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챈러스 채널

한번쯤 이세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 보기 마련이다. 못났던 잘났던 간에, 세상이 워낙에 뭐 같거니와

 

할짓없는 백수가 망상좀 하는게 나쁜일은 아니니까.

 

'그런고로 이세계 한번 가보고 싶다. 치트 능력 와장창 가지고서 마구잡이로 난도질 해보고 싶어.'

 

그때 이변이 벌어졌다.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 같은것이 울렸던 것이다.

 

[그래, 가라]

 

그렇게 나는 이세계에 도착했다.

 

침대랑 같이.

 

 

 

그런데 침대는 왜 온거지?

 

족히 자기 몸집의 두배쯤 될듯한 가방을 맨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뿅 이든 샤라랑이든 뭔가 요상한 소리와 함께,

 

의외로 예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평범한 편인가? 저 압도적으로 큼직한 가슴은 좀 무섭지만... 눈도 좀 무섭다. 날카로워

 

보이는건 그렇다쳐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내리깔아 보는듯한 눈이다. 여왕님 소리 듣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눈매라고 해야하나?

 

"에... 이세계에 온것을 환영한다. 뭐 능력 갖고 싶은거 있어?"

 

목소리는 생각보다 나긋나긋한 편이었다. 적어도 외모에서 연상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능력 갖고 싶은거 있냐고 묻는게 정상인가?

 

"... 원래 보자마자 능력 갖고싶은거 있냐고 말해요?"

 

"어둠의 힘을 원하느냐 나의 하인아! 같은걸 원한다면 내 전임이 나을걸, 근데 그놈은 몇억쯤 되는 병신들 이세계에 배달하다 지쳐 뒈져버렸어."

 

"몇억?"

 

"몇억"

 

"어우..."

 

"그래서... 능력은?"

 

"다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까?"

 

"너 말고도 배달해줘야 되는 놈들이 쌔고 쌨거든? 내가 귀찮으면 네놈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 응? 아무거나 주고 던져놓기 전에 빨리 말하는게 좋을거다."

 

능력, 능력이라...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생각 해본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살기조차 바쁘니까... 이런 저런 능력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본적은 있지만 이곳은 이세계고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가장 무난한게 낫지 않을까?

 

"생채기 하나 안날정도로 튼튼한 피부를 주세요!"

 

거대한 가방을 메고 있어서인지,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만으로 대형사고가 날것 같았지만, 다행이도 그런일은 없었다. 

 

족히 자기 키의 두배쯤 되는 짐짝이 중심을 잃어 버리는데도, 버티는것을 보면 저 여자는 힘이 어지간히도 강한것 같다.

 

"생각보다 평범하네? 보통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왕이 되게 해달라느니, 여자 꼬시는 페로몬 같은걸 비는데."

 

"그거 너무 불길한 소원 아니에요?"

 

"잘 아네, 페로몬은 찢겨 죽었거든."

 

"에엑..."

 

남 찢겨 죽었다는 소리를 상쾌하게 해대는걸로 봐선 정상은 아니다. 애초에 이세계 오는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녀는 눈을 감은채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몸짓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봐야 했다. 저 짐짝이 날 덮치는 날엔 뼈도 못추릴게 뻔하니까.

 

"좋아, 됐다. 넌 지금부터 뭘 맞든간에 생채기 하나 안날정도로 튼튼해."

 

"그리고 가고싶은 곳은..."

 

"뭐? 가고싶은곳? 너 돌았냐? 완전 뻔뻔한 새끼일세 이거! 그건 내가 골라줄거거든! 네놈은 거기에 관여할수 없어, 넌 그냥 내가 보내주는 대로 가면 되는거야!"

 

잠깐... 뭐? 

 

"그런법이 어딨어요?"

 

"여기있다 븅신아! 이제 능력도 얻었으면 당장 꺼져!"

 

"잠깐만요! 이건 아니지 이 개새....."

 

무슨 말도 채 꺼내기 전에 그 여자는 손가락을 한번 더 튕겼고, 나는 무언가가 날 끌어당기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저거 보아하니 완전히 개같은 년이다. 남은 평생동안 남친 따위는 손에 대지도 못하겠지, 헤... 차라리 잘됬네, 평생 노처녀로 살다 뒈져 버리라지.

 

겨우 눈을 떴을때, 눈앞에 금발의 아름다운 엘프가 서있었다.

 

뾰족귀에 피부색이 검은것으로 봐서는 다크 엘프인 모양이다. 몸매는 아까 만났던 그 미친년보단 못하지만, 충분히 좋은 편이었고, 아니 오히려 이쪽이 더 좋은것 같다.

 

인사라도 꺼내려 했을때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난 이딴 빼빼마른 새끼를 내 배에 태운적이 없다! 이 새끼 태운놈이 누구냐!! 당장 이실직고 하지 않으면 네놈들 모두 대포에 처넣어 하늘 가운데에 쏴제껴주마!!!"

