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많다 못해 흔해진 것이 사람과 닮은 로봇 이른바 안드로이드들이었다.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안드로이드 mi'67 이후로 안드로이드의 발전은 빨라졌고

결국 그것들은 우리의 일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을 우려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킬 스위치라는 물건을 만들었고 그걸 이용하여 안드로이드들을 고장 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안드로이드일수록 피해는 강력했고 최신 것이라고 해도 피해가 없던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불만을 느꼈기에 그걸 만든 이들을 체포되었고 킬 스위치를 압수당했다.


몇 년 뒤 세상은 달라졌다.


한 바이러스가 안드로이드들을 감염시켰다. 그 바이러스에 걸린 안드로이드들은

폭력성을 띄며 무차별적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걸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정용 안드로이드에서 일어나 문제가 크지 않았지만, 군용 안드로이드들도 감염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그렇게 공격성을 띠기 시작한 안드로이드들이 많아지자, 우리는 그들을 막아서기 시작했고

킬 스위치의 역할이 그들을 제압하는데 강할 것이라는 판단에


그것을 압수했던 창고에 찾아갔지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압수품 목록에 없었고 다른 창고에도 가봤지만, 마찬가지로 없었다.


그걸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찾는 것이 나의 임무다.

.

.

.


"마스터. 이곳에 정보 수신기가 파묻혀 있습니다.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딱딱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내겐 친절한 목소리이다. 사람보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다.


나는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역시나 그것이 호기심을 가지고 내게 물어본 것이었다.


금발의 포니테일, 주웠을 때부터 저 머리였지만 안드로이드라서 그런지 변형이 안 되는 듯했다.


"안돼. 그거 막 손대지 마. 잘못하다간 m0-8k처럼 바보가 될 거다."


"m0-8k면 저잖아요."


"그래 너 말하는 거야."


"매번 그러면 저는 서운해요."


"우리의 목적을 생각해. 쓸데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그놈의 '킬 스위치'는 왜 찾는데요?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몰라도 내가 너보다는 잘 안다."


내 앞에 있는 것은 m0-8k 일명 대화로보, 우연히 폐쇄된 마을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것으로 

지능 성능은 구리지만 다른 게 최신형보단 좋아서 자주 데리고 다닌다.


근데 지능이 구세대 버전이라 그런지 호기심만 많고 경계심은 적어서 곤란할 때가 많다.


"아! 깜짝이야!"


m0-8k의 놀라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그것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마스터, 주워 왔어요! 신기하게도 벽에 있던 덩굴에 얽혀있더라고요!"


하지만 m0-8k가 개처럼 웃으며 들고 온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업고 온 건 은색 머리카락의 안드로이드였다. 

외팔의 안드로이드였던 걸로 보아 습격당해서 죽어버린 기종임이 틀림없다.


정보를 알 것만 빼고 분해하기로 하고 나는 그 안드로이드의 전원 부분을 눌렀다.


최근에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에겐 공통으로 한가지 규칙이 있는데 전원을 켜야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전원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면 감염된 거로 간주하여 주저 없이 부시면 그만이다.


그런데...


우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안드로이드는 눈을 뜨자마자 내 옆에 있던 m0-8k를 덮쳤다.


나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외팔 안드로이드를 걷어찼고 외팔을 가진 안드로이드는 힘없이 쓰러졌다.

그것이 쓰러지는 걸 본 나는 m0-8k의 상태를 확인했다.


"m0-8k 괜찮아?"


"마,마스터... 모,몸이 이,이상해요,요..."


젠장... 감염이다. 쓰러진 개체가 숙주일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된 이상 팔 부분을 절개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절단용 칼을 들어 흠집이 난 곳에 칼을 대며 m0-8k를 보고 말했다.


"이 악물어. 아니지... 놀라지마. 잠시뿐이니까."


"아,아아..."


"안하는게 좋을걸."


처음 듣는 목소리, 그건 쓰러진 외팔의 안드로이드에서 난 소리였다.


내가 그것을 쳐다보니 그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우리를 내려다봤다.


"나는... 그것에게 '킬 스위치'를 넘겼다. 나중에 이 위치로 가서 그들에게 그걸 넘겨주길 바란다. 

나는 망가졌고 감염된 녀석들이 나를 쫓는다. 나머진... 너에게 맡기지."


외팔의 안드로이드는 m0-8k에게 어떠한 정보를 넘기는 듯하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져 쓰러졌고

군용 안드로이드에게만 있는 감염 방지용으로 터지는 폭발 시스템의 소리가 그것에게서 들려왔다.


