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은 어느 다른 아파트와 다를 바 없이 어두웠고 조명이 켜져 있긴 하였으나 벽면은 검은색이었고 난 이런 부자동네도 굳이 주차장을 시커멓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들었다. 집 안으로 들어갔을때 나는 음악소리를 들었다. 안쪽 방에서부터 들려오던 브람스가 작곡한 클래식 곡은 LP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이 작동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현택의 말대로 하늘은 금방 개었고 책들이 모여있는 방의 유리 벽들은 물방울이 맺힌 채로 있었다. 유리에 습기가 차서 뿌옅게 된 곳도 있었다. 아마도 현대의 유리의 가공기술은 점점 더 발전되고 정밀해져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곳의 유리는 깨지면 깨지겠지 흘러내리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여기에 있는 책들은 전부 과거에 머물러있어."

 "너는 여기있는 책들을 전부 읽어봤어?"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읽어보긴 했지."


 그래? 나는 곧바로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나는 마음이 내키는대로 책을 손가락으로 짚어서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현택은 물어보는 대로 잘 대답했다. 나는 책들의 문장 중 하나를 골라서 그 문장의 일부분만 읽어주고는 그 나머지 부분을 만들어내도록 해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가 정말로 이 책장의 책을 읽었는지를 검사해보았다. 그걸 20권 정도 해보았을 때 나는 그가 이 방에 있는 수백권의 책들을 '대부분' 읽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니까 거의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평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이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야.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남들에게 어필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너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해"


  특이하다고 한다는 것. 그는 아직도 나를 의심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어딘가 열어보고 싶게 생긴, 마치 일부러 숨기려는 듯한 형태로 되어있는 서랍에 시선이 갔다. 나는 곧바로 그 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버렸다.


 '오?'


 거기에는 검이 하나 있었다. 순간 서양의 검을 떠올렸지만 이내 그것이 대한제국 시절의 것임을 추정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방패가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뜬금없는 것이라서 데코레이션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재미있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걸 거짓말쟁이. 부모님의 것인가? 아니면 현택 너?"

 "그렇게 말하지 마. 우리아빠가 너가 그렇게 말했다는 걸 알면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실 걸?"

 "흠. 그렇다면 정말 사연이 있는 물건이겠군. 어디서 산거야?"

 "그런건 아니야."

 "그러면 어디에서 난건데?"

 "말 안해줄거야."

  "그러면 말 안해줄때까지 난 여기에서 안가갈거야."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무리봐도 우리나라 물건은 아닌 것 같은 것이 방에 서랍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것이 특이했다. 서랍 내부는 심지어 조명이 있어서 환하였고 칼과 방패도 이뻤는데 방패는 하얀 베이스에 푸른색으로 무늬가 새겨져있었고 칼은 오래되어 생채기가 조금 있기는 했어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여 있었다.

 

 "이런거 말하는거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너에게 말해서 내가 득될게 없고. 우리집은 이것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야. 의미있는 물건인 것은 맞아."

  "하지만 그 물건에 대해서 내가 좀 안다면 그건 분명히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그는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봐. 만약에, 우리의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이라고 해봐. 그렇다면 저 창과 방패를 너가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맥거핀이 될 뿐이야. 그렇지만 내가 보았을 때 이런 맥거핀은 소설 진행에 별로 도움도 안 될 것 같고 차라리 설명을 해버려서 맥거핀이 아니도록 만드는 편이 좋지 않겠어?"

 "그건 또 어이없는 말일 뿐인데. 뭐 아무럼 그래. 언젠가 시간이 되면 너에게 알려줄 께."

 "그건 의미아 없어. 난 지금 당장 알기를 원해."

 나는 바닥에 들어누으려고 했다. 물기를 잔뜩 가지고 있던 유리벽이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햇빛이 나에게 쬐여졌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말이라는 생각을 굽히기 싫었다.

 "이럴거면 우리 집에서 나,"


 그때 한 여자가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손에 도넛과 바움쿠헨, 그리고 포도주스와 오렌지주스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주었다. 이 사람도 이 집에 살고 있구나.

 

 "전부 다 맛있을거에요. 맛있게 드세요. 배부르면 꼭 다 안드셔도 된답니다."


현택이 그녀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도로시."

  "고맙긴요. 곧 학원에 가셔야죠. 20분이 남았어요. 준비는 미리 해두셨을리가 없겠지만 지금부터 움직이면 되겠죠."