 

세일러복에 해골 마크가 찍혀있는 모자를 쓴 다크 엘프는, 허리춤에 두자루의 검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정황을 보았을때, 낼 수 있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요즘 엘프는 해적질도 하는거야?

 

보통 엘프라고 한다면 숲속의 아름다운 은둔자나, 마법사 같은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나마 가장 폭력성 짙은 이미지도, 화살을 사용하는 민첩한 궁수 같은건데... 

 

내 눈앞에 있는 엘프는 아무리 봐도 선원들로 보이는 다른 다크엘프 들과 함께 부대껴서는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있었다. 다크엘프라서 그런건가? 피부색 하나 다르다고 이미지가 저렇게나 달라질수가 있나?

 

어쩌면 백인과 흑인이 다르듯이 다크엘프와 엘프의 관계도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랩... 같은거 좋아하는건... 이건 인종차별적인 이야기니 넘어가는게 좋겠군.

 

"이 인간을 내 배에 태운놈이 누구냐고 물었다! 당장 불지 않으면, 오늘 저녁은 건너뛰고 내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일하게 될 줄 알아라!"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지금 단체로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냐? 단체로 저녁굶고 내일 아침도 굶겨줄까? 엉?"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진짜로 허공에서 툭 튀어 나온거나 다름 없으니까. 그때 세일러복을 입은 백발 다크엘프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선장님... 진짜로 없는거 같습니다... 그냥 처분 하는게 어떨까요?"

 

아무래도 선장으로 불리는 다크엘프를 제외한다면, 이 배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엘프인것 같았다. 

 

다른 엘프들은 전부 다 그냥 세일러 복을 입고 있었지만, 저 엘프는 혼자 가슴에 무언가를 매달고 있었으니까, 무슨 훈장 같은데 정확하게 무슨 훈장인지는 알수가 없다. 

 

잠깐, 그게 아니지 처분? 처분이라고?

 

"저기... 누님? 처분 이라는게 뭘 뜻하는 건지 좀 알려주실수 있습니까?"

 

가슴에 훈장 같은것을 단 엘프는 내 말을 무시했다. 엘프와 인간 사이의 흔히들 있는 종족 차별 같은건가? 아니면 그냥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후자일 가능성은 없을거 같다. 내가 저 작자들의 말을 알아듣고 있으니까, 아니면 나는 알아들을수 있는데 저놈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다.

 

선장은 아까도 그랬듯이,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난 내 배에 몰래 얻어타려고 하는 새끼들을 가장 싫어해, 알아 들었나? 배를 타고 싶으면 제값을 내고 정당하게 타란 말이다! 안 그래도 뱃사람들 다 굶어 죽을판에, 감히 공짜로 얻어타서 쓸데없이 짐짝을 늘리려 들어? 너 같은 놈은 당장 죽어 마땅하다! 아그들아! 이놈을 당장 대포에 넣어 쏴버려라!"

 

 

 

요약하자면... 나를 대포에 넣어다 쏴버리겠다는것 같다.

 

.....

 

안돼.... 아냐! 아냐!! 이건 아니야!!!

 

"살려주세요 누님! 뭐든지 할테니까, 쏘지 말아줘요 제발!"

 

 

 

다크엘프 둘이 내 팔을 잡아 질질 끌고 가는 중에 그들의 가슴이 팔에 닿는게 느껴졌다.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다만, 문제는 조금만 더 있으면 대포에 넣어져 쏘아질 운명이라는 것이려나?

 

그와중에 내 오른쪽 팔을 잡고 있던 다크엘프가 조그마하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짜부되는건 생각보다 아프지 않으니까."

 

 

 

이상한것은 이곳에서 파도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는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바다에서 일하는 선원들 치고는 뭔가 이상했다. 바람소리만 계속해서 들리질 않나, 물고기 밥도 아니고 짜부가 된다거나, 하늘 한가운데에 쏴 버리겠다거나... 내 불길한 예감은 조금씩 조금씩 들어맞기 시작했다.

 

여기는 이세계였고,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다.

 

아까부터 모여있던 다크엘프들이 대포 주변을 빼곡히 채우며,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무슨 축제라도 벌어진거 같지? 대포 쓰는게 워낙에 오래간만이라 그러니까... 좀 봐달라구."

 

그들은 내 머리채를 잡아 난간 에 있는 힘껏 들이밀어 선심 쓰듯 배 아래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그제서야 파도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지 알아낼수 있었다.

 

이 배는 하늘 위에 떠있었다.

 

그것도 까마득하게 높이.

 

 

신이 말했지... 내 몸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정도로 튼튼해졌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추락사 같은것도 같이 빌어야 했다.

 

 

 

 

 

 

 

노잼인거 알아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