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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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만 지금 조수영 이라는 분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혹시 주민등록번 다시 한번만 확인할 수 있으실까요?


- 이 번호 맞아요.. 전 항상 제 딸 수영이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다 정확하게 외우고 다녀요. 


- 그 조수영이라는 분 신분증 혹시 가지고 계신가요? 


- 아니요.. 딸애랑 같이 사라졌어요. 그 차 빼고 딸애의 흔적은 그냥 통째로 사라져 버렸어요. 


- 거참 이상하네.. 


- 뭐가요?


- 그 사고 때 102대의 차 그 어느데도 처음부터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당신을 포함해서 몇몇 사람들이 처음부터 없던 사람을 있었다고 하고, 찾아달라고 하는데..


- 이게 말이 됩니까? 저 제 딸이랑 찍은 사진도 많아요. 한번 보실래요? 


나는 저번 달, 수영이와 선유도공원에서 찍었던 사진을 그에게 보여줬다. 

꽃 뒤에서 수영이는 수줍은듯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사진이다. 


괜히 눈물이 흘렀다. 


- 아.. 울지 마세요.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댁이 말하시는 '조수영' 이 맞는 거라면 증거는 있는 셈이니까.


- 혹시 사고 당시 평택 JC 부근 CCTV나 과속단속카메라.. 뭐 이런 거 하나라도 있겠죠? 볼 수는 없는 건가요?


- 그게.. 보여드릴 수 있긴 한데.. 


- 그럼 한번 보여주세요! 왜 여태껏 보여주질 않았나요..


- 아 예.. 


그는 핑크색 노트북 한 대를 들고 나왔다.


- 어디 보자.. 파일명이 뭐더라.. 


한참 동안 뒤지다가 나온 회색 썸네일의 한 영상. 


- 여깄네. 


그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재생]


차들이 달리고 있는 장면이다. 

유조차도 몇 대 지나가고 있었고, 자전거를 실어나른 승합차 한 대도 지나갔다. 

그 순간.. 


치지지직.. 치지지직.. 


어렸을 때 TV에서 본 듯한, 연결 끊김을 뜻하는 회색 노이즈 화면이 뜨며, 갑자기 영상이 끊겼다. 


- 이게 다인가요? 


- 예.. 지금으로써는.. 물론 주변 CCTV 수십 대 전부 뒤져봐야 하겠지만 대부분 이런 식으로 끊기는 영상들 뿐이예요. 


- 예? 주변 CCTV도 다 동시에 끊겼단 말입니까? 


- 맞아요. 영점 일초의 오차도 없이, 모두 17:20:18:553초에 정확하게 끊깁니다. 무슨 전파 방해때문이라도 될련지.. 


- 그 시간이 사고가 난 시각이죠?


- 정확해요. 이렇게 우연한 시점에 끊긴 걸로 봐선, 정황상 테러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 말이 됩니까? 뭐 테러범이 저승사자라도 되나, 갑자기 사람이 순식간에 없어지다니. 그것도 내 딸뿐만이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 황당한 거죠, 저희 쪽에서도. 실종된 사람들은 주민등록번과 전화번호를 알아도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뜨니.


순간 아찔하였다.

어쩌면 수영이를 영영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 저기.. 커피 한 잔이라도 드실래요?


- 아 예, 감사합니다..


이 상황에 커피가 목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예의상 거절할 수 없었다.


취조실 옆 소파에 리모컨이 놓여져 있었다. 


- TV 틀어도 됩니다. 편하게 하세요. 


나는 뉴스를 보기 위해 전원 버튼을 눌렀고, 때마침 채널이 뉴스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오후 일어난 운전자 없는 미스터리의 102중 추돌사건.."


- 마침 뉴스에 나오는군요. 


"...현장에 나가있는 취재진 연결합니다.

이재진 기자?"


"..네, 저는 지금 사고가 일어났던 현장인 평택 JC에 나와있습니다. 무너진 가드레일이 그 때 당시 사고의 크기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사고 당시는 엄청난 폭발음이 주변에 울려퍼졌다고 하는데요, 주변 농가에 사는 박 모 씨와 인터뷰 나누어보았습니다."


"아니.. 내가 막 추수를 하고 있는디 갑자기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겨.. 보니까 저어기 고속도로 쪽에서 초록색 섬광이 비추는 겨.. 내 무슨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제.. 그때 추수 도와주고 있던 식구랑 화들짝 놀래갖고 집으로 들어가 부랐제.."


"한편, 존재하지 않는 운전자의 지인,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부인이랑 재원이 좀 찾아주세요..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인데.. 자꾸만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요.. 분명히 여기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요.." 


"분명히 사고 당시에는 운전자가 없었고, 또한 추후에도 없는 걸로 확인이 되었지만,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탑승자는 존재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존재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확인이 됩니다. 도대체 사고 원인은 무엇이고, 또한 탑승자는 어디로 갔는지, 아니면 정말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TV를 껐다. 초록색 섬광.. 재원이.. 탑승자.. 수백 개의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 저기, 죄송합니다만 오늘 근무시간 끝났어요. 갑시다. 


- 예.. 




더 이상 소파에 눕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침대에 누울 수도 없다.

나는 현관문 앞 신발장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렇게 서 있으면 뭔가 나타나기라도 할까, 수영이가 오기라도 할까?


하지만 나는 신발장 옆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까톡!"


이런 때에 눈치없이 맑고 경쾌한 알림소리가 고요한 집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몇 초 정도 생각하다 폰을 집어들었다.



[임석찬: 오늘은 롤 할거?]


뭔 롤이냐.. 롤은.


[나: 좀 도와줘]


이 순간 내가 의지할 사람은 석찬이밖에 없었는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임석찬: 무슨 일이여? 탑신병자 새끼가]


[나: 내 딸을 잃어버렸어]


[임석찬: 그게 무슨 소리야? 딸을 잃어버려?]


[나: 내 딸 수영이 알지]


[임석찬: 알지. 왜?]


[나: 어제 평택 나갔다가 그 사고에 휘말렸나 봐]


[임석찬: 무슨 사고? 그 운전자 없는 102중?]


[나: 맞아]


[임석찬: 안그래도]


[나: ?]


[임석찬: 난 그 사고에 수많은 의문점을 품고 있었어]


[임석찬: 차 102대가 연쇄적으로 추돌했는데, 운전자가 없다니 이상하잖아?]


[나: 당연하지. 내 딸 수영이도 없는 사람 취급당하고 있고.]


[임석찬: 이건 내 추측에 의한 가설인데]


[임석찬: 뉴스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나와서 그 사고 지점에서 "초록색 섬광"이 보였다 하잖아]


[나: 그렇지]


[임석찬: 그 지점에서 시공간에 작은 틈이 생겼어]


[나: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임석찬: 일단 들어봐]


[임석찬: 내 가설이 맞다면 주변 CCTV가 그 순간 일시적으로 오류를 냈을 거야]


[나: 어떻게 그걸 알았어]


[임석찬: 내 가설이 맞다는 증거]


[나: 일단 계속해봐]


[임석찬: 그 지점에서 시공간에 빛이 1cm를 지나갈 때의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만큼 시공간에 아주 작은 틈이 생겼는데, 그 사이로 그 수백 명이 빨려들어간 거야]


[나: 뭐?]


[임석찬: 그러니까, 수영이와 다른 수백명은 뒤집힌 우주, 그래 그러니까 평행우주로 들어갔다는 거야. 너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 봤어?]


[나: 아니.]


[임석찬: 그럼 자세한 얘기는 내일 만나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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