 그가 학원가방을 싸면서 한 일은 숙제를 체크하고, 필요한 교제를 싸는 일, 그리고 나의 추궁에 그는 내가 집 밖으로 나갈 때 너도 밖으로 나가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집에서 아무런 말썽을 피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남아있을 생각이었고 방금 모습을 보였던 도로시라는 사람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다. 가방을 싸면서 그는 갑자기 나에게 검과 방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그는 내가 만약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면 말을 엄청나게 목소리를 깔면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위축시키려는 듯이 말했는데,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나에게 그런식의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포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을 뿐더러 현택의 옛날 조상님이 러시아의 한국인 촌에 살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고, 그 마을이 굉장히 작았으며 도로시의 선조들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위협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로시의 증조할머니(박시녀)는 이웃 서넛의 공격을 받았고 가족 몇명이 죽었으며 그녀는 가까스로 비교적 친했던 현택의 고조부의 집으로 대피했으며 고조부의 집안 사람들은 칼과 병기를 든 이웃들에 대치하였다. 이미 사건은 피를 동반하고 있었고 새로운 피가 더 흐르게 될 판이었을 때 마을의 가장 큰 어르신이 모든 마을 사람들을 불러세웠다. 어르신은 도로시가의 사람들을 해하려한 해당 마을 사람들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식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마을에게 있어 좋은 일은 아니라고 하였다. 한편 박시녀를 생사에서 지켜준 현택의 고조부가는 박시녀에게 있어 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박시녀의 남은 가족들은 현택의 집안을 돌보는 종속된 가족이 될 것임을 명했다. 몇몇이 작은 불만을 표출했으나 마을의 대 어른신이 하는 말이었고 그 일처리는 권위가 있었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마을의 갈등을 해결되었고 사람들은 논밭과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종속의 증표로서 칼과 방패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상. 나는 영어학원으로 간다. 나는 또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나는 잔혹하고 혹사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너가 그것을 알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너는 참 한가롭기도 한 사람이구나. 아 이제 나는 간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너가 자꾸 말을 시켜서 하고 싶은 말도 잘 못했어. 그러니까 다음에 또 보자고."

 

현택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지막까지 산뜻하게 내 눈 앞에서 사라졌고 내마음의 설레임은 더해져만 갔다. 그의 집에 이젠 아무도 없게 되었다. 도로시라는 사람을 빼면 말이다. 나는 도로시를 붙잡고 서점을 가리켰다. 그녀는 세련되어봤자 여전히 고상해보이는 그런 디자인의 하녀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녀는 젊었다. 그녀는 내가 현택의 친구이기 때문에 나 역시 그만큼의 존중을 하려는 것 처럼 보였다. 누나라고 불러도 되나 싶었는데 그럴려다가 말았다. 그녀 역시 무뚝뚝해보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약간은 조금 얼굴이 밝아보인다고 할까. 종속되어 있는 자 특유의 편안함과 걱정없음이 들어났다.


"도로시. 현택이 여기에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로맨틱한 이야기를 한더거나 키스를 했던 적이 있나요?"

"섹스도 했답니다."

"네?"

"섹스도 했다구요."

"제가 봤을 때 꽤 매력적인 사람이긴 한데요. 여자들한테 매력적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좀."

 "농담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꽤 늦으시네요. 주인아드님은 꽤 똑똑하지만 요즈음 사춘기가 온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학생은 뭔가 좀 활달해보여요. 좀 즐거워보인다고 할까?"

  그때 나는 우리집을 떠올렸다. 좁고 약간 어수선하고, 정리같은건 하나도 되어있지 않아. 물론 내가 필요한 것들에 한해서 깔끔하게 정리를 하긴 한다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별했고 아버지가 우리집에 가끔 오시지. 내 아버지는 도통 아버지다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런 사람이 어떻게 결혼까지 했는지는 내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환경에 종속되어 있다는 걸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당장 옳바른 판단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쾌락과 자극을 좇았으며 그것이 내가 이 현택의 집에 들어오게 된 전개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내 부모님 모두를 신뢰하지 않으니까.

 서 있다보니 지쳐서 나는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유리에 맺힌 빗방울이 다 말라가고 있었다. 유리를 통과한 빛이 가지고 있는 아주 약간의 푸른색 속성은 유리가 빨간색과 노란색을 반사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유리의 제조 과정에서 첨가되는 물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도로시에게도 수천권의 책들 중에서 몇 권들을 꺼내서 그녀가 그 책들을 읽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녀는 순순하게 그 제안에 응하였다. 책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핵심 내용을 이루는 키워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전부 다 대답을 해내었다. 몇 번의 검사 끝에 나는 도로시가 이 책장의 책들을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 읽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중요한 일도 아니에요. 만약에 이민중학교에서 학생들 상대로 독서골든벨같은 것을 열어서 제가 거기에 참여한다면 최후의 1인에 들어갈 정도의 일이겠지요. 그게 의미있는 일인가요?"

 "그건 의미가 있죠.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이제 왜 현택이 그렇게 냉소적이고 우중충한지 알겠어요. 물론 저는 그의 그런 성격적인 면과 반대되는 청량하고 산... 아니에요."

 "도련님이 제대로된 친구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얼빠네요?"

 "도로시. 완벽하고 이상적인 인간은 없답니다."

