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공항을 거쳐 김포공항로 되돌아왔다. 오는 길에 기자가 한두 명 정도 붙었지만 리와인더의 일원으로서의 취재가 아니라 다롄 대지진의 마지막 한국인 귀국자로서의 취재였다. 그래서 내용도 별 것 없었다. 그저 지금은 완쾌되었고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골자로 답해주니 순순히 물러나주었다.

나는 그 길로 아산공장으로 향했다. 원래 샤카넬은 대전 오피스텔에 본사가 있고 아산에 공장이 있는 형태였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인해 본사와 공장을 하나로 합치다시피 하여 공장에 사무공간 및 연구공간을 세워 아산공장을 본사로서도 삼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문을 열고 아산본사의 문을 열었다. 아침 10시였다. 중소기업의 특성 상 일반 직원들은 이미 출근해있을 시간이었다. 창립자 중 하나이자 현직 대표이사인 나는 바로 사무실이 있는 쪽으로 올라갔다. 
사무실은 사업을 다 포기한 듯한 협소한 공간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창립자 6명이었다.
6명 모두 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모두가 나를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안 그래도 비행기가 비상착륙한 데다 대지진에 휘말려 중상까지 입었다니 그런 마음이 안 들래야 안 들 수 없었을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근데 전화로 리와인더니 뭐니 했잖아. 그게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내가 공항에서 메신저로 전했던 것을 창립자 중 한 명인 강두일이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일일이 하나부터 다 설명했다. 내가 리와인더를 따라간 것, 린장으로 간 것, 거기서 안드로이드한테 죽을 뻔 한 것, 그리고 리와인더에 아지트를 제공해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한 것까지.
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나니 안 그래도 리액션이 풍부한 강두일과 감수성이 풍부한 이보현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대희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부적절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씨발 미친."
"근데 그거 사기 아니야? 나노로봇이라면 몰라도 안드로이드의 습격은 좀 그렇잖아. 그리고 평행세계에서 왔다는 것도 좀 그렇고. 애초에 그걸 어떻게 하냐고."
현직 총수 심호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은경진도 이에 거들었다.
"맞아. 안 그래도 망했는데 더 망할 수도 있잖아."
심호재와 은경진의 성격 상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그걸 설득할 방법이 하나 존재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걸로.
"지금이 몇 시지?"
"지금? 10시 19분인데."
심호재가 답했다.
"마침 시간 딱이네. 리와인더가 맞다면 곧이겠네. 잘 들어. 이제 2분 후에 백두산이 분화할 거야."
"아니 그건 또 뭔 소리야?"
이번에도 리액션이 다채로운 강두일이었다.
"씨발 그건 또 뭔 소리래."
"일단 두고 봐. 10시 21분에 백두산 분화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참고로 지진 규모는 7.8이다."
내 말을 들운 사람들이 전부 깜짝 놀랐다.

"만약에 백두산이 진짜로 터지면 어떻게 할거야? 이거 큰 기회 아니야?"
강두일이 기대심을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여기에 내 희망을 곁들였다.
"기회겠지. 안 그래도 지금 자금난 상태인데 이것밖에는 붙들 동앗줄이 없다고. 아까 말했듯 마지막 투자처였던 뉴호프도 파산했잖아. 여기에 희망을 걸어보자."
"그렇네. 자금난을 해소할 수는 있겠네. 적어도 사업 접고나서 대출금 갚으려고 허덕일 필요는 없겠어."
우리 중에서 이 사안에 대해 가장 회의적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은경진이었다.
"근데 안드로이드가 습격했대매. 너도 이제 위험해졌다면서. 설마 이제 걔네들이 우리 때려부수러 오는 거 아니야?"
강두일이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안드로이드가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민간인은 사살 금지라더라고. 민간인이니까 바로 항복하면 될 거야."
"근데 돈은 어떻게 번대?"
"그거야 그쪽에서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 일단 밖에서 미리 온 몇 명 대기중인데 들여올까?"
"밖에 있다고?"
"어. 들여와봐."
심호재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호출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문 밖에서 대기증이었단 두 명이 들어왔다.

