돌로 만들어진 바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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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얼마 전, 10월 28일 오후 5시 32분의 일이었다. 플로리다 주 23번 주립도로. 소나기가 내리던 날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 안에서 죠린은 운전을 하는 잘생긴 자신의 남자친구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이름 말인데! 로메오… 너… ‘로쥬~’라고 불러도 괜찮아?”


로메오는 죠린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 닦으면서 말할 때 만이라면.”


죠린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야~ 싫어! 뭐 어때! 애기처럼 부르고 싶단 말이야아아아! 끝내주지 않아?!”


로메오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싫어, 끝내주긴 뭐가 끝내주냐~ 친구들 들으면 어떡하려고, 하지마~ 그런데 있잖아… 목마르니까 나도 거기서 뭐 좀 꺼내줄래?”


“언 돼, 아이스박스 안에는 ‘샴페인 슈퍼노바’ 뿐이잖아. 10% 칵테일 드링크란 말이야.”


죠린은 그렇게 말하며 양팔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따스함에 잠겼다.


“그치만 알콩달콩한 느낌이 들어서 좋잖아…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드는 게~ 가족들은 날 죠죠라고 부러. 어릴 때부터…”


“있잖아, 죠린.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묘한 소문을 들었는데… 너 옛날에 폭주족 멤버였어? 학교에서 누가 그런 소릴 하더라고.”


죠린은 시치미를 딱 땠다.


“전혀 모르는 일인데~? 뭐야 그게에에! 어머, 이상한 소리네.”


“차나 오토바이 같은 거 훔친 적 없어?”


“내가 절도를? 끝내준다! 쿨해! 하지만 땡이야.”


“너네 아버지가 엄청 무서운 분이라고 들었는데?”


“잘 모르겠는데, 대학 교수나 되는 사람이 왜 그러겠어?”


“너, 팔에 문신했지?”


죠린은 당황해 문신을 가렸다.


“이건 그… 타투라고 해. 여행 갔을 때 추억 삼아 한 거야!”


죠린은 화제를 전환하고자 로메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로메오도 분위기에 못 이겨 운전 중에 죠린을 바라보았다.


“저기, 그런 것보다 로쥬~ 날 죠죠라고 불러봐!”


“싫어… 폼 안 난다니까 그런 거!”


“뭐 어때… 처음엔 싫었던 것도 시간 지나면 제법 버릇이 될걸. 한번 불러 보래도!”


“에이~ 참.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 순간, 무심코 앞을 바라본 죠린이 소리쳤다.


“로메오오오오!!”


그러나 늦고 말았다. 그들이 탄 자동차의 유리창으로 검은 무언가 부딪히고, 깨진 유리창을 통해 피가 튀었다. 중심을 잃은 로메오의 차는 도로에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가드레일을 들이 받았다. 다행히 둘 다 별 부상은 없었지만, 죠린은 운전대에 머리를 처박고 헐떡이는 로메오를 돌아보았다.


“로메오! 뭐… 뭐였지?”


“염소야! 검은 염소였어! 왜 염소가 도로에 뛰어나오는 거야?! 목장 울타리 좀 제대로 치라고!”


그러나, 죠린은 다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로메오!! 이… 이럴 수가!”


조수석이 위치한 쪽 앞유리에… 피로 범벅이 된 안경이 박혀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큰일이야! 맙소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죠린은 헐레벌떡 차 문을 열고 나오더니 끔찍한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자신들이 친 건 염소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시속 60마일로 달리던 차에 치인 사람은 도로변에 있던 나무 가지에 거꾸로 걸려 피를 폭포수처럼 흘리고 있었다. 죠린은 다급히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전화… 전화해야 돼! 구급차를!”


그때, 로메오가 죠린의 팔을 잡았다.


“죠린. 부탁이야, 죠린… 그러지 말아줘… 잘 생각해봐… 전화는… 하지 말아줘.”


“무… 무슨 소리야? 무슨 얘기하는 거야? 어서 저 사람을 구해야지!”


“저 사람은 누가 봐도 즉사한 게 분명해! 안경이 앞유리에 박혔다고!! 내 말 잘 들어, 죠린. 미래를 좀 생각해봐… 전화는… 관두자…”


“그럴 수가! 설마… 달아날 셈이야? 안 돼! 이건 사고야! 게다가 무슨 수로 달아나! 타이어 흔적도 남아 있어! 네 차 도료나 파편도 사방에 잔뜩 튀었다니까!”


