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35분

나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놓는다. 내 사전에 밥을 생략할 수는 있어도 시리얼은 먹지 않는다. 라면 정도는 괜찮다. 내가 예전에 아침에 시리얼만 주구장창 먹은 적이 있었느데 그 이후로 시리얼은 더이상 못 먹겠더라. 냄비에서 남아있는 동태국을 떠다놓았다. 식탁에 반찬 몇개를 놓고 밥그릇에 밥까지 퍼서 올리니 꽤 나쁘지 않다.

7시 45분

밥을 전부 다 먹고 그릇을 전부 치웠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다. 머리를 감고나서 수건으로 닦는다. 머리가 짧기 때문에 헤어드라이어는 필요없다. 나는 급하게 옷을 입는다. 다시 화장실에 가서 다 마른 머리에 왁스를 바른다.

7시 55분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서 밖으로 나선다. 가방에 책도 하나 집어넣고 간다. '인문학의 종말' 이라는 책이다. 흠... 내가 인문학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게 종말을 하던 다시 부활을 하던 뭔가 강 너머 누군가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무튼 지금쯤 나가면 늦지는 않겠지.

8시 12분

내가 타고있는 버스는 지금 한강을 건너고 있다.

8시 22분

실내 세트장에 왔다. 사람들이 촬영준비로 분주하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출연하기 위해서이다. 크게 돈을 많이 받거나 특별한 명성을 얻는건 아니다. 나는 엑스트라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 알바가 시간은 좀 많이 잡아먹어도 나름대로 인생의 별사탕이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거든. 여기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들을 보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걸 느끼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재수없으면 안보이는데 있어서 안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돈을 꼬박꼬박 주니까 걱정없다.

직원의 안내에 따르면 오늘은 실내촬영만 있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엑스트라들은 지하철처럼 꾸며놓은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흠. 지하철 세트장은 처음이다. 설마 이거 흔들릴까? 아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흔들리는 것은 카메라겠지. 그리고 나는 통솔하는 직원에게 왜 진짜 지하철을 두고 왜 돈을 들여서 세트장을 만들었냐고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괜한 질문이 될 것 같으니까 나는 묻지 않기로 했다. 잘했다.

직원의 사전설명이 있고나서 촬영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