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소비에트 연방 소속 크림반도의 도시 얄타.

한 노인이 저녁에 먹을 빵과 보드카를 사고 거처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의 고향은 흑해의 작은 섬, 에란겔이다.

 

 

                                                                                            고요한 땅

 

 

오늘 저녁엔 빵집 주인과 보드카 한잔 하기로 약속이 잡혀있었기에, 나는 빨리 거처로 돌아갔다.

그러나 빵집 주인은 오지 않고 대신 그의 아들이 왔다, 듣기로는 오늘 몸이 안좋다나.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아들이 물었다.

"아저씨 고향은 어디에요?"

"에란겔이라는 아름다운 섬이란다"

"근데 왜 얄타로 왔어요?"

"왜냐고? 음... 얘기가 긴데 들어보겠니?"

답이 없자 이윽고 나는 입을 열었다.

내 고향 에란겔은 저기 검은 바다에 있단다, 아름다운 섬이었지.

아저씨는 "밀타" 라는곳에서 농사를 했단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이웃들과 보드카를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날 내 고향에 다른 사람들이 왔단다. 아니, "상륙"했지.

그들은 에란겔이 요충지라느니, 인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느니 온갖 꿀바른 소리를 하고 에란겔 바로 옆에 있는 소스노브카 섬을 싹 밀어버리고 군사 기지를 세우고, 활주로와 벙커를 파내려갔지.

그러면서 자연히 게오르고폴이나 야스나야 폴로냐같은 큰 도시가 생겼단다. 원래는 프리모스크가 가장 큰 도시였는데 말이야.

아, 뭔지 모르겠구나. 쉽게 말해서 얄타 옆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생긴것처럼 생각하면 된단다, 그만큼 사람들에겐 충격적이었지.

처음엔 그들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단다, 수도와 전기는 물론 냉장고같은 가전제품도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는데 그땐 마음껏 쓸 수 있었지. 요양지나 여행지로도 사람들이 많이 왔기도 했고. 물론 세베르니에 사는 사람들같이 일부는 화내기도 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혹시 분리주의라고 아니?

소녀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원래 분리주의자들은 이곳, 크림반도에서 활동했단다.

그런데 당국의 감시가 날카로워지자 가까운 에란겔로 잠입한거야. 그게 모든것의 시작이었지.

당국은 분리주의자들을 끔찍히도 싫어한단다, 연합을 붕괴시키는건 곧 국가 전복이었으니 당연할수밖에.

그런데 망할 분리주의자들이 에란겔에 본디 살고있던 주민들을 에란겔을 독립시켜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선동을 한거지. 이때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단다. 두 세력은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며칠 뒤, 당의 지시를 받아 더 이상의 동지들간 공격은 없게 하자는 '평화적인' 회담이 말타에서 열렸단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면 좋았을뻔 했어...

아무튼 그날 밤, 평화롭게 진행되던 회의는 갑자기 중단됐단다. 어느쪽이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 말타에 누군가의 방화로 대형화재가 일어났거든.

분리주의자와 당국은 이 사건이 서로의 탓이라고 화살을 돌렸고, 결국 에란겔은 생지옥이 됐지...

분리주의자들이 소스노브카 섬에는 없고 에란겔에만 있다는걸 알자 에란겔에 국가 비상 사태(우리나라의 계엄령쯤)를 선포하고 당과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분리주의자들을 처단한다는 것을 명분삼아 소스노브카 섬을 잇는 두 다리를 틀어막고, 에란겔한테 무차별 학살을 가했단다.

그 광경은 너무나 참혹했지. 집을 불태우고,  살아있는사람을 표적으로 삼고, 임산부나 젖먹이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였으니까, 심지어는 가족중 일원이 없으면 그 죗값을 이어받는다는 연좌죄가 도입돼기도 했지. 나도 그 연좌죄때문에 내 눈앞에서 가족들아 죽어가는 모습을 봤단다.

그리고 나는 생지옥이 된 그 섬을 탈출했고, 이곳 얄타로 왔단다.

이야기가 끝나고, 소년이 물었다. "그래서 그 섬은 어떻게 됐어요?"

노인이 답했다. "그 섬이 어떻게 됐는지는 나도 모른단다. 그렇지만 내가 육지로 오고 얼마 지니지 않아 군이 여기로 철수했으니 아마 "고요한 땅"이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리고 그가 덧붙여서 말했다. "지금도 에란겔 사람들은 수배중이란다, 그러니 오늘 일은 비밀로 하거라"

 

소년이 다시 물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노인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거긴 내 집인걸."


그 후 소년은 노인에게 인사하고 그의 거처를 떠났다.

소년은 집으로 가던 도중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문득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조금 후, 그는 담장에 붙어있던 수배지을 뜯고 내용을 읽어봤다.

에란겔 사람들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한동안 그자리에 머물러있던 소년의 발자취는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시청을 향해 달려갔고, 그의 발자취엔 구겨진 수배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 이 글은 PLAYERUNKNOW'S BATTLEGROUNDS의 맵중 하나인 에란겔의 배경설정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자작 소설입니다. 시간이 많았으면 더 고퀄이었을텐데... 아쉽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