한 명은 미야자키 츠바사. 나랑 동갑인 만29세이며 긴생머리에 청순해보이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만39세로, 건장한 체격의 미국 남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크리스 이스트우드입니다. 버지니아 주 경찰관 출신입니다."
크리스 이스트우드는 투먼에 있던 단원으로 멜리사 푸르니에와 세르게이 아시모프와 한 팀이었다. 3곳에서의 습격 이후 모두 린장으로 결집하게 되었고 이 중에서 몇 명이 나를 따라 샤카넬로 미리 온 것이었다.
이스트우드의 영어 자기소개에 내 동료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덧붙여 외국인에 대한 낯설음과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있었다.
"뭐해, 너도 인사해야지."
이스트우드가 멀뚱멀뚱 서있는 미야자키에게 언질을 주었다. 미야자키가 이제서야 눈치채고 당돌하게 자기소개했다. 영어였다.
"미야자키 츠바사입니다."
뭔가 앞뒤에 많이 잘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적절히 소개를 더 붙여야 했다.
"이분은 일본 해커 출신인데 정신적으로 매우 특이하셔가지고 양해 부탁해. 이래뵈도 해킹 실력은 일류야."
"츠바사라고 불러주세요."

그 순간 나를 포함한 모든 창립자들의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소름끼치게 웅웅거리는 소리였다. 무슨 일인고 하니 재난안내문자였다. 
골자는 이랬다. 백두산 분화.
성격이 조급한 안대희가 바로 컴퓨터로 뉴스를 찾아 들어갔다. 곧 안대희는 생방송 중인 뉴스를 찾아 볼륨을 키웠다. 뉴스는 대단했다. 자막에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백두산 분화가 쓰여 있었다. 아나운서도 살짝 떨떠름한 듯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매고 방금 들어온 소식을 침착하게 전하고 있던 것이었다.
모두가 그 소식에 경악했다. 이보현은 '세상에'라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강두일도 어버버하며 '이거 진짜야?'하고 말하고 있었다. 내 말에 회의적이었던 심호재와 은경진도 직접 안대희의 자리로 가서 두 눈으로 직접 리와인더의 말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모두가 리와인더를 향해 시선을 꽂았다. 이스트우드는 이미 예상한 일인 듯 별 반응에 없었다. 그리고 미야자키는 이번에도 별 생각 없어보였다.
"아니 이게 진짜면 씨발 우리나라 망했네 하하하..."
"하하하 욕하지 말자 대희아 하하하..."
"아니 뭔데 그러고 있어?"
오늘도 상황파악이 느린 안도훈이 어리둥절하며 뭔 일인지 물었다. 안대희의 말에 츳코미를 건 강두일이 열심히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백두산 분화했네. 이제 저쪽은 구호하느라 바빠지겠지."
이스트우드가 혼잣말했다. 그러고보니 그쪽은 이제 쉴 틈이 없을 것이었다. 특히 시즈오카 히카리는 PTSD가 부활한 유혜림을 정신적으로 돌보랴 사람들 구호하랴 바쁠 터였다. 그러고보니 최은준이라는 분은 결국 김정은을 어떻게 했을 지도 궁금했다.
"일단 뉴스 보면 내용 맞잖아? 해보자."
"근데 우리가 빌려주면 뭐하는 거야?"
심호재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나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기 때문에 이 점은 매우 궁금했다.
바로 영어로 크리스에게 물었다.
"만약에 거래가 성사되면 뭘 할 거냐고 묻습니다."
"아, 그 점이요? 잠시만요."
크리스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래서 대단한 계획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답은 싱거웠다.
"안 알려주더라고요. 통화 해볼까요?"
"모른다고요?"
"네. 워낙 비밀이 많으신 분이시다 보니."
"그럼 해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스트우드가 스마트워치로 전화를 걸었다. 창립자 동료들이 뭔가 하고 구경했다.

