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한 켠에 앉아 공항 측에서 안내해주기를 기다렸다. 내 근처에서는 공항 시설물을 점검하는 기술자들이 무전기로 뭐라뭐라 하고 있었다. 공항에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일까.
사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이미 베이징에 도착해서 벤처캐피탈 측과 거래를 시작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불의의 사고 때문에 이곳에 있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이번에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회사는 진짜로 망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욱 마음을 옥죄었다.
나는 할 일도 없고 심심해져서 스마트폰을 켰다.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자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오른쪽 상단에 상당히 큰 숫자가 떠있는 것이 보였다. 전화 애플리케이션 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들이 내가 지금 놓여있는 처지를 뉴스에서 이미 봤을 터였다.
바로 메신저로 들어갔다. 예상대로였다. 같이 벤처기업을 창립한 친구들, 고등학교 때부터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공군으로 간 친구, 그리고 많은 신세를 지고 있는 박도균 의사선생님 등 가까운 사람들의 문자였다.

-심호재:야 괜찮아?
-안대희:괜찮냐?
-은경진:괜찮아?
-이보윤:헐 어떡해
-강두일:아니 이건 또 무슨 변이래
-안대훈:뭐야 뭔일인데
-안대희:야 왜 답이 없어? 설마 죽었냐?
-강두일:야 설마 죽었겠냐 사망자 없다잖아
-안대훈:아니 대체 뭔일이냐고

사카넬 단체방에 들어가니 이런 식의 문자들이 즐비했다. 단체방 멤버들은 모두 로봇 벤처기업 샤카넬의 창립자들로, 대학교 과동아리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다. 메시지에서도 묻어나는 끈끈한 관계에 살짝 피식할 정도로 마음이 놓였다.

-하현일:ㅇㅇ 괜찮음
-안대희:야 ㅅㅂ 왜 답장 안 했어 뒤진 줄 알았네
-이보윤:끼야아 살아있다
-심호재:어우 십년감수했네
-강두일:대희야 또 욕하냐
-안대훈:아니 형 뭔일이냐니까

공항 한 곳에 다시 자리잡고 다시 실실 쪼갰다.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에 비상착륙했을 때 생긴 불안감도 어느 정도 가라앉는 듯 했다.

-하현일:별 일 없고 곧 있으면 다른 비행기 타고 갈 거임. 그러니까 걱정 마셈.
-이보현:이번에는 제발 아무 일 없길
-안대희:이번에는 갑자기 뭔 일 터져서 뒤지거나 하지 마라 새꺄
-강두일:아 쫌

역시나 한결같이 정겨운 채팅방. 지금 이 마음도 살짝 녹는 듯 했다. 다른 채팅방으로 갔다. 다른 곳에도 뭔가 많이 쌓여있었다. 먼저 고등학생 친구부터 보기로 했다.

-김주안:현일아 현일아
-김주안:뭐하아니
-김주안:밥먹느은다
-김주안:무슨 바안찬
-김주안:개구리바안찬
-김주안:살았니 죽었니
(5분 후)
-김주안:어이
-김주안:어이
-김주안:진짜 죽었냐?
-김주안:야 진짜야?
(10분 후)
-김주안:회사는 망조 들고 겨우 마지막 투자자를 찾았는데 왜 하필이면 베이징 가던 도중에 비행기 엔진이 고장나가지고 진짜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야 진짜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야 답장 좀 해 답하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죽는 건 너무하잖아

처음엔 장난기 가득하게 굴다가 나중에 갑자기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고 이후 이어지는 안절부절함. 누가 보냈는 지 알려주지 않아도 발신인을 뻔히 알 것만 같은 메시지였다. 이럴 때 어떻게 받아쳐줘야 하는 지 알고 있었다. 김주안 식으로 받아치기로 했다.

-하현일:살았다
-김주안:와아 도망가자

마지막에 쓴 장문에 이어 더 긴 장문을 쓰다가 답장했는지 댓글 속도가 느렸다. 군대에 없을 때는 뭔가에 꽂히지 않고서야 집에만 틀어박혀있는 주안이 특성 상 주안이다운 당연한 행동이었다.

아무튼 김주안과의 대화가 끝나고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보았다. 내가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는 박도균 의사선생님이셨다.

-박도균:괜찮니? 피 안 났고?
-하현일:네. 괜찮아요. 다친 데 없이 멀쩡해요.
-박도균:그럼 됐지. 인제야 마음 놓이네.

박도균 아저씨는 강서하늘길병원의 내과의사시다. 고등학생 때 개화동 참사로 인해 부모님이 사망하고 나는 중태에 빠졌는데, 이 때 구해주신 분이 박도균 아저씨다. 마침 아저씨께서 우리 아버지랑 친분이 있으셨기에 나를 부모님처럼 도와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그렇기에 더 걱정을 끼쳐드릴 수는 없었다.

'뭐, 이만하면 마음 놓이지.'
다시 샤카넬 단톡방으로 들어갔다. 단톡방 참여자는 모두 8명. 그 중 남채경의 프로필에 들어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진 속의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쉽게 웃을 수 없었다. 2014년,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것이 있었기에. 주위에서 은혜에 집착하는 놈이라고 부르지만 그 때 생긴 짐을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롄에 있고 베이징으로 갈 것이고 또한 샤카넬을 살리기 위해 일할 것이었다.


그 때였다. 온 땅이 흔들렸다. 사방의 표지판, 전광판, 입간판과 안내데스크가 흔들렸다. 아니, 공항과 땅 전체가 요동쳤다. 천장에서 먼지가 갈려나가며 흩뿌려졌고 텔레비전이 넘어졌다. 비행기들의 시간을 알려줘야 할 전광판은 힘없이 착륙하며 스크린이 작살났다. 저 멀리 보이는 공항과 비행기 타는 곳을 연결하는 곳은 주저앉았으며 공항의 천장이 붕괴하며 바닥을 때렸다. 그 시설물은 수직 낙하하며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내 의지와는 반대로 공항 건물이 제멋대로 나를 짓눌러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야 했다. 어서 베이징으로 가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투자자를 만나야 했다. 그것이 짐을 덜 수 있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서서히 눈이 감겼다. 정신이 점점 몽롱해져만 갔다. 여기서 이대로 죽는 구나.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데. 앞으로 더 나아가면 될 지도 모르는데.

피는 났나? 혹시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안 나고 있네. 적어도 아저씨한테는 큰 폐를 끼치진 않겠구나.

진짜로 마지막인 것 같았다. 정신을 유지할 힘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채경이를 따라가는 구나 싶었다. 죽은 자가 남겨준 무게. 그 무게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책망이 저 하늘까지도 나와 함께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눈이 감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