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었다.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아시모프가 천 슈어 단장님을 청산 총으로 쏘았다. 천 슈어 단장님은 이것을 예상했는지 폭탄을 터뜨려 세르게이를 죽였고 파르나스 타워 밑으로 추락했다.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사고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아악! 놓쳤어 씨발!"
팡 씬이가 내려가던 안드로이드 2대를 처치하지 못했다는 것에 빡쳤는지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통신앱인 패러렐라인을 쓰지 않았는데도 엄청 잘 들렸다.

"안드로이드 떠났지?"
"떠난 것 같아요."
크리스 이스트우드가 패러렐라인을 켜서 말했다. 여기에 시즈오카 히카리가 답했다.
레이더의 XIA-H9-397과 XIA-H9-762는 파르나스 타워를 나가 영동대로를 타고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철수하는 것이었다.

"그럼 끝난거지?"
"그런 것 같은데요? 천 슈어 단장님도 별 말 없으시고."
"그런가?"
크리스가 이 말을 하고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에 기지개를 켰다. 그와 동시에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우리도 철수하자!"
"아쉽게 됐지만 싸움 끝났으니 뭐 됐나?"
팡 씬이가 수긍했다. 여기에 시즈오카 히카리도 수긍했다.
"아 정말 다행이에요.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요. 여기까지 와서..."
히카리의 긴장이 풀리자 그만의 전매특허인 수다가 시작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어의 구렁에 빠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크리스가 그를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팡 씬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일아, 거기서 뭐하냐?"
팡 씬이가 히카리의 지옥문이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화제를 얼른 돌렸다. 대상은 나였다.

나는 별 말 하지 않았다. 슈트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동공의 초점이 계속해서 흔들려 바르지 않았고 온 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현일아?"
팡 씬이가 안 들리나 싶었는 지 다시 말했다.
발을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발걸음을 뗐다. 무리였는지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야, 무슨 일인데?"
팡 씬이가 이쪽으로 왔다. 크리스와 히카리도 무슨 일이지 하며 내쪽으로 왔다.
나는 그들이 오자 설명하려고 했으나 입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팔을 천천히 들어옮겨 구멍 아래 23층 사무실을 가리킬 뿐이었다.

"밑에? 밑에가 왜?"
"세... 세르ㄱ..."
입이 겨우 떨어졌다. 충격이 워낙 크다보니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오, 그렇네. 23층이 완전히 부서졌어."
시즈오카가 밑을 보더니 말했다.
"그, 그게, 그게 아니고..."
"무슨 일인데?"
히카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맞다. 천 단장님이 이 밑으로 떨어지셨지? 내려가봐야겠네."
히카리가 구멍 밑으로 들어갔다. 역시 23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23층은 폭탄으로 사무실 전체가 폭발에 휘말려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깨진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먼지와 종이가 휘날렸다. 책상이 사정없이 부서져 그 잔해가 뒹굴고 있었다.
"어우, 참혹하네요. 한바탕 했네요."
히카리가 23층으로 내려가 주변을 탐색하고는 놀라며 말했다.
뒤따라 크리스와 팡 씬이도 내려왔다. 나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어, 여기 누구 쓰러져있어요!"
히카리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슈트를 입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슈트가 폭발에 그을려있었다.
"잠깐, 왜 하체가 없어?"
"뭐?"
팡 씬이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이는 광경은 참혹했다. 슈트를 입은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아시모프는 폭탄에 의해 두동강나있었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사무실 집기들과 엉겨붙어있는 그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아 씨발 이거 꿈이지? 그렇지?"
"오 맙소사..."
히카리, 팡 씬이, 크리스가 동시에 탄식을 뱉었다. 히카리는 의사답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일단 슈트 벗길게요."
히카리가 세르게이의 슈트를 벗겼다. 이미 목숨이 다한 듯 얼굴에 기력이 없고 창백했다. 같은 의사인 팡 씬이도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히카리를 도왔다.
히카리가 세르게이의 맥을 재었다. 그리고 당황한 듯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이건 나노로봇으로 안 돼."
"이미 숨이 끊겼어. 신경이 끊어져서 복구해도 식물인간일 거야."
"너도 못 고쳐?"
"어. 이미 끝났어."
로봇시술 전문 외과의사 팡 씬이도 젓고 싶지 않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떡해.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일단 구급실로! 여기 911이야 뭐야?"
"대한민국은 119야."
"아무튼 그거 불러!"
다급했다. 크리스가 119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통화가 쉽지 않은 듯 했다. 하긴 대한민국에 전례없는 대지진이 일어나 롯데타워가 주저앉은 마당에 의료체계가 혼잡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안 되겠어. 내가 데려갈까?"
"그러자."
팡 씬이가 세르게이의 시체를 챙겼다.
"그보다도 단장님은? 어디 가신 거야?"
"그러네. 설마 단장님도?"
23층에 일대의 적막이 흘렀다.
"현일아! 단장님은?"
어느 덧 정신을 차렸다. 이제 일어설 수 있었다.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단장님은 어딨냐고!"
"저기..."
23층의 깨진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어디!"
"떨어지셨어. 청산을 맞고."
단 두 마디였으나 일대를 충격에 빠뜨리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오 씨발."
"안돼..."
팡 씬이가 그 말에 바로 창 밑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따라온 것이 틀림없는 수많은 경찰차들과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구급차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에 슈트가 반쯤 벗겨진 남자가 이송되고 있었다. 단장님이 틀림없었다.
"뭐야 이거... 이제 우리 어떡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팡 씬이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어깨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멱살을 잡으려다가 슈트라 안 잡혀서 바꾼 듯 했다.
"정확히는 몰라..."
"아니 뭔데!"
팡 씬이가 내 어깨를 자꾸 흔들었다. 슬슬 어지러웠다.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곧 경찰이 올 거야."
"이대로 가자고?"
"병원에서 어떻게 해주겠지!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자고!"
"히카리, 하체 들어."
"어."
팡 씬이가 상체를, 히카리가 하체를 들었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 했다. 경찰에게 잡히면 모두가 죽는 것이었다.
"일단 여기 의술을 믿어보자."
"알았어. 일단 옥상으로 가야겠지."
그래서 우리들은 일단 튀기로 했다. 크리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내 손을 잡고 나를 이끌었다.

23층에서 40층 옥상까지 오래 걸렸다. 그러나 슈트 덕분인지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39층과 40층 사이 비상구는 부서져있었다. 그 때 그곳에서 천 슈어 단장님과 싸운 것이 생각나 잠시 멈칫했다. 그래서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게 은근히 힘에 부쳤다.

"어디로 갈까?"
"일단 봉은사역 쪽으로는 안드로이드가 도망갔어. 그러니 다른 쪽으로 가자."
"삼성중앙역으로 가서 지하로 도망가는 거 어때?"
"크리스, 버틸 수 있어요?"
"800m 정도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오케이. 일단 삼성중앙역으로."
슈트를 켜서 최대한 빠르게 삼성중앙역으로 비행했다. 슈트가 조금 불안불안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 후 삼성중앙역으로 가서 지하철로 들어가 지하철 선로를 따라 선정릉역으로 간 후 분당선으로 수서역까지 도망쳤다. 그 후 슈트를 벗어 정리하고 일반인 행세를 하며 흩어졌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