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조심스레 전당포 안에 발을 들였다. 회색의 먹구름 사이로 삐져나온 몇 줄기의 태양빛과 전등 몇 개에만 의지한 채 간신히 어둠을 피하고 있던 전당포 안은 꽤나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사내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더 걸어들어가 보니 전당포 주인으로 보이는 놈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이상하게 기껏 손님이 찾아왔건만 명색이 주인이란 놈은 그 어떠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남자가 손에 들린 검은 상자를 놈 앞에 보여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놈을 응시하는 사내의 눈동자와 놈에게 물품을 들이미는 사내의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거… 저희 부모님 유품입니다. 수중에 남은 거라고는 이것밖에 없으니 아무쪼록 잘…”

 채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놈은 그 상자를 거칠게 집어들더니 벌컥 열어 제끼고선 그 속에서 환한 빛을 머금고 있는 내용물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놈의 눈빛이 달라지더니 이내 놈 또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 딸라.”
 “예?”
 “사 딸라.”
 “사 달러요?”
 “사 딸라. 뭐 문제 있어?”
 “사십 달러도 아니고, 사 달러라고요?”
 “사 딸라 맞어.”
 “어이가 없군요.”
 “사 딸라 아님 안 사. 그렇게 알어.”

 별안간 적막이 흘렀다. 무턱대고 터무니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놈의 당돌한 태도에 사내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대로 마지막이나 다름없을 협상을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 허무하게 끝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뭘 더 바라는 거야. 팔기 싫음 딴 데 알아봐.”
 “아무리 그래도…”
 “왜, 주변에 전당포 많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게 겨우 사 달러라고요?”
 “사 딸라도 많이 쳐주는 거야.”
 “많이 쳐주는 거라뇨?”
 “불만 있으면 딴 데 가래도.”

 사내는 슬슬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놈의 말대로 다른 곳으로 갔어도 되었겠지만, 당초 이곳에 들어올 때의 안절부절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내는 마치 그를 농락하는 듯한 놈에게 꼭 제 값을 받아내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 장난합니까?”
 “장난이라니. 사 딸라 어치 것을 사 딸라라고 하는 것이네만.”
 “저게 어딜 봐서 사 딸라 어치입니까?”
 “딱 보면 알지. 내가 전당포 일을 시작한 지 수십 년이나 됐는데.”
 “여기가 망하지 않은 것도 참 신기하군요.”
 “어차피 자네는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걸세.”
 “그럼, 왜 이게 사 딸라인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시죠.”
 “…”

 사내의 일갈에 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굳게 닫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욕심에 눈이 멀어서 사 딸라 따위의 어이없는 가격을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다 결국 금방 궁지에 몰려버린 것처럼 보였다.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니깐.”
 “그러겠죠. 헛소리만 주구장창 늘어놓으실 테니까요. 망할 사기꾼 같으니라고.”
 “그래도 뭐 어쩌겠나. 사 딸라는 사 딸라야.”
 “말이 안 통하는군요.”
 “사 딸라밖에 안 되는 걸 더 비싸게 살 순 없지 않나.”
 “그나저나 왜 하필 사천 원도 아니고 사 달럽니까?”
 “살면서 해외 여행이라고는 한번도 못 가본거 같으니 이렇게 미국 돈이라도 한번 만져보게는 해 줘야지.”

 사내는 놈을 골탕먹일 작정으로 아주 기세등등하게 나갔지만 되려 놈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우스운 꼴이 되버린 것에 분노뿐만 아니라 창피함까지 들고 말았다. 사내는 잠깐이나마 해외는커녕 근교의 유명 관광지조차 제대로 가지 못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한평생 한으로 남아 있던 씁쓸한 기억을 놈이 파고 들어갈 줄은 사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제가 그 정도로 가난뱅이처럼 보이십니까?”
 “지 부모 유품까지 팔 정도면 어지간히 돈이 궁했나 보구만. 그래도 사 딸라는 사 딸라야.”
 “남의 부모 거라고 가격을 이렇게 막 매기시나요.”
 “거, 막 매기는게 아니래도.”
 “이유도 말하지 못하면서 막 매기는게 아니라뇨.”
 “어차피 말해줘도 이해 못 할 거라니깐. 그냥 사 딸라 받고 가랄 때 받고 가.”
 “저는 사 달러에 못 팝니다.”
 “그럼 다른 데 알아보던가.”
 “그 말씀만 도대체 몇 번이나 하시는 겁니까?”
 “아무튼 사 딸라 아님 안 사.”
 
