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와 그 친구는 함께 음악하던 사이였다.


지금 다시 느끼는 거지만 그는 정말 천재였다. 어디서든 음악으로 만들 소재를 발견했고, 언제든 그 소재를 담을 멜로디를 생각했다. 아무리 퍼도 마르지 않는 그의 악상 속에서 나는 둥둥 떠다닐 수 있었다. 아무리 짜내도 사라지지 않는 그라는 물감으로 나는 마르지 않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우리는 인디 판에서 나름 성공했고, 우리의 소극장 공연은 매번 매진을 기록했다. 우리 음악이 점점 입소문이 나자 주목받는 혼성 밴드로 기사도 나고 방송가와 기획사에서 슬슬 연락이 왔다.


인디에 남아 하고 싶은 음악을 할지, 소속사에 들어가 더 큰 인기를 얻을 음악을 할지 고민하던 나날이었다. 작업실에서 맥주 한 캔씩 까면서 이야기하던, 늘 그랬던 밤이었다. 그가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2.

“너랑 나랑 만났던 바닷가 기억나?”


“당연하지. 내가 그 날을 어떻게 잊겠냐?”


태풍이 지나가던 날이었다. 정말 지독한 태풍이었다. 오랜만에 온 여행인데 태풍이 덮쳐서 아무 것도 못 하는 게 죽을 만큼 억울했다. 

그래서 우비를 입고 바닷가로 향했다. 너무도 답답해서 태풍 바람을 맞아야 가슴이 뚫릴 것 같았다. 바닷가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세찬 파도를 봐야 응어리가 풀릴 것 같았다. 


5분쯤 걸었을까, 한 사람이 백사장에 쓰러져 있는 걸 봤다. 그 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그 생각 하나에 백사장으로 내려가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정상적으로 쉬고 있었다. 그래도 위험하니까 구급차를 불렀다.


태풍 때문에 다친 사람들이 있어서 소방차는 생각보다 늦게 왔다. 혹시나 잘못 건드렸다가 척추라도 부러뜨릴까봐 안절부절하며 파도가 코앞까지 밀려드는 백사장에서 소방차를 기다렸다. 


15분쯤 지나자 소방차가 도착했고, 나도 함께 소방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의 건강엔 별 이상이 없었고, 수액 하나 맞으니 금새 생기를 되찾았다. 


그가 나에게 감사인사를 하려던 차에 전화가 왔다. 스팸전화여서 바로 거절했다. 


“어 그 벨소리, 저도 참 좋아하는 노랜데.”


“그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요.”


그렇게 우리는 음악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음악적 취향이 너무나도 똑같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둘 다 작곡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밴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게 그날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3.

“우리, 그 바닷가로 놀러 가자. 우리의 시작을 되새기러.”


그는 한 번 결심한 건 빠르게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아침 버스표를 2장 끊었다.


술 먹고 피곤했지만 어떻게든 눈을 떠서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에서 기절하듯이 잠들고 바닷가 근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다시 찾아간 바다는 정말 잔잔했다. 공기도, 기온도, 바람도 정말 완벽했다.


당일치기를 생각했기 때문에 들고 온 짐이 없어서 바로 바닷가로 나갔다. 나는 이 완벽한 날씨에 들떴지만 그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우울한 얼굴이었다. 


30분쯤 바닷가를 걷다 보니 다이빙하기 좋은 낮은 절벽이 있었다. 다이빙 명소인지 주변에 다이빙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다이빙한 사람을 태우는 배 몇 척이 있었다.


“다이빙 한 번 해볼래?”


“무서운데. 나 번지점프도 못해.”


“한 번 뛰어내리면 모든 고민이 날아갈 거 같지 않아?”


“그렇긴 한데 나 지금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 입고 왔는지 모를 수영복만 남겨놨다. 


“너, 처음부터 여기로 올 생각이었구나.”


4.

“인어공주 알지?”


갑자기 인어공주를 물어본다고?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지만 일단 태연한 척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 왕자를 만나고 싶어서 인간이 됐지만 목소리를 잃은 공주님이잖아.”


“그래. 내 먼 친척이기도 해.”


“뭐라고? 너 인어였어?”


“태풍 불던 날 바닷가에서 날 발견한 거 기억나지? 내가 왜 그렇게 쓰러져 있었을까?”


“어…?”


“나는 언제나 육지의 노래를 동경했어. 그래서 배에서 노랫소리가 나오면 항상 근처로 올라가 귀 기울여 듣는 게 취미였어. 우리 인어는 평생에 한 번 육지로 올라와 살 수 있는데, 나는 육지로 올라와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은 사람들 눈에 덜 띄니까 안심하고 육지에 나올 수 있는 거지. 다행히도 너를 만날 수 있었고, 너랑 원없이 음악을 만들 수 있어 행복했어.”


“그런 말 하지 마.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말하지 마. 너 없으면 나는 어떻게 계속 활동할 수 있겠어. 혼성 밴드잖아. 너 목소리 없이 어떻게 음악을 만들 수 있겠니. 제발. 준비할 시간이라도 줘야지.”


“미안해. 공기에서 숨 쉬는 게 점점 힘들어지더라. 육지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간다는 걸 느꼈어. 내가 보고 싶으면 파도가 거세게 치는 날, 그 해변에서 우리가 만들었던 노래들을 틀어줘.”


“정말 가야 돼? 조금만 더 있어줄 순 없어?”


“나는 이제 마지막인 것 같아. 너는 꼭 살아서 내가 있었음을 음악해줘.”


그 두 문장을 공기에 새기고 그는 시리도록 푸른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로 뛰어드는 그의 두 발은 붙고, 다리 사이에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팔을 뻗으면 바다에 거의 닿을 높이에서 그의 하반신은 비늘로 덮이기 시작했고, 상반신이 잠겼을 때 그의 나머지 몸은 영락없는 물고기였다.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예언하듯이 살길'


깊은 물 속에서 인어의 노랫소리가 솟아올랐다.

 

5.

그의 죽음은 사고사로 처리됐다. 참고인으로 조사받느라 경찰서도 다녀왔다. 그는 인어라고, 지금 바다에서 자유롭게 해엄치고 있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못할 거라 다이빙 하다가 익사한 거라고 말해야만 했다. 시신은 이틀 동안 수색했지만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떠나고 나는 한없이 울었다. 수 없이 많은 독백과 자책의 순간을 버텨야만 했다. 만나면 더 슬플 것 같아, 나도 바다로 뛰어들 것 같아 바닷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죽음을 결심했던 어느 날,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너는 꼭 살아서 내가 있었음을 음악해줘.’


정신이 들었다. 그의 존재를 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그가 나에게 맡긴 임무였다.


그가 썼던 책상을 뒤져보았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아이디어만 적힌 가사와 몇 마디만 만들어진 멜로디가 가득했다. 그 때부터 시간도 잊고 그의 아이디어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져들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나는 그가 조각조각 만들어놓은 노래를 기워 음반을 완성했다. 인디에서만 놀던 나에겐 과분하게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점점 순위가 오르더니 음원차트도 줄세우고 평론가들도 극찬했다. 그래서 방송이랑 행사에 나오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날씨가 안 좋아 행사가 취소된 날, 나는 짬을 내어 그 바닷가로 출발했다. 

완성된 음악을 그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내가 살아서 너가 있었음을 노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