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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엔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음

남자가 안 꼴렸단 말임

아니 뭐 여자만 좋고 남자가 혐오스럽고 그런 느낌이 아니라

남자한테는 일절 성적 욕구가 안 들었음


근데 막상 또 고등학교 때 여자를 사귀고 보니까

난 여자가 좋은 것도 아니었음

사귈 땐 물론 좋았어

스킨십하면 옥시토신 터지고

올려다보는 눈빛도 귀엽고

무릎에 앉혀놓고 머리 쓰다듬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고


근데 결국 나중에 보니깐

나한테 있어선 그게 연애감정은 아니었던 거 같아

그냥 정서적 교감 하는 게 좋았던거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어

그때 상담사 분이 손바닥 절반 사이즈로 잘라놓은 종이를 내밀면서

거기에 자신이 친구를 사귈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여섯가지 요소를 적어보라고 하셨음

그리고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를 5명 적어보라고 하시고

이 친구들이 그 여섯가지 요소중에 각각 몇가지나 부합하는지 체크해 보라고 하셨음


체크해 보니까 애들이 최소 4개씩은 전부 체크가 되더라고

뭐 그렇겠지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있으니까 내가 걔네랑 친구를 했던 거겠지

근데 상담사 쌤이

이번엔 이 요소들 중에서 나는 몇 가지나 해당되는지 체크해보라고 하셨음


나는 내가 중요히 여기는 여섯가지 요소 중 여섯가지 전부 해당이 되더라고

그리고 그 다음에 상담사 쌤이 한 말을 나는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음

혹시 @@이는 자기가 제일 좋은 거 아니야?


순간 심장이 뛰어야 할 한 박을 건너뛴 듯한 느낌이 들었음

수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잠시 말이 안나왔는데

결국 그 뒤 상담은 일상적인 대화나 좀 나누다가 끝냈어


그날 밤에 집에 와서

거실에 놓여있던 거울을 봤는데

이전엔 느끼지 못한 감각을 느껴버림

이 사람이라면 정말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림

정말 이 사람이라면 나를 잘 이해해줄 수 있을 거 같고

이 사람을 보기만 해도 설레고

이 사람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고

이 사람의 부끄러운 모습, 기쁜 모습, 슬픈 모습, 토라진 모습, 전부…평생 이 사람의 곁에서 함께하면서 지켜보고 싶다

라고 생각해버림


그 뒤에 나는 그냥 내가 자기성애자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왜인지 자존감도 존나 올라가고 사는게 훨씬 행복해짐

나는 평생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랑 십수년째 항상 붙어다니던 거잖아???



그리고 나중에 동생이랑 대화하다가 그 일 털어놓았던 적 있는데

동생도 자기 스스로랑 결혼하고 싶다더라

아무래도 유전인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