 사내는 더 이상 그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놈하고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진전을 보이지 않고 똑같은 말만 계속 해대는 협상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놈의 흥정에 슬슬 지쳐버리고 만 사내가 막 전당포를 떠나려던 참이었다. 아까 전의 다짐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가시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고작 사 달러같아 보이진 않군요. 차라리 모조품이면 모르겠지만.”
 “그렇긴 하지. 수십년 동안 전당포를 한 나로써도 그런 귀중한 물건을 본 적은 많지는 않다네.”
 “그러면 도대체 왜 사 달러 어치라고 하신 겁니까?”
 “어차피 내가 자네한테 큰 돈을 쥐어준다고 해도 결국 자네가 몽땅 날려먹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사 딸라만 줘 봐야 도박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지. 도박에 빠져 가진 돈을 모조리 잃고 빈털터리가 되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준 사 딸라라도 있는 것이 낫지 않겠나?”

 역으로 놈의 일갈에 사내는 마치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듣기에도 놈의 반론은 정말 지당하기 짝이 없었다. 애당초 사내가 이렇게 구석진 전당포에 굳이 찾아온 이유 또한 부모를 모두 잃어버린 뒤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도박에 빠져서 흥청망청 살다가 부모의 유산마저 모조리 탕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남은 것이라고 가져온 게 바로 이 검은 상자였던 것이었다. 사내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안 봐도 뻔하지. 여기 오는 놈들은 다 똑같아. 열심히 살고 있는 놈들은 이런 데 오지도 않는다고. 돌아가신 부모님한테 부끄럽지도 않은가?”
 “…”
 “맨날 이번에는 기운이 좋다, 이번에는 반드시 딸 수 있을거다, 이번에 돈 따고 나면 완전히 손을 뗄 것이다 하면서 돈도 더 못 빌리니까 있는 거 이것저것 다 팔러 여기로 찾아오는 놈들이 한가득이야.”
 “…”
 “물론 정말로 사 딸라를 줄 생각은 아니고, 제 값은 치뤄 줘야겠지. 자네가 준 것 정도면 백만 원은 족히 넘을 테니까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게나. 사 딸라도 그냥 줌세.”
 “저… 정말요?”
 “너같이 쓸데없는 짓거리만 하다가 돈 다 날려먹고 이것저것 갖다파는 놈들 더 이상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니 착각하지 말게. 지금 자네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마지막 기억을 팔은거야.”
“…네.”

 사내는 놈의 말이 끝나자마자 처음에 가져왔던 검은 상자와 놈이 내밀은 사 달러와 오 만원 지폐 묶음을 잽싸게 낚아채고는 마치 범죄라도 저지른 듯 황급히 전당포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놈의 일갈은 사내의 정곡을 완벽하게 찌르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좀전의 당당해 보이던 사내의 모습은 더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단지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서야 깨닫고는 차마 하늘을 떳떳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도망하는 자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내가 떠나고 다시 적막에 휩싸인 전당포 안에서 놈은 사내가 나가고 난 뒤에도 아직도 여운이 남아 떨리고 있는 문을 유유히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내가 왜 사 딸라 어치라고 했냐고? 젊을 적의 내가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게 하려던 것도 맞지만, 그야 한 오륙년 정도 지나고 나면 정말로 백만 원이 지금의 사 딸라만도 못 하게 되니까. 더 심해져서 몇 달 지나고 나면 십 센트조차 못하게 될걸. 나머지는 다 구라지. 일부러 주인 없는 틈을 타 주인 행세나 한번 해 봤는데 이렇게 손쉽게 넘어갈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