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연구실 어떻게 정하냐는 고민을 올린 사람이 있길래 

그냥 기억을 더듬으며 대충대충 독일에서 대학원 생활하며 겪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이번에는 그냥 어떻게 입학하고 연구실 들어가기 직전까지 대학원생활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한다.


석사 입학 자체는 한국 대학 성적이랑 토플 점수 들고 지원했다. 

물리과는 뮌헨의 LMU라는 곳만 아니면 GRE 물리점수 같은 것 요구하지 않고,

학부 성적으로 네가 공부를 어떻게 했냐는 거 보여주고, 

CV라고 이력서 비스무리하게 학업 어디서 했고, 무슨 연구했고, 

무슨 활동하며 살았는지 간단히 정리하는 소개서 정도 적었다. 

그리고 석사 과정을 영어로 교육하는 곳은 영어시험을 IELTS 아니면 TOEFL 요구하는데, 

당시에 그냥 토플 대충 하나 쳐서 들어갔다. 80점 언저리면 충분히 들어간다고 친구들한테 들었다. 

물리를 대학원으로 독어로 교육하는 곳은 드물다만, 

그래도 정말 가고 싶다면... 독어 시험 치고 가겠지, 난 모르겠다.


학부 성적은 uni-assist라는 곳에 돈 주고 독일식 시스템으로 변환 요구하고, 

이 uni-assist라는 페이지가 사실상 외국인이 독일대학에 지원하는 모든 것을 관리하는 창구다. 

입시에 필요한 모든 서류는 사본을 이 웹페이지에 다 업로드하고, 

나중에 원본을 지정하는 장소로 우편발송하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uni-assist는 네 서류를 독일인이 심사하기 좋게 변환하여 독일 대학 본부에 발송해주고, 

결국은 해당 대학원에서 네 서류를 보고 심사한 뒤에 합격 여부를 우편 및 이메일로 통보해준다.


학제는 대학원마다 케바케인데, 내가 있던 곳은 4학기 전체로

2학기 코스웤 돌리고 2학기 연구 돌려서 2년안에 졸업한다는 플랜인데, 

4학기에 딱 맞춰서 석사논문까지 다 쓰고 깔쌈하게 졸업하는 놈 내 기수에는 손에 꼽았다. 

난 좋아하는 연구를 열심히 한다는 느낌보다는, 학기를 적당적당히 경영한다는 느낌으로 가까스로 4학기에 졸업했다. 


소소한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처럼 봄학기+가을학기가 아니라, 독일은 여름학기+겨울학기라고 한다.

특별히 계절학기 같은 건 없고, 대충 시험 기간 지나서 소소하게 열리는 세미나 과목이 몇몇 있을 뿐이다. 

여름학기는 4월 중순에 시작하고 7월 말 쯤에 기말시험을 치고, 

겨울학기는 10월 중순에 시작하고 크리스마스 방학 뒤에 한 2월 초 쯤 기말시험 친 것 같은데 

이젠 코스웤도 마친 지 오래 되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기말시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말 그대로 '기말한큐'였다. 

레알로. 

보통의 전공수업은 이번 주에 어느 범위 배워서 어떤 숙제 나올지 알려줄 용도라 출첵 따위 없었다. 

네가 독고다이로 하겠다 싶으면, 수업 한 번도 안 나와도 된다. 그런데 추천은 안 한다.

숙제는 그냥 기말을 치기 위한 준비일 뿐이고, 숙제 잘 푼다 해서 네 성적에 반영은 안 된다. 

(물론 세미나 위주 과목은 출첵 당연히 하고, 프로젝트 위주 과목은 숙제가 성적에 반영된다.)

중간고사조차도 없어서, 한 학기 다 배우고 기말고사 치고, 

기말고사 성적이 곧 그 과목 성적이다.

다만 시험 조졌다 싶으면, 재시험을 1~2개월 뒤에 한 번 더 볼 수 있다. 


와서 좋았던 점은, 자유로웠다. 

백지에서 인생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좋았다.

좋은 대학을 나왔건 안 좋은 대학을 나왔건 동아시아 어느 한 구석에 네가 나온 대학 아는 사람 없고,

네가 인생에 무슨 실수 또는 성공을 하고 왔건 네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별로 상관하는 사람도 없다.

네가 어느 지방에서 왔건 50% 정도는 다 타지에서 온 놈들이라 묘한 동병상련도 있어서 

곧잘 수업 같이 듣는 놈들끼리는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특히 학기 초에 40명으로 시작해서 기말고사 막판에는 7명으로 줄어드는 양자장론 같은 괴랄한 수업은 

다 마치고 나면, 무슨 극기훈련이라도 같이 마친 놈들인마냥 서로 좀 짠한 게 생기곤 했다.


코스웤 공부야 힘들었지. 그런데, 공부는 어디에서나 다 힘들잖아. 

그런데 사람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어. 

내가 무릎 다 뜯어진 츄리닝에 목 늘어진 나시를 입고 수업 들으러 나와도, 

춥다고 방한복 겹겹이 입고 눈사람처럼 해서 나와도, 

남을 함부로 판단질하여 그걸 입 밖에 내는 것이 아주 무례하다는 분위기가 강해서, 

다들 자기들 머리 속에서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걸로 뒷담 까거나 대놓고 당사자에게 놀리는 인간은 보기 힘들었다. 

나처럼 개썅마이웨이로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나름 편했다. 

교수님들도 일반적으로 한국만큼 권위적이지 않아서, 

의견개진이나 질의응답이 훨씬 원활했고. 


글이 이미 길어졌으니 이만 줄이고, 다음에는 석사 연구실 정하는 이야기로 넘어가지.

소소한 잔가지 이야기는 수요가 생기면 하는 식으로 넘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