“시신을 다른 데로 옮기면 돼! 비가 증거를 없앨거야.”


로메오의 말에 죠린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죠린… 알아? 이대로 내가 체포되면 우리 둘의 미래는 끝이야… 난 대학 진학이 이미 정해져 있어. 그것도 물론 취소될 거야. 가족들이나 아버지 회사에도 당연히 영향이 가겠지. 너도 마찬가지잖아! 넌 그냥 아무 말 않고 있기만 하면 돼.”


로메오는 간절한 눈빛으로 죠린에게 매달렸다.


“부탁이야. 날 사랑한다고 말한 건 거짓이었어?”


“당연히 사랑해…! 하지만… 이건…”


그때, 로메오는 멀리서 자동차 소리를 들었다.


“차가 온다! 들켰다간 끝장이야!”


로메오는 나무에 걸린 시체를 끌어내리려 했다.


“죠린! 무거워… 도와줘! 죠린! 나무에서 내려 차 트렁크에 숨겨야 해! 역시 이 남자는 이미 죽었어…! 누가 뭘 해도 이 남자는 더 이상 살아 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우리한테는 미래가 있잖아! 부탁이야… 도와줘…! 사고 때문에 미래가…!”


죠린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로메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동차는 50여 미터 앞까지 와 있었다.


“죠리이이이이이인!!”


결국, 죠린은 로메오에게 달려가 그와 함께 시체를 날랐다.


“트렁크를… 열어!”


아슬아슬한 순간, 죠린과 로메오는 트렁크 안에 시체를 넣을 수 있었다. 로메오는 죠린을 껴안으며 말했다.


“고마워. 이 차나 뒷일은… 넌 아무 걱정할 것 없어… 모든 건 내 책임이니까.”


그로부터 며칠 후, 11월 2일 오후 8시 43분 플로리다 잭슨빌에 위치한 죠린의 집에 무장한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형사가 죠린을 몰아붙이며 소리쳤다.


“죠린 쿠죠 맞지? 벽 보고 양손을 벽에 짚어! 23번 주립도로 뺑소니 사건의 용의자로 널 체포한다!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네가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


죠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 사건은 로메오가 정리했을 텐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소란에 죠린의 어머니, 쿠죠 안나 체펠리가 뛰쳐나왔다.


“죠죠? 이분들은 대체?!”


경관이 그녀를 막으며 무전기를 들었다.


“방금 전 용의자를 확보했다. 연행하겠다!”


죠린은 경찰들에게 연행당하면서도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걱정 마요… 난 괜찮아!”


잠시 후, 경찰서로 연행된 죠린은 경관들에 둘러싸여 심문을 받았다.


“얼른 죄를 인정하는 게 좋을걸.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너, 그때 술 마셨지? 발견된 차 안에서 네 지문이 찍힌 병이 나왔어.”


“그래서 넌 운전중에 그 히치하이커가 보이지 않았던 거야!”


“운전…? 내가?”


“쿠죠 죠린, 음주 운전은 인정하겠지?”


경악한 죠린이 멍하니 앉아만 있자 경관은 탁자를 쾅 치며 언성을 높였다.


“이봐!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죠린도 경관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끄러어어어어어! 변호사나 불러!!”


그리고, 시간은 다시 11월 8일 오전 11시, 플로리다 주립 그린 돌핀 스트리트 교도소 관리 수감 시설 죠린은 변호사가 왔음에도 손가락에 난 자신의 상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나? 죠린…”


“저기, 구치소 안에서… 내가 펜던트 받았던 거 던져 버렸죠? 어디 갔는지 알아요?”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걸. 하수구 같은 데 빠진 게 아닐까? 죠린.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이대로 가다간 재판만 반년은 걸려.”


“저기… 로메오는 어쩌고 있죠? 로메오는 만나 봤어요?”


“그래. 만나 봤지. 그 친구는 사건 당일 자기 차를 도둑맞았다면서 도난 신고를 했어. 차내에 네가 마신 술병이 있었지. 그래서 검찰은 ‘네가’ 그 친구의 차를 훔쳐 사고를 내고 달아난 걸로 여기는 거야.”


죠린은 머리를 싸매고 절망했다.


