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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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생 청년비서관에 대한 내용은 박성민(1996) 문서 참고하길 바라노.
1. 들어가기 전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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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원래는 사퇴 때문에 빛과 어둠이 공존했었으나, 후술할 행적으로 인해 다시 찬양받는 중.
2. 개요 [편집]
3. 평가 [편집]
끝내는 여러 사정이 겹쳐 비극적으로 사퇴했지만, 지금까지 구태들의 공세를 보면 다들 이해가 된다는 반응. 여러모로 참 안 된 비서실장이다.
이준석과의 관계는 별개로 친다 하더라도 이 인물의 헌신 자체는 대체적으로 모두 인정하는 편이며, 실제로 8회 지선을 거치며 당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다만 당 내 내홍 속에서 중간에 끼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칭" 친윤 인사들에게 멘탈이 탈탈 털려가며 '너무 힘들다'라고 털어놓기도 하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가다 끝내 사퇴하게 되었다.
물론 이 사퇴가 이준석을 더 고립시키고, "자칭" 친윤계 중진들에게 명분만 더 줬단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이준석이 될 수는 없고, 모두가 윤석열이 될 수는 없으니.
다만 이 사퇴가 이뤄진 것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갈렸는데, 사회 채널에서는 윤석열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며 이 사퇴를 유도한 간장 듀오를 까고 있는데, 새보갤과 축리웹 등의 타 이준석 지지 커뮤에서는 배후에 윤석열이 있다고 주장하며 다시금 윤석열을 까기 시작했다.
일단 지켜봐야 알겠지만, 박성민의 사퇴 이후에도 이준석이 귀국한 윤석열을 마중가기도 했단 점에서 손절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손절했다고 믿게 만드려는 게 국짐 구태 새끼들 속셈이기도 하니 말이다.
간장 개새끼들.
이준석과의 관계는 별개로 친다 하더라도 이 인물의 헌신 자체는 대체적으로 모두 인정하는 편이며, 실제로 8회 지선을 거치며 당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다만 당 내 내홍 속에서 중간에 끼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칭" 친윤 인사들에게 멘탈이 탈탈 털려가며 '너무 힘들다'라고 털어놓기도 하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가다 끝내 사퇴하게 되었다.
물론 이 사퇴가 이준석을 더 고립시키고, "자칭" 친윤계 중진들에게 명분만 더 줬단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이준석이 될 수는 없고, 모두가 윤석열이 될 수는 없으니.
다만 이 사퇴가 이뤄진 것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갈렸는데, 사회 채널에서는 윤석열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며 이 사퇴를 유도한 간장 듀오를 까고 있는데, 새보갤과 축리웹 등의 타 이준석 지지 커뮤에서는 배후에 윤석열이 있다고 주장하며 다시금 윤석열을 까기 시작했다.
일단 지켜봐야 알겠지만, 박성민의 사퇴 이후에도 이준석이 귀국한 윤석열을 마중가기도 했단 점에서 손절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손절했다고 믿게 만드려는 게 국짐 구태 새끼들 속셈이기도 하니 말이다.
간장 개새끼들.
4. 근황 [편집]
5.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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