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학사가 3년이고 석사가 2년이다. 

나보다 한 6~7년 늙은 사람들은 디플로마라고 학사+석사 합쳐서 5년짜리 프로그램으로 학교 다녔는데,

그 디플로마 학위 들고 다른 나라 가면 학사로만 취급 당하는 등 서로 호환이 안 되는 문제가 많아서, 

결국 학사 3년으로 썰고, 석사 2년으로 따로 떼어내서 현재의 시스템이 되었다. 


학사 취급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안습인데,

딱히 졸업연한, 학사경고, 재수강 불가 같은 제도가 한국보다 (거의 없다시피) 널널한 데다가, 

졸업을 2년 반 수업 대충 듣고 6개월 연구 또는 인턴으로 간단한 소논문 쓰고 마치기 때문에, 

현지인 말을 빌려서, 학사만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사람을 

"certified dropout" (인증은 받은 중퇴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에 사실상 지금 소개하려는 석사 학위과정에서 하는 1년 가량의 연구가 

사실상 학계에 제대로 발을 내딛는 첫 연구가 되는 셈이다. 

내 경우에는 코스웤 두 학기 (1년) 만에 마치고, 바로 석사연구 시작했다. 

석사연구는 각각의 연구실 직접 컨택해서 상담 후 연구주제 정하고 시작한다. 

관심 있는 연구실 교수님한테 해당 연구실에 이것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낸다. 

그러면 석사연구기간동안 (박사과정생과 달리) 인건비 안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석사노예를 

구태여 마다하는 교수는 좀처럼 없다. 


네 흥미분야에 맞춰서 분야를 정해주는 교수도 있고, 

그냥 답정너 식으로 우리 집에 이 프로젝트 빈 자리 있으니 하고 싶으면 하던가 하고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난 그 둘의 중간 느낌으로 내가 했던 석사연구실에 들어갔다. 

메일로 내 흥미 분야와 이력서(CV)를 보내며 상담 요청했더니, 

교수가 언제 찾아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교수랑 30분 정도 내가 할 연구 분야 개요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이후에는 나를 직접 지도해줄 포닥(박사졸업 후 연구하는 사람)이랑 같이 

출근은 어떻게 하고, 연구실 생활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세부사항에 대해 다시 면담했다. 


연구한 물질은 너희들 냉장고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자석을 연구했는데,

연구주제는 희토류 자석(강자성체) 중에서 가돌리늄과 터븀의 내부 원자 구조가 

어떻게 다르기에 서로 자성이 다른가에 대해 공부했다. 

실험 기법은 펨토세컨드(10의 -15승 초) 단위로 짧은 레이저 펄스로 자석을 자극시켜 아주 짧은 순간동안 

자석이 아닌 그저 고철로 만들었다가 다시 자석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사진" 찍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spin-resolved photoemission spectroscopy 라고 스핀에 따라 모양이 다른 물질의 density of states를 

관찰할 수 있는 기법인데, 몰라도 이 글 읽는 데에는 상관 없으니 궁금하면 댓글로 물어봐라. 


나는 실험 연구실이라 월화수목금 매일 출근했고, 

수업은 다 들은 상태라 수업 나갈 필요는 없어서 연구에 전념했다. 

한국처럼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개같은 환경은 아니고, 

가끔 본인이 필요하면 야근이나 주말 출근 좀 하는 걸 제외하면

대체로 정시출근(9~10시) 정시퇴근(18~19시)하는 느낌의 (돈 안 받는) 직장 나가는 느낌이었다.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는 학과 내에서 컴퓨터 고치는 IT-service 알바 뛰면서 

학비 조금 충당했다. 건강보험금이랑 집세 가까스로 내는 정도. 

연구실에서는 논문 쓰러 온 석사연구생에게는 돈을 안 준다.


배우고 나온 걸 꼽아보면 고진공(ultrahigh vacuum = ~10의 -11승 mbar) 환경을 다루는 연구실에서

모든 부품을 그 환경에 맞게 잘 세척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고,

고진공 환경에서 불순물 적은 나노미터 단위의 박막을 어떻게 기르는가에 대해 맛보기로 배우고, 

만든 박막의 품질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간단히 배우고, 

고출력 레이저 다루는 곳에서 눈 안 조지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측정 한 번 하려면 1~2주일은 스트레이트로 빡세게 몸 굴려야 한다는 실험 싸이클을 몸에 익히고

컴퓨터로 내가 측정한 데이터를 어떻게 후처리할 수 있는가를 간략히 배우고,

그 결과를 나름 독립적으로 학계 규칙에 어느 정도 맞춰서 보고서를 영어로 쓰는 법을 배우고,

자기가 연구한 바를 남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포스터나 발표 형태로 표현하는 법을 간단히 배우고 나왔다. 

깊지는 않고, 1년 동안 두루두루 다양하게 배워서 나온 느낌. 

지금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니 그 때를 돌이켜 보면,  

도대체 당시에 얼마나 날림으로 공부한 건가 헛웃음이 날 때도 있다. 


연구실은 독일인이 많은 편이어서, 

빨리 말할 내용이나, 내가 알 필요 없는 내용은 

자기들끼리 독어로 말 해서 처음에는 좀 못 알아들어 벙 쪘었는데, 

나중에는 나도 독어가 좀 늘어서 무슨 소리하는지 토픽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오래 독일 생활할 거고 연구실 멤버들과 가까워지고 싶으면 

적어도 독어를 배우려는 열린 태도 정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게 도움이 된다. 


이 때 같이 일했던 연구실 멤버들이나 IT-Service 멤버들이 나름 친해져서, 

가끔 내가 밥 먹이려 집에 초대한다던가, 

아니면 내가 역으로 파티에 초대된다던가 하면서 

외로운 타지생활에 내 멘탈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게 웃고, 서로 놀리고, 편하게 개드립도 주고 받는 

직장 동료 이상의 친한 친구같은 사람들. 


글이 꽤 길어졌으니까, 석사 졸업 후에 박사 진학은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한다. 


궁금한 점 있으면 댓 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