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 일본에 주둔한 미군사령부는 천황 히로히토에 대해 압송 명령을 내린다.


이에 일본 내각에서 천황의 체포 소식을 언론통제 시키자, 미군 사령부는 즉각 내각의 총리를 해임시키고 새 인사로 갈아치운다.



1946년 상반기 : 사령관 맥아더는 천황 기소 및 전범재판 회부 안에 찬성표를 던진다. 


한편 미군 사령부는 기존의 천황제를 전면 폐지하여 자신들의 본국인 미국의 대통령제 공화정 체제를 이식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1946년 중반기 : 히로히토 천황은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판결을 받기 시작한다.


일본 내각에서 미군 사령부의 대통령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표하는 동시에 제국 시절 정치 체제 '내각책임제'를 전면 유지할 것을 주장하여, 미일 양 쪽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맥아더와 일본 총리가 만나는 등, 몇 차례 가량 협의가 이루어진 끝에 결국 미군 사령부와 일본 내각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절충시킨 현지화된 정치 체제를 만드는 것에 합의한다.



1946년 후반 ~ 1947년 초반 : 공화국 정치 체제, 민주주의, 국민 주권이 명시된 새 일본 헌법이 공포되고 몇 달 후 시행되어 총선과 대선이 새로 치러진다. 이에 따라 일본 국회에서 선출된 새 대통령이 정부 수립 및 공화국 건국을 선포한다.




1948년 초반기 : 히로히토에 대한 판결이 '무기징역'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전범재판 배심원들은 천황의 사형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일본 국민의 반발을 우려했던 담당 판사와 사령관 맥아더의 입김으로 천황은 최종 판결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1950년대 이후 : 일본의 역사는 기존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구 황실이 소유했던 토지는 전부 정부에 이관되어 공원, 대통령궁, 기타 용도로 활용되었다.


1970년대부터 일본 정부에서 히로히토 천황의 사면을 몇 차례 검토했으나 매번 미국의 반대에 의해 좌절되었다. 결국 미국이 묵인하여 80년대 초반에 일본 정부는 조건부로 히로히토를 가석방시켰다. 히로히토는 정부에서 제공된 도쿄 근교의 작은 저택에서 조용히 살다가 198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