 "맞아요. 저도 가끔 거짓말을 하거든요. 하지만 거의 절대 다수의 상황에서는 진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말을 들으니 더 믿음이 안가네요."

 

 현택은 늘 그렇듯이 장소를 옮겨 또 다른 감옥으로 이동했다.  현택은 마침 자기 눈 앞에 보이는 친구를 툭툭 건드렸다. 그의 이름은 장미였다.


 "학원은 감옥이야. 사회는 어쩌면 온갖 크기의 감옥들로 구성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거야. 이럴거면 차라리 그냥 무기징역을 받아서 평생 그냥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어."

 "나쁜짓을 하려고?"

 "나는 아무런 조건 없이 감옥에 들어가서 무기징역을 살고 싶다는 말이야. 거기에서는 내에 어떤 책임도 주어지지 않고 삼시세끼 맛있는 밥이 나오니까 말이야. 자기관리로 운동 정도만 하면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니까 그건 형벌이 아니야. 사회가 더 끔찍해."

 "알겠어. 너 숙제를 안했다는 말이지. 내가 좀 보여줄까?"

 "너가 나를 이렇게 보고있었다니. 정말 죽을 맛이었지만 나는 숙제를 했어. 숙제를 하면서 내가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점차 더 확고해져갔어. 맞아. 그리고 감옥에서는 책도 마음대로 읽고 싶은대로 읽을 수 있어."

 "감옥에 정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거야?"

 "사실 나는 이미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잘못. 물론 우리는 아직 어려서 그런 잘못은 아주 경미하게 저지르고 있어. 오히려 우리들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지. 나는 그래서 종교를 믿지않아. 종교에서는 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일 뿐더러 그것이 개개인이 가진 악한 면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과 성격, 행동방식으로 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이야.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 경계가 모호하지.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잘못은 세월의 힘으로 상대적으로 덜 일으키지만, 이제 그들은 과거에 사로잡혀서 현재와 맞지 않는 행동과 사고를 보인단 말이지.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커서 결국 어른이 될 거라는 거야. 하지만 내 잘못들의 총합이 무기징역감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고 앞으로도 그런 정도의 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나 자신의 스트레스와 귀찮은 일들을 처리할 때의 부하가 견디기 힘들다는 거야."

 

 그렇게 일찍 학원에 도착했음에도 벌써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와 수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렇게 불합리한 세상이 있을 수 있는가. 현택은 생각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로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확실히 태어날 때 부터 현택의 가문의 하인으로서 일했다고 한다. 20년 전 쯤 이탈리아에서 살던 두 가족은 다시 고향인 한국으로 환향을 했다고 한다. 현택의 아버지는 어떤 기술 회사의 이사라고 했다.


 "저는 이곳의 멋진 서재가 마음에 들어요. 계속 여기에 있고 싶어요."


 나는 이 서재와 현택의 공통점을 알 수 있었다. 산뜻하고 청량했다. 비록 책들은 다 빛에 바래겠지만 낭만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은 감수할만하다고 나는 점차 설득당하게 되었다. 그건 어떤 사람이 나를 설득한 것이 아니었다. 이 공간이 나를 설득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책상에서 작은 손에 들어가는 노트를 발견했다. 펴서 훑어보니 일기인 것 같았다. 그것을 전부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으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오늘자 일기를 확인했다. 내가 있어서 정신이 없었을 와중에도 일기장에는 문장 몇 개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살아가면서 나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우리 모두 주변 사람들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자기 처신을 위해 인간을 평가하기도 하고 때로는 끌어내리고 불이익을 주기도 해야한다.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지만 자기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어야 하기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나는 이것이 싫어서 나 나름대로의 자애적 생각을 가지고 자진해서 평생 감옥생활을 하면 의식주에 있어 어떤 걱정도 안해도 되고 그저 주는대로 밥먹고 시간 주면 운동하고 잠자고 나면 건강도 크게 문제는 없겠지.

 

 그리고 학교 밖 풍경은 나름대로 볼만했던 것 같다. 우리 학교가 그래도 고지대에 있어서 그냥 단순하게 보이는게 아니라 저기 멀리에 시청도 보이고 경찰서도 보이고 전봇대도 보여서 심심하진 않았고 볼 것들은 많았다고나 할까.'


 엄청나게 장황하게 적혀있는 그의 일기장을 보니 도대체 이걸 집에서 돌아온지 어느새에 적은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마 학원 갔다 오고 나서는 검과 방패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은 나에 대해서 엄청난 험담을 하겠지? 그런데 나는 일기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고 섭섭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했던 한 말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학교는 감옥이야. 우리는 개미같은 존재들이야. 우리는 그저 관리당하고 있을 뿐이야."

 

내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그런 헛소리를 부담없이 내지를 수 있었던걸까? 그래도 그 말이 진실이기는 했던걸까? 나는 그가 솔직하게 좋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있는 것도 좋았다. 나는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