이스트우드가 전화를 걸었다. 나도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자 다른 창립자 동료들이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천 슈어가 전화를 받았다. 천 슈어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이스트우드가 이에 상황을 설명했다.
"단장님,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크리스 이스트우드가 천 슈어보다 나이가 더 많았지만 상급자인지라 예의를 지켜 말했다.
"일단 공장이 어딘가?"
"아산입니다."
"어디보자 아산이라... 그렇군. 잠깐만 기다리게."
천 슈어가 뭔가를 찾아보는 듯 했다.
"아산은 다행히 비행금지구역이 아니군. 그럼 이렇게 움직이도록 하세."
"어떻게 말입니까?"
"먼저 드론을 만들어 아산공장에 설치한다. 혹시 공격받을 지도 모르니 이에 대한 대비다. 그리고 아산공장을 아지트로 삼는다."
"근데 그러면 공장 사람들은 안 위험할까요?"
"안 위험하게 잘 해보겠네. 내 생각이 맞다면 충분히 가능하네."
"그러면 그 다음은요?"
"무기 만들어도 되나?"
"대체 어떤 무기를 만드시려고..."
"공장 돌려야 할 수준의 무기는 만들지 않을 걸세. 어떤 무기를 만들어야 할 지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함세."
어떻게 할 지 심히 고민되었다. 그래서 다른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저희 회사가 금전적으로 빈곤하잖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복권이라던가 주식이라던가 방법이야 많을 걸세. 평행세계라서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봐야 알겠군. 아니면 기술이라도 줄 수 있네."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일단 동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생각해?"
그 후로 많은 말이 오갔다. 모두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차차 찬성하는 사람들이 나오며 결국 모두의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합시다."
"네. 그럼 그렇게 하죠."

천 슈어와의 용건이 다 끝나고 나가려고 하는 그 때였다. 최은준이 통화방에 들어왔다.
"단장 동지!"
최은준은 만50세의 북한 출신 남자였다. 지금 리와인더에서 김정은을 담당하신 그 분이었다. 최은준 씨가 결국 어떻게 했을 지 궁듬해졌다. 천 슈어와 세르게이 아시모프의 대립이 있었다는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일단 원래 계획대로 살리는 쪽으로 실행했수다. 그런데 뭔가 아이 예상한 일이 일어났수다."
최은준의 말에 원인 모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이것 때문에 통화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뒷말은 뜻밖이었다.
"다른 조직이 와가지고 김정은 암살했수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결말에 눈이 절로 동그래졌다. 통화소리를 같이 듣고 있는 동료 창립자들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조직입니까?"
천 슈어도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듣자하니 김정은을 암살하기 위해 만든 단체 같수다. 단체 이름이 신세계결사라고 했수다."
"신세계결사라... 거기군. 그럴만 하네."
단장님이 조금 생각에 잠기더니 의외로 쉽게 납득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지. 나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그나마 나은 결과군."
"후과적으로(결과=후과) 일 없는(=괜찮은) 겁메까?
"그렇네. 세르게이도 이건 좋게 받아들이겠군. 아니, 오히려 더 환영할지도 모르지."
"그럼 끝났으니 그쪽으로 가겠수다."
"그러도록 하게."
"예."
그렇게 최은준과 천슈어가 차례로 통화방을 나갔다.

그렇게 결과적으로 아산공장을 리와인더의 아지트로 삼는 것으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나로서는 샤카넬이 망하지 않아서 좋고 리와인더로서는 안전한 피난처가 생겨서 좋을 것이어서 윈윈이었을 것이다.
안대희가 틀어놓은 뉴스에서는 아직도 백두산에 관한 속보를 다루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미 압록강, 두만강, 쑹화강에 20억 톤에 달하는 천지의 물이 쏟아져 피해가 매우 막심하다는 것 같았다. 또 화산재가 일본 쪽으로 향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아무튼 그렇게 아산을 시작으로 리와인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