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스보른 안에서의 아이들http://tongtongnews.net/archives/75


제2차 세계대전때 나치 독일이 유럽 여러곳을 점령하고 통치했을때 점령지에 아리아인들을 많이 만들겠다며 폴란드와 노르웨이 등지에 레벤스보른을 세웠다.


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SS) 단원들이 현지 여성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한 뒤 아이를 낳고 레벤스보른에 보내졌는데 이렇게 태어난 아기만 무려 2~3만명. 

 슬픈건 이렇게 태어난 아이 중에 나치 정부로부터 아리아인이라고 판단되지 않으면 레벤스보른에서 아기를 버리거나 심지어 죽이고 버리는 일도 생겼다.


 특히 노르웨이에서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고 이들의 엄마들은 대부분이 강간을 당했음에도 독일군과 성관계를 했다며 폭행 등의 린치를 당했고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심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자국으로 돌아간 독일군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 둘 다에게 버림을 받고 혼자 외롭게 지내며 온갖 따돌림과 인종차별들을 받고 살아도 누구한테 의지하며 살 수 없는 슬픈 일을 겪었다.




 


두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ABBA의 멤버 안니프리드 륑스타(Anni-frid Lyngstad).

이 사람이 독일군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에게 태어난 레벤스보른 출신이다.

이 분은 기적이었던게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의 어머니가 전쟁이 끝나고 처벌대상이 되어버리자 그녀의 할머니, 어머니와 갓난아기였던 본인을 데리고 옆의 스웨덴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웨덴으로 도망오고 얼마 안 가서 사망하였고 할머니가 그녀를 키웠다. 그녀가 가수로 성공하고 얼마 안가서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녀는 가족도 없이 ABBA멤버들과 지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독일군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군함선이 침몰해서 사망한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독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유부남으로 살고 있었다는것이 1977년 8월 한참 ABBA의 인기가 전성기였을때 한 독일 잡지에서 드러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났던걸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인기가수였던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는것을 알게 되었을때 무척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계기로 1977년 8월 그녀와 아버지가 만났지만 언어가 다른나라에서 각자 산 그녀와 아버지는 말이 통할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스웨덴으로 이주하고 얼마 안가 사망한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그녀에게 진심어리게 사과했고 그녀에게 ''우리는 만났지만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할거 같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인물 좋고 성격이 착한 그녀는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게 됐음에도 아버지를 만나서 기쁘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2009년 사망했는데 사망했을때까지 계속 연락하고 지낸걸로 보인다.

자신의 과거의 죄를 딸과 가족에게 사과한 아버지나 그걸 웃으면서 대인배처럼 받아들인 그녀나 참 대단한거 같다.
 

최근에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으로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고 학교에서 온갖 따돌림과 폭력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이 규칙인 게임이 나왔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이라는 게임이다. 1948년 전쟁이 끝난 후가 게임의 배경인데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의 비극적으로 살아야 했던 삶을 체험하면서 이들의 슬픔이 극대화되는것을 느낄 수 있다.
정말로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전쟁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하는 것을 전쟁을 안 겪어본 나나 여러분들이나 뼈저리게 느낄지도 모른다.
전쟁은 전쟁 중일때만 전쟁인게 아니라 그 후의 비극적인 모습까지도 말 그대로 전쟁인 것이다.  전쟁을 하는 중에는 어떠한 인간도 눈에 보일 수가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