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전시실에 들어가자, 내가 아는 익숙한 얼굴들이 속속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진혜 전 대통령, 10년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던 이진혁 전 대통령, 그리고 지금 대통령인 이진애 대통령이 있었다.

이진애는 아직 멀쩡히 살아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전시한 것은 없었다.

이진혜는 1880년에 대조선제국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내란제로 짓지도 않은 여적죄로 연좌제를 적용받아 체포되었으며,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가 교수형 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아버지 이진서가 사형당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들고 일어난 만주 시민군이 고려연방에서 승리하자,

만주의 대통령을 잠깐 하게 되지만, 친척에 의해 뒤통수를 맞고 감옥에 수감된다.

 그 후 어찌저찌해서 석방된 그녀는 고려연방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여운형 일파의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 직을 내놓고 총리가 되었지만, 외교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허수아비 총리나 마찬가지였던 자리였다.

설상가상으로 여운형이 자신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제보를 들은 이진혜로서는,

더 이상 고려에 남아 있을 여유는 없었을 테니 타국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후 고려연방의 무정부화 사태를 수습하고 신 고려연방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임기를 무사히 끝마쳤으나, 이후 휴식을 취하던 중 누군가에 의해 선물받은 와인을 들이켰고,

잠이 든 그녀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진혁은 비교적 최근의 사람이라 나도 잘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으며,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그땐 그 독일이 훗날 자기의 목숨줄을 끊어버릴 줄은 몰랐겠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부인과 결혼하여, 지금의 대통령 이진애를 낳았다.

이후 보수당의 집권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고려연방이 멸망하자, 그는 슬라브로 가서 고려광역시 시장이 된다.

여러 강국들이 점령한 고려 땅을 보며 그는 때를 노렸다가, 대한민국과 고구려연방이 독립하자,

고구려연방의 주석으로 취임하여 대한민국과 고구려연방의 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이진혁은 통일된 대한연방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높은 지지로 연임도 성공했다.

이후 정계에 남아 계속 일을 하다 5대 대통령으로 재선출되어 청와대에 복귀한다. 

나 역시 그 때의 뉴스들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하지만,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4대 대통령 장면이 자살했던 때가,

어릴 때는 순진해서 그가 누군가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알 것이다. 장면이 자살했던 것은 당의 반등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걸,

야당은 이를 빌미로 평화당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고, 이진혁의 지지율은 대폭락했다.

결국 그는 사임하게 된다.

직후 박정희의 장면 사망의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의 쿠데타가 발생한다.

군인들이 서울을 점령하는 장면을 직접 봤었다.

그때 너무 순진했던 나는 이미 사망 원인은 밝혀졌는데 왜 굳이 진실을 밝힌다는 걸까라는 생각이었다.

쿠데타 자체를 이해하질 못한 것이었다.

이진혁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임시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오르자마자 독일은 대한연방으로 들어와 청와대를 점거한 뒤 이진혁을 독일로 연행했다.

결국 그는 독일에서 내란죄로 가석방 없는 28년형을 선고받은 뒤, 베를린 형무소에서 자살한다.

전시관에는 이진혜가 썼던 연설문, 이진혁 대선 포스터, 당시의 신문 기사들이 많이 보였다.

비교적 최근이기에 사진들 역시 많았다.

그들의 역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대로 옳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긍지높은 가문이지만, 다들 끝은 좋지 못했다.

이진석도, 이진철도, 이진서도, 이진혜도, 그리고 이진혁까지.

전시관을 나와 기념품 상점에서 이진석의 후회와 후회를 한 권 챙긴 채 기념관을 나왔다.

나가는 길에는 이진혁이 말년에 즐겨 듣던 비틀즈의 노래 'Revolution'이 울려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