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대인이라면 군자의 면모를 보이고 을 베풀어야지 소인배 짓거리를 앞장서서 하고 다니니 마음으로 따를 리가 없다. 전근대 중국은 천자국을 자처하는 만큼 황제국으로써의 체면을 상당히 신경썼으며, 자국민이 주변국에 민폐를 끼치는 경우에는 오히려 가중처벌을 했다. 이는 중화사상의 영향도 있었지만 유교의 종주국이라는 특성상 덕치를 근본으로 삼았고 항상 주변국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상대가 조선 같은 제후국인 경우에는 오히려 국가가 국민에 대한 보호를 포기하고 '니들이 알아서 처벌하고 나중에 적당히 보고만 해라.' 고 할 정도로 주변국 관리를 잘 했다. 심지어 청나라도 역모, 밀수 등을 제외한 일은 조선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명 초기 때까지 남아있던 순장 풍습이나 공녀 요구에 대해서 깔 지언정 '지들이 뭔데 우리한테' 나 '니들이 사람이냐' 는 식의 근본적인 불만은 터져나오지 않았다. 아니, 우리나라를 돕다가 되려 지들이 망해버렸다.[19] 그러나 현대 중국에서는 인문학과 유교가 근본적으로 박살나게 되면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문화 우월주의와 타국을 향한 갑질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사실 중국은 지금도 딱히 자원도 없고 인구 밀도만 높은 지역들은 탐내지 않고 대체로 바다 혹은 북서 방향으로 팽창하기를 원하는 편이다. 괜히 함께 미국에 맞서고 있는 러시아 혹은 인도에게 불신감을 주면서까지 1인당 자원량이 많은 지역들을 영토 교환[25]하거나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게 아니다. 러시아하고도 영토 협상을 하고 있어서 국경이 조금씩 변하기도 하며 세계 곳곳에서도 이런 협상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차피 영토 병합이 거의 불가능하고 영향력 확장 정도만 가능하기도 하고, 또 그런 것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의 중화사상은 서방의 패권주의와 다를 게 별로 없는 형태가 되었다. 현재 남중국해 등지에서 이뤄지는 분쟁이나 한반도에 대한 압박은 겉으로 보면 자원을 놓고 벌이는 충돌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나라를 장기적으로 장악하여[26] 최소한 제국 주변의 안정을 확보하고, 팽창이 목적이라면 이들 지역을 기반으로 더욱 뻗어 나아가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도련선 전략이다. [27]

이 중화사상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비교되는 이유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달리 중국은 자국을 위에 두고 일방적으로 패권을 휘두르는 듯한 외교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강경할 때는 강경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만큼 상대방을 살살 달래기도 하고, 지원을 해주기도 하는 등 서방 세력에 편입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지급한다. 어떻게 보면, 이 미국의 외교방식이 오히려 위에 언급한 '정석적'인, 그러니까 과거 중국 왕조들이 제국(帝國)으로서 펼쳤던 중화 질서의 구축 방식과 유사할 지경이다.

그러나, 중국은 중화 세계에 편입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옛 중화제국의 세력권으로 여겨지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외교적으로 고압적이고 일방적이다. 이 점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비교되는 중화사상의 특징이다. 사실 미국 역시 자국의 세력권 내에서는 중남미중동만 봐도 잘 알듯이 지극히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패권을 휘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과 동남아 지역에서 반중 감정이 강한 것처럼 중남미 지역에서는 반미감정이 강하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한국과 일본이 존재하듯이, 최근 중남미 국가들이 중국과 동맹을 맺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중남미 국가들의 상태가 영 시원찮기도 한데다가, 중국이 이웃국가인 동아시아와 동남아 국가들에게 보여주었던 막무가내식 고압적인 태도를 보고 슬쩍 손을 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점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도 마찬가지. 오히려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반중감정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

최소한 미국의 경우에는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통한 두 번의 경험과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를 주도해오면서, 단순히 국력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나라이며, 이 때문에 친미국가를 상대로는 대우를 잘 해준다. 즉, 갑질은 할지언정 최소한 갑질에 대한 대가는 주면서 갑질을 하기 때문에 주변국들 입장에서도 자국민을 상대로 내밀 명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주변국들의 자주국방과 경제를 무시한 채 무조건 중국을 따르라고 일방적으로 압박하는 데다가 그 태도나 형식도 미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압적이며, 주변국 입장에서 자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명분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야 되겠냐 같은 X까는 소리뿐 이 때문에 중남미 국가나 아프리카 등 초기에 친중이던 지역들 조차 얼마 되지 않아 죄다 반중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동아시아 패권을 넘볼만한 국력을 지녔음에도 미국과 달리 마땅한 동맹국이 없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지역강국들의 협조와 동맹이 없이는 결코 세계 패권을 쥘 수 없다. 한때 유럽의 패자였던 나폴레옹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기억하자. 즉, 근현대의 중화사상은 민족주의, 패권주의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상 중국 위협론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시진핑의 장기집권 이후 이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된다면 중국도 향후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마저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