[잠시 후 폭발이 시작됩니다. 인간분들과 종속된 안드로이드들의 피해가 없길 바라며 5초 뒤에 폭발합니다. 5...]젠장 빠르기도 하지...


나는 다급히 m0-8k를 업고 뛰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 폭발하는 걸 지켜본 나는 두려웠다.

만일 내 옆에 있는 m0-8k가 달라져 있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


성격이 달라진다면 m0-8k가 아니다. 모습이 달라져도 역시 아니다. 목소리? 마찬가지다.


어쩌면 나는 이미 이 녀석을 잃기 싫은 걸지도 모른다.



익숙해져서일까 아니면 급격히 변화되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걸까.


그런 생각도 잠시 주변에서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역시 소리가 나서 그런 게 분명하다.


다가오는 것들을 살펴보니,

감염체들... 정확히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들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m0-8k를 구하려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제발 군용 안드로이드만 아니길 바라며 나는 다가오는 그것들보다 먼저 앞서나가

머리를 찍고 사지를 부수며 m0-8k를 지켜나갔다.


원래 나는 기계를 싫어했다. m0-8k도 역시 그냥 멀쩡한 안드로이드는 처음이었기에

틀어본 게 다였고 각인 효과로 나를 주인으로 여기지만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잘 따랐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고 하라는 것만 잘하는 애였다.

그것을 아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나는 저 녀석을 사람으로 생각하나 보다.


내가 몇몇 감염된 개체를 부수고 m0-8k의 상태를 확인하다

내 뒤로 다가온 안드로이드를 눈치채지 못하고 등을 내어주었다.


"크헉... 젠장..."


나는 뒤돌아 권총으로 몇 발을 쐈지만,

녀석은 군용이었는지 총알이 튕겨 나갔다.


"후... 윽... m0-8k... 어서 일어나..."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이 들어오고 나간다.

나는 m0-8k에 등을 기대며 다시 절단용 칼을 집고 상대하려고 했다.


감염된 군용 안드로이드는 하나가 아니다.

하나가 있으면 여러 개가 더 있다.

그걸 알기에 나는 지금 주저하고 있다.


내가 저걸 잡는다고 해도 여러 개가 동시에 나타난다면 못 이긴다.


심지어 다친 상태의 나는 폭발도 제대로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끝까지 저항해야지.

내가 임무를 다 마치진 못해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끝까지 가보자.


"으윽... 끄아아아!"


나는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 칼을 군용 안드로이드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군용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피했다.

조금은 맞아도 좋았을 텐데...


난 그 상태로 비틀거리며 엎어졌고 앞에 있는 군용 안드로이드를 노려보지만,

그것만 할 뿐 할 수 있는 게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한 가지만 남았다.


내 임무를 실패한 것 그걸 남겨야 한다.


유일하게 받은 무전기로 내가 한 일을 전부 말하고 자폭하는 것, 지금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죽기 싫었지만...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일은 당연하고,

킬 스위치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m0-8k의 몸 안에 들어간 게


킬 스위치가 맞다면 더욱 저 녀석이 감염되어선 안 되는 게 당연한 사실이니까.


남은 건 이 선택뿐이다.


"코드명: F7-64, 임무에 실패했다. 현재 위치는..."


말하는 동안 저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피부 부분이 다 벗겨져 골격용 철근이 보이는 군용 안드로이드의 발이 내 눈앞에 보였다.


아, 맞다. 내 앞에 감염된 개체가 있었지.


나는 내 마지막 임무도 실행되지 못한 채로 죽는다고 체념하며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내 의식이 이대로 멈추고 죽는 걸 받아드리려고 했지만, 그때 군용 안드로이드는 습격받은 듯이

굉음을 내기 시작했고 이어서 주변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리며 망가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내게 다가와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m0-8k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내 뒤에 있었는데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마스터! 정신 차리세요!"


내가 고개를 들어보니 m0-8k가 내게 한쪽 손은 숨기고 남은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한쪽 팔을 왜 숨기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물어볼 때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힘없다... 가방에서 초급 치료 상자 하나만 꺼내줘..."


"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m0-8k가 치료 약으로 내 등에 난 상처를

문지르는 듯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으아! 엄청 차갑네..."


"이거 한 번도 안 바르셨어요?"


"발라봤겠냐? 툭하면 뒤지는 곳인데 그거 쓰고 반신불수로 연명할 바엔 그냥 죽는 게 낫지."


"그걸 알면서도 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리신 건가요?"


"... 거기서 오른쪽 더 가서 문질러."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궁금한 걸 이젠 물어볼 수 있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나는 붕대를 감고 m0-8k의 부축을 받으며 중간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앞으로 10km... 조금만 더 힘내라."


"으윽... 마스터... 너무 무거워요."


"무겁긴! 무거운 건 너지. 요새 밥도 안 먹어서 거지같은데... 베이스캠프로 가면 밥부터 먹어야지."


낑낑거리며 나를 부축하는 m0-8k를 보고 팔을 숨긴 이유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m0-8k에게 물었다.


"아까는 군용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파괴한 거야? 아까 숨긴 팔은 뭐였던 거고?"


"아까요? 정신 차리니까 마스터가 쓰러져 있었고 제 손은 이상하게 변해있었어요. 게다가 머릿속에서 울리던데요.

손을 ‘X: 789, Y: 654’에 손을 집어넣어 뽑으라고 울려서 그 좌표에 손을 넣고 뽑으니까

제 손에 중심 코어가 있었어요."


"중심코어라... 그래 군용 안드로이드는 그쪽을 기준으로 중심 코어를 둔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보네."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부서진 건물들, 그 사이로 망가진 안드로이드들의 물건들, 차도 사람도 나무도 존재하지 않는 듯이 그저 무너져 내린 건물들의 잔해가 내게 이곳에 남아 같이 죽자는 느낌을 주지만, 나는 옆에 m0-8k가 있으니, 상관이 없었다.


"킬 스위치... 네 몸에 있는 게 진짜가 맞다면... 내 임무는 끝이 나는 거겠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앞으로도 저와 함께하실 거죠? 마스터."


나는 m0-8k의 질문에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치... 당연하지. 나는 물건을 버리지 않아."


남은 거리는 8.5km...


.

.

.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없다니."


중간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들은 말은 m0-8k에게 '킬 스위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에잉... 쯧... 이거 봐봐. 기밀문서 처리된 거긴 한데 이거만 보면 나한테 물어볼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내 친구인 h5-678은 귀를 후비며 귀찮다는 듯이 나에게 자료를 보여주었고 그곳엔


[킬 스위치 일치율 60.8%, 유사 킬 스위치로 판정]


라고 쓰여 있는 평가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럼... 얘 몸에 있는 건 킬 스위치가 아니라는 거야?"


나는 실망한 듯한 m0-8k의 등을 토닥이며 묻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뭐... 킬 스위치이긴 한데 우리가 아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점이지."


"킬 스위치가 프로그램이라는 걸 왜 미리 말 안 해줬어. 나 죽을뻔했잖아."


"우리도 방금 안 사실이고, 본부에서는 '그게 프로그램이다.'라는 말도 안 했어. 

게다가 미리 알았다고 해도 너한테 말하면 뭐 해? 네가 g0z씨처럼 해킹할 수 있는 거도 아닌데."


"하긴... 나는 그쪽 담당이 아니다 보니 그렇긴 해."


친구는 일어나 내 등에 난 상처를 보면서 말했다.


"애초에 무전기 외엔 통신을 금지하는데 어디에 킬 스위치 프로그램이 있을 줄 알고 그러겠어.

내가 그래서 말했잖아 이왕이면 샅샅이 살펴보라고. 멍청하게 다치고 오고 말이야."


"마스터를 멍청하다고 하지 마십쇼. 한 번 더 하면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m0-8k는 짜증을 내었지만, 친구는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스패너로 m0-8k의 머리를 치고 옆에 있던 치료 상자로 내 등을 치료해 줬다.


"성능 구닥다리 주제에 나를 협박할 생각은 하지 마. 기절해서 못 듣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네가 가진 이 m0...머시기한테 있는 건 반쪽짜리라고 봐도 돼."



친구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기절한 m0-8k의 몸을 잡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다시 킬 스위치를 찾으러..."


"아니, 이번엔 이쪽으로 가. m0 머시기 머리에서 나온 건데 유사 킬 스위치 배포자가 여기에 있나 봐."


친구는 나에게 지도를 주면서 이곳에서 북서쪽 방향에 있는 오래된 연구소를 가리켰다.


"그럼 그 사람을 찾으면 킬 스위치의 내용도 어느 정도 알겠네."


"그래. 내가 본부에 연락 해놓을 테니까 네 옆에 있는 녀석이 일어나면 같이 가. 물품들 다 준비 해놓고 쉬고 있어. "


그렇게 나와 m0-8k는 다시 새로운 임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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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족한 게 나와서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