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된 중부유럽의 소국인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 또한 이의 예외가 아니었다. 1946년 열린 체코슬로바키아 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신속하게 이 작은 나라의 적화를 진행시킬 프로젝트를 계획 및 진행하는데, 그 프로젝트에는 비공산계열인 야당 탄압계획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공산당은 신생독립국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과 음모의 책임을 야당인사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이들을 탄압하였는데, 이에 반발하여 1948년 2월 국민사회당, 인민당, 민주당 등 야당 인사들이 공산당의 야당인사피소에 대한 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게 된다.

결과는 뻔하게도 공산당은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6인의 공화국 경찰간부를 모두 공산당 계통 인사로 갈아채워 이에 맞선다. 의회의 다수파와는 달리 공산당 계통이 아니었던 공화국 대통령인 베네시와 그의 행정부는 의회에게 야당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의회는 이를 일축한다. 야당인사들은 최후통첩으로 행정부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의원 전원이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나 공산당은 되려 얼씨구나하고 일방적으로 정부위기상황 선포&프라하 및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파업투쟁을 일으키는 등 실력행사를 통하여 야당의원 사퇴를 끝까지 거부하던 행정부를 "설득"시켜 일당독재 체제를 본격적으로 형성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2월정변, 혹은 '프라하의 쿠데타'라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적 승리는 곧 대규모 숙청을 암시하였고, 머지않아 20만명에 달하는 비공산계열 시민들이 직장을 잃어버린다. 당연히 이러한 시민들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념과는 관계없이 공산당에 입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머지않아 공산당 내부에서도 숙청이 이루어지는데,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탓에 다음의 숙청타겟은 티토주의자 혹은 반스탈린주의자들이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무질서, 그리고 비효율적인 공산주의적 통제경제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냄에 따라 한때 번영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제는 급속도로 휴지통에 꼬나박히게 된다. 

어찌 지구 반대편 얘기치곤 오버랩되는기 좀 많은서 같다??

이게 한국의 미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