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양천구 일대는 김포로 부군면 통폐합 당하기 전에는

양천현이었음.

 

이걸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시대에는 제차파의(齊次巴衣), 신라시대에는 공암(孔巖)이라고 불렸다고 함.

실제로 현재 가양동에 공암나루가 있었다고 함.

 

보통 이렇게 적힌 지명들은 고구려지명발음=신라지명발음이고, 표기법만 달라지는 경우가 대다수임을 볼때

제차파의=공암 임ㅇㅇ

딱 봐도 파의->바위->암인 건 너무나도 명확함

 

문제는 제차=공(孔)을 어떻게 해석하냐는 건데...

구글링 해보면 아무런 근거 없이 제차=구멍 이라서 구멍바위임ㅇㅇ 하는 설명이 대다수임. 

이런 가운데 나름 합리적인 설명을 한게 있었는데,

1. 제차= 제사와 연관 잇는 단어로 추정 => 제차파의= 제사 지내던 바위. 이 바위가 양천 허씨의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설득력이 있는 것 같음.

2. 역으로 공(孔)암이 신라시대에 오기되어서 내려져 온 것으로 판단. 공암이 아니라 유(乳)암이지 않았을까 추측. 그러면 제차=젖 얼추 비슷해지기도 함. 

 

뭔가 글이 고대 언어학스러워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