“이럴 수가…”


“운전한 건 ‘그 친구’였나?”


“그건 얘기 못 해요.”


변호사는 좀더 평온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죠린. 혹시 ‘사법 거래’라고 아나? 보통 재판의 비용과 수고를 덜기 위한 제도인데 말이야… 일단 네가 모든 죄를 인정하고 거래를 하면 형량이 상당히 가벼워져.”


“뭐예요, 일단이라니. 난 ‘무죄’라 형 같은 건 받을 리 없다고! 자꾸 그렇게 나오면 다른 변호사를 선임할 거야!”


“자, 들어봐… 우연이지만 이 재판의 검사와 나는 대학 시절 친구지간이야. ‘그 친구’ 쪽에서 거래 제안이 왔어. 네가 모든 걸 인정한다면 시신을 차로 실어 다른 곳으로 옮긴 건 눈감아주겠다는 거야… 그러면 단순한 절도와 과실치사에 그치지. 보통 교통사고는 1~2년형에 아마 집행유에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집행유예’. 다시 말해 넌 교도소에 가지 않고 끝난다는 거야. 전과가 남긴 하겠지만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어.”


죠린은 양 주먹으로 탁자를 쳤다.


“난… 무죄로… 누명을 쓴 거라고… 몇 번을 말해…”


“나도 다 알지… 하지만 그게 ‘거래’란 거야. 물론 결정은 네가 하는 거지만 만약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최소 5년은 확실히 들어가 있게 될걸. 시간이 없어, 죠린… ‘거래’를 하려면 재판 시작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해.”


마침내, 죠린은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며칠 후 최종 판결심. 늙은 판사는 헛기침을 하더니 판결문을 바라보았다.


“변호인 측은 ‘사법 거래’의 내용을 전부 인정합니까?”


“예, 인정합니다.”


“검찰 측은 어떻습니까?”


“전부 인정합니다.”


“피고인 쿠죠… 당신은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누군가의 강요나 모종의 압력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닐 테지요?”


죠린은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예… 인정합니다.”


“본 법정은 피고 죠린 쿠죠가 죄를 전부 인정하였으며… 또한 계획성 없는 범행이라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음을 판결에 고려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던 피해자를 증거 인멸을 위해 차 트렁크에 밀어 넣고 현장을 이탈, 습지에 유기함으로써… 재차 살해한 행위를 본 법정은 용인할 수 없다.”


판사의 말에 죠린은 당황했다.


“숨이 붙어 있던 피해자? 저기요? 변호사님? 대체 무슨? 저 노인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재차 ‘살해’?”


“본 법정은 피고 ‘죠린 쿠죠’를 15년간 ‘주립 그린 돌핀 스트리트 중경비 교도소’에 수감할 것을 확정한다. 이상.”


판사가 판사봉을 치고, 판결은 끝났다. 하지만 죠린은 믿을 수 없었다. 이건 얘기가 전혀 달랐다. 등골이 오싹하고 다리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15년… 뭐야… 숨이 붙어 있었다니… 이미 그 히치하이커는… 변호사님?!”


그러나 변호사는 냉정하게 짐을 정리하며 그녀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난 최선을 다했다… 그럼 잘 지내라 쿠죠 죠린.”


변호사는 매정하게 떠나버리고, 경찰은 그녀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죠린은 떠난 변호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 어, 어디 가는 거야?! 무슨 소리야?! ‘15년’이라니 그게! 얘기가 다르잖아!! 기다리라잖아, 이 자식아!!”


문이 닫히고, 변호사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심해도 좋네… ‘형’은 확정됐어. 사법 거래를 한 이상 저 여자는 항소할 수 없지. 그러니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더 이상 없을 걸세. 축하하네… 로메오 군.”


“뭘요… 정말 죽을 맛이었 다니까요… 요즘 진짜 운이 없었어요. 히치하이커를 치다니. 거기다 숨이 붙어 있는 것을 알았을 땐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천만에… 자네는 운이 좋아. 저 여자가 자네를 감싸줬으니 말이야. 게다가… 자네 집이 부잣집이란 게 또 행운이었어… 나중에 청구서 보내지.”


죠린은 ‘실’을 이용해 모든 대화를 들었다. 배신감에 눈물이 흐르자 슬픔은 뒤이어 분노로 바뀌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 이 자식… 로